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김기진의 육상 이야기] 제자리 멀리뛰기·삼단뛰기 아시나요

제1회 아테네 올림픽의 육상경기는 100m, 400m, 800m, 1,500m, 마라톤, 110m허들, 높이뛰기, 장대높이뛰기, 멀리뛰기, 세단뛰기, 포환던지기, 원반던지기 등 12개 종목이었다. 그러나 올림픽이 계속되면서 새로 등장했다 지금은 사라진 종목들이 여럿 있다. 1900년 2회 파리 올림픽에서 시작된 후 3회 세인트루이스 올림픽까지 실시된 제자리높이뛰기, 1912년 스톡홀름 올림픽 때까지 실시된 제자리멀리뛰기와 제자리삼단뛰기는 사라진 대표적인 도약 종목이다. 오늘날의 경기와 비슷하지만 도움닫기를 하지 않고 제자리에 서서 뛴다는 점이 다르며, 지금의 경기와 동일한 방식의 종목도 병행해서 실시되었다. 올림픽 육상에서 최초로 흑인 입상자가 나온 것은 세인트루이스 올림픽 때 제자리높이뛰기에서 2위를 한 미국의 스태들러였다.

이 세 가지 도약 종목에서는 경이로운 경기력과 함께 불굴의 투지를 발휘한 유명한 선수가 있었다. 오늘날 종목이 실시되지 않고 있기 때문에 거의 잊힌 선수지만 미국의 레이 유리(Ray Ewry)는 1900년 2회 파리 올림픽 때부터 연속 3차례 올림픽에서 세 가지 도약 종목에서 8개의 금메달을 차지했다. 어린 시절 소아마비를 앓았던 그는 오랜 세월을 휠체어에 의지해 살았으나, 끈질긴 노력으로 다리의 기능을 회복했다. 20세가 되어서야 단순하게 정상적으로 걸을 수 있게 되었으나 계속적인 훈련을 통해 상상하기 힘든 점프력을 갖추게 되었으며, 2회 파리 올림픽과 3회 세인트루이스 올림픽에서 세 종목 연속 3관왕을 차지했다. 그는 당시 장대높이뛰기와 도움닫기 멀리뛰기에서 우승을 차지했던 어빙 박스터(Irving Baxter)와 함께 겨루어 모두 승리했으며, 높이뛰기에서 165㎝, 멀리뛰기에서 347㎝의 세계신기록을 수립했다.

물론 육상경기로 간주되기에는 미흡하지만 1900년 파리 올림픽에서 1920년 앤트워프 올림픽 때까지는 학교 운동회의 인기 종목이었던 줄다리기도 당당한 올림픽 종목이었다. 한 팀당 여덟 명의 선수가 출전했으며 줄의 길이는 180㎝, 경기 시간은 5분이었다. 5분 이내에 일정 표시된 부분까지 줄을 당길 경우 승리했으며, 만일 5분이 지나도 승패가 가려지지 않으면 종료 후 더 많이 끌어당긴 쪽이 승리했다. 국가별로 여러 팀의 출전이 가능했기 때문에 한 나라가 금'은'동메달을 모두 휩쓰는 경우가 빈번했다. 1904년 세인트루이스 올림픽에서는 미국의 클럽 팀이 메달 세 개를 싹쓸이했는가 하면, 1908년 런던 올림픽에서는 영국이 금'은'동메달을 모두 차지했다.

56파운드 멀리던지기는 1904년 세인트루이스 올림픽에서 시작돼 1920년 앤트워프 올림픽 때까지 실시된 종목이다. 손잡이가 달린 56파운드(25㎏) 무게의 포환을 장대 너머로 던지는 경기로서 육상 종목 중 하나인 투포환 던지기와는 조금 다른 방식으로, 멀리 던지는 것이 아니라 높이 던지는 능력을 겨루는 종목이었다. 1900년 파리 올림픽 때는 육상경기와 승마경기의 혼합 형태로 말을 탄 채로 높이뛰기와 멀리뛰기를 겨루는 종목도 실시됐다.

김기진 계명대 체육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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