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칭찬 릴레이] 주례 인연, 25년간 행복 바이러스…이상배 대구서가회 초대회장

이상배 대구서가회 초대회장
이상배 대구서가회 초대회장
김원중 포스텍 명예교수
김원중 포스텍 명예교수

오늘 아침에도 늦잠에 빠져 있는데 전화벨이 자꾸 울린다. 잠결에 일어나 수화기를 받아드니 "전화 왜 빨리 안 받노"하고 서예가 남헌 이상배(대구서가회 초대회장))의 걸쭉한 목소리가 울린다. "아! 미안하다"고 일단 대답하고 나서 "어젯밤에 통화했잖아"하니 "오늘 갑자기 추워진다더라, 외출 삼가라"고 한다. 남헌과의 전화는 주로 이런 식이다. 특별히 할 이야기가 있어서가 아니다. 아침저녁으로 시간만 나면 안부전화해 주는 친구이다. 벌써 10년 가까이 되었다. 내가 포스텍에서 정년퇴임하고 대구로 와 있을 때였다. 고령 가야대학교에 미디어문예창작학과가 마침 신설되었다고 도와달라는 후배 교수의 권유로 일년 동안 정신없이 강의를 하러 다녔고, 또 같은 해에 내가 대구세계문학제 발기위원장을 맡아 동분서주하다가 어느 날 뇌졸중으로 쓰러져 병원에 눕게 되었다.

그때 가장 먼저 병원으로 달려온 친구가 남헌이고, 남헌 때문에 많은 동창 친구들이 문병을 왔었다. 남헌은 나와 동갑이고 영남대 국문학과 동문이다. 내가 병원에 입원해 있는데 문병 와서는 "내 막내딸 주례 서줄 때까지 살아야 한다"고 하는 것이었다. 나는 남헌의 이 말에 정신이 번쩍 들었다. 그리고 마음을 고쳐먹었다. "그렇다. 다시 일어나서 주례도 서고 사회활동도 해야지…."하는 의지가 솟구쳤다. 지금부터 25년 전인 1986년 남헌의 맏딸 결혼식 주례를 서 준 것이 인연이 되어 아들 한 명, 딸 네 명의 결혼 주례를 나 혼자 다 맡아서 섰었다. 내가 아무리 다른 분께 부탁하라고 해도 막무가내였다. 남헌은 일찍이 다섯 자녀가 다 모인 자리에서 "너희 결혼할 때 주례는 김원중 박사가 다 맡는다"고 선언했다는 것이었다. 내가 퇴원하고 나서 재활의학과에 통원치료하러 다닐 때 하루는 남헌의 다섯 자녀 부부와 손자 손녀까지 수성못 근처의 큰 식당에 소집하여 나를 초대하여 위로의 잔치를 베풀어 주었다.

세상에 이런 인연이 또 있는가. 주례 서주고 나면 그만인 요즘 세상에 계속 좋은 인연을 맺고 있으니 나는 얼마나 행복한 인생인가? 남헌은 지금도 나를 소개할 때마다 우리집 다섯 아이들 주례를 서 준 친구라고 꼭 일러준다. 이 글을 쓰고 나서 남헌에게 전화해야지하고 있는데 전화벨이 울린다. 남헌의 전화다. 나에게 행복바이러스를 전해주는 친구. 내가 어찌 죽어서도 잊겠는가.

김원중 포스텍 명예교수

최신 기사

많이 본 뉴스

일간
주간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