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21세기 실크로드] ⑬ 쿠처의 키질석굴

'색즉시공…' 譯語 남긴 역경승 구마라습 '수행의 忍苦' 생생

중국 4대 불교석굴 중의 하나이며 3세기 말부터 약 500년에 걸쳐 형성된 키질석굴 전경.
중국 4대 불교석굴 중의 하나이며 3세기 말부터 약 500년에 걸쳐 형성된 키질석굴 전경.
반야심경을 비롯해 많은 불경을 번역한 명승 구마라습의 청동좌상이 키질석굴 입구에 세워져 있다.
반야심경을 비롯해 많은 불경을 번역한 명승 구마라습의 청동좌상이 키질석굴 입구에 세워져 있다.
중국 4대 불교석굴 중의 하나이며 3세기 말부터 약 500년에 걸쳐 형성된 키질석굴 전경.
중국 4대 불교석굴 중의 하나이며 3세기 말부터 약 500년에 걸쳐 형성된 키질석굴 전경.
38호굴 미륵보살설법도 벽화 중에 청법천인상 부분도 많이 훼손됐다.
38호굴 미륵보살설법도 벽화 중에 청법천인상 부분도 많이 훼손됐다.

투루판을 무려 800㎞나 달려 고선지 장군이 고구려인의 기개를 펼치던 쿠처에 닿은 것은 새벽 2시쯤이다. 그래도 '카슈가르에서 동쪽으로 한 달' 걸린 혜초에 비하면 호강 아닌가. 풀 한 포기 없는 이런 무초산지대 곳곳에 '절도, 승려도 많았다'고 혜초는 쓰고 있으니 척박한 자연이 오히려 수행을 채찍질한 것 같다. 문득 아래를 보니 뿌연 염수계곡이다. 어느 여신이 말라버린 계곡에 뿌린 눈물 자국 같다. 계곡을 따라 가니 어느새 산세와 색채가 달라진다. 듬성듬성 사막풀이 돋아 있고 푸른 강물과 미루나무도 허공을 쓸고 있다.

키질석굴 입구에서는 현장, 법현과 함께 중국 3대 역경승으로 추앙받는 구마라습(鳩摩羅什)의 청동좌상이 객을 맞이한다. 1994년, 탄생 1천650주년을 기념하여 세운 것이라고 한다. 푸르다 못해 검은 몸으로 앉아 내리꽂는 그의 날카로운 시선에 움찔한다. 키질석굴하면 떠오르는 대표적인 이미지이기도 하다. 인도 귀족을 아버지로, 쿠처국 공주를 어머니로 둔 그는 범어로 된 초기불경을 한문으로 번역하는 사업에 매진했었다. 그가 번역한 불경이 반야심경, 법화경, 금강경 등 35부 294책에 이른다고 한다. 죽기 직전 구마라습은 "내가 번역한 불경에 틀린 것이 없다면 나를 화장해도 혀는 타지 않을 것이다"라는 말을 남겼다. 자신의 완역을 증명하라던 예언의 실현이듯, 다비 후에도 혀는 타지 않았다는 일화가 전해 온다. 청동의 검은 빛이 발하는 윤기는 그의 철저한 언어 감각의 징표 같다. '색즉시공 공즉시색'도 그의 역어라니, 모든 불자들은 수시로 그의 숨결을 마시는 셈이다.

'키질'은 위구르어로 붉은색이란 뜻. 하지만 석굴은 세월에 빛바랜 채, 저만치 시신 빛깔의 단애에 숭숭 뚫린 구멍으로 있다. 오랜 고행이나 금식으로 핏기 잃은 수척한 수도승의 모습이다. 3세기 말부터 약 500년에 걸쳐 조성되었고, 현존 중국의 불교 석굴 중 가장 오랜 역사를 지닌 4대 불교석굴 중의 하나. 확인된 굴 236개, 미발견 굴까지 300여 개 이상이며, 한때는 만 명이 넘는 승려가 수행을 했을 것으로 추측하고 있다. 벽화의 기법도 서역기법에 중원의 기법을 가미한 아름다운 회화작품을 간직하고 있다.

경주국립박물관에는 옛날 신라와 서역의 왕래를 말해주는 보물 635호 황금보검이 있다. 경주 계림로 14호 고분에서 출토된 이 검이 어디에서 건너왔는지는 분명하지 않으나 키질석굴 69호굴 벽화에 묘사된 사람이 허리에 차고 있는 보검의 형태와 흡사한 것이 발견됐다. 이런 자료로 보아 학계에서는 당시 실크로드를 따라 서역인과 신라와의 교류를 짐작한다. 이번 키질석굴 방문길에 황금보검을 찬, 공양인상 벽화를 볼 수 있으려나 설레는 마음으로 계단을 오른다. 심해나 우주공간의 그윽한 빛을 내는 보석 라피스라줄리(청금석), 그 몽환적 안료의 벽화와의 만남도 기대했다. 그러나 69호굴은 끝내 공개되지 않았고, 출입이 가능한 굴의 부처와 보살은 제 상처로 우울하다. 부처 본생담 벽화의 마린블루는, 검고 어둔 갈색의 생채기에 밀려 있으나, 남은 빛만으로도 관객을 매료시키기에 충분하다. 부처의 눈까지 도려내고 새까만 구멍만 남겼다. 눈부셔야 할 광배마저 캄캄하다. 창문 열고 얼굴과 가슴 내밀어 일렬로 객들을 맞이하던 병령사 석굴 부처의 천진한 웃음도 보이지 않는다. 눈 없는 부처에게서도 혜안(慧眼)과 법안(法眼), 심안(心眼)을 읽어라 가르치고 상처도 꽃으로 보라 이르신다.

상처의 역사는 길고 그 가해자는 많기도 하다. 이란 사산왕조의 망명, 이슬람 압바스 왕조의 침공, 르콕과 스타인 등 서구열강의 탐험대, 일본 승려 오타니 일행, 홍위병이 차례로 할퀴고 갔다. 독일의 고고학자 르콕이 훔쳐간 유물은 2차대전 때 폭격으로 재가 됐고, 일본 승려 오타니가 뜯어온 벽화 중 몇 점이 현재 우리 국립중앙박물관에 보존되어 있다. 안도와 더불어 죄인의 심정으로 가슴 죈다. 그나마 남은 헬레니즘의 영향을 받은 간다라식 인물 벽화 몇 점을 둘러보다, 10호굴의 조선족 화가 한락연의 방에 든다. 연변 출신으로 상하이와 파리에서 유학한 그는 예술혼이 꽃필 무렵 이 석굴에 매료되어 오랫동안 머물며 벽화 모사와 발굴 작업 등에 전념하다 비행기 사고로 사망했다. 흙 침대와 초상화가 그를 기린다.

승려들의 수행처 승방굴에 든다. 한쪽 벽에 난 작은 창으로 백양나무가 쓸리는 강가도 보인다. 저 풍경으로 승려들은 수행의 인고를 달랬으리라. 텅 빈 곳에 반야심경 액자 하나 덩그러니 놓여 있다. 감전이라도 된 듯 오그라든다. 자꾸 오그라들어 깨알 같은 벌레가 되어 반야심경이나 핥고 있을까? 나올 때 낮은 문에 쿵! 머리를 부닥친다. 탐진치(貪嗔痴)의 삼독(三毒)이 비듬처럼 우수수 떨어진다. 키질석굴이 나를 키질한 것이다. 키질석굴은 실크로드 탐사의 핵이다.

글:정화식 (대구대 교수'영문학)

사진: 박순국 (전 매일신문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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