매일신문

[필름통] 일본의 지진 불안과 괴수 '고지라'

'이제는 사이즈다'라는 홍보 카피를 내건 롤랜드 에머리히 감독의 '고질라'(1998년'사진)에서 고질라의 크기는 실로 어마어마하다. 길이가 121m, 그 중 꼬리만 78m나 되는 거대 괴수다.

고질라의 원조인 일본 고지라는 키가 50m 이상인 직립 보행 괴수다. 일본 괴수영화 '고지라'는 1954년 개봉 당시 961만 명의 흥행 기록을 세우며 반세기 넘게 26편의 시리즈가 만들어졌다. 개봉 당시 전체 일본 인구 10% 이상이 이 영화를 볼 정도로 대히트를 쳤다.

'고지라'는 고래를 뜻하는 '구지라'와 '고릴라'의 합성어다. 1933년 개봉된 할리우드 영화 '킹콩'을 연상시킨 작명이다.

고지라 이후 일본에서 만들어진 괴수나 로봇은 모두 사이즈가 거대하다. '마징가 제트' '철인 28호' 등 대부분 키가 빌딩 10층 정도 높이는 된다. 1995년 이후 꾸준히 만들어지고 있는 애니메이션 '에반게리온' 시리즈에서 정체를 알 수 없는 사악한 사도도 마찬가지다.

이들 거대 괴수의 공통점은 크기와 함께 정체를 알 수 없다는 것과 성질이 흉포하다는 것이 있다.

고지라는 사이즈뿐 아니라 특히 성질이 고약하다. 무차별적으로 도시를 부수고 사람을 죽인다. 괴력과 함께 입에서 뿜어내는 백열광으로 도쿄를 순식간에 불바다로 만든다. 맹렬한 불꽃과 방사능으로 사람들은 아무런 힘을 쓰지 못한다. 폭뢰, 화포, 고압전류 등의 근대 무기는 전혀 통하지 않는다.

이러한 배경에는 원폭이 있다. 고지라는 태평양 속에 잠들어 있던 티라노사우루스가 미군의 수소폭탄 실험에 의해 괴물이 되어 깨어난 것이다. 바로 미국의 원자폭탄 공격을 빗댄 것이다.

괴수들이 도시를 파괴하는 이유도 없다. 그냥 순식간에 나타나 도시를 쑥대밭으로 만든다. 아무런 설명도 대책도 경고도 없이 어느 날 갑자기 떨어진 폭탄 하나로 모든 것이 불기둥 속에 잠든 그날의 공포가 괴수 속에 녹아든 것이다.

일본이 지진으로 고통을 받고 있다. 태풍, 토네이도, 화산폭발 등 많은 자연재앙에서 특히 지진은 예보가 불가능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모든 것이 일시에 파괴되는 지진 악몽은 원자폭탄으로 증폭되고 그것이 일본 괴수영화에 투영된 것이다.

김중기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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