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대구 경북은 분노하고 있다. 동남권 신공항을 유치하지 못한 패배감 때문이 아니다. 엄청난 배신감을 어떻게 표출해야 할지 잠시 숨을 죽이고 있을 따름이다. 좌절감에 앞서 어떻게 이런 일이 벌어질 수 있는지 황당하다.
100점 만점에 39점밖에 되지 않는 사업을 5년 가까이 가지고 놀다가 이제 와서 점수가 낮다고 팽개쳐버렸다. 점수대로라면 애당초 불가능한 사업이 아닌가. 그렇다면 아예 되지도 않는 사업을 지금까지 끌고 왔다는 결론이다. 그것도 모르고 순진하게 신공항을 한번 유치해 보겠다고 거기에다 목을 맸으니 기가 찰 노릇이다. 허무한 허송세월, 지역민을 우습게 본 처사가 아니고 무엇인가.
그러나 어쨌든 사태를 수습해야 한다. 다시는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안전장치를 마련해야 한다. 강경파들은 어떻게 복수(?)할 것인지 길을 찾아야 한다고 야단이다. 분노를 다스리지 못해 흥분된 분위기가 역력하다. 분노와 복수에 대한 대표적인 사례가 사마천의 사기(史記)에 있다.
오자서(伍子胥)는 초나라 사람이었다. 아버지가 모함을 당해 초 평왕의 인질로 잡혔다. 왕은 가족을 몰살시킬 심산으로 "두 아들을 불러온다면 너를 살려주겠다"고 했다. 이에 큰아들은 아버지를 구하기 위해 출두를 했지만 둘째는 거짓말임을 눈치 채고 오나라로 망명했다. 결국 아버지와 형은 죽임을 당했고 도망친 오자서만 살아남았다.
오나라에서 군사를 일으킨 오자서는 마침내 초나라로 쳐들어갔다. 그러나 평왕은 이미 이 세상 사람이 아니었다. 할 수 없이 평왕의 무덤을 파헤쳐 시신을 꺼내 300번이나 채찍질을 했다고 한다. 그때 초나라에 있던 친구 신포서가 이 소식을 듣고 사자를 보내 다음과 같이 전했다. "아무리 복수라고 해도 너무 지나치지 않소. 당신은 한때 평왕의 신하로서 왕을 모시던 사람이 아니었소, 왕의 시신을 그렇게 욕보였으니 하늘의 뜻을 저버린 것이 아니겠소." 이에 오자서는 답한다. "해는 지고 길은 멀어서 방법을 택할 여유가 없었다"고. 일모도원(日暮途遠)이라는 말은 여기서 나왔다.
그렇다. 이제 분노도 삭일 줄 알아야 한다. 삭발을 하고 트럭 5대분의 서명서를 전달하는 물리적인 힘도 중요하지만 다시는 이런 사태가 발생하지 않도록 안전판을 마련해야 한다.
윤주태(객원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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