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천만 대한민국 국민들이 위로는 대통령으로부터 밑바닥 대중들까지 마셔야 될 탕약(湯藥)이 있다. 물론 천진난만한 아이들과 양심대로, 법 없이도 살 만한 다수의 대중들은 빼고서다. 탕약이라고 해서 동의보감에 나오는 보약류가 아니라 보화탕(保和湯)이라는 비방(秘方)이다. 약재(?)는 30가지가 들어간다. 어느 시인 신부님 말로는 처방을 낸 사람이 구선자(九仙子)라는 현인이라는데 어느 날 40대 남자가 구선자를 찾아와 호소했다. '선생님, 밤마다 잠이 잘 안 오고 헛배가 부르며 가슴이 뛰어 곧 죽을 것 같습니다. 좋다는 약을 다 써 봐도 백약(百藥)이 듣지 않으니 살려주십시오.' 그러자 구선자가 '내가 적어주는 30가지를 고루 섞어서 공복에 먹으면 만병이 낫는다'며 처방을 내렸다.
그게 이른바 보화탕이다. 처방전을 받아들고 보니 이게 웬일, 명색 탕약이라는데 약초는커녕 풀 한 포기 안 들어가 있다. 당귀, 인삼은 고사하고 흔한 감초 한 조각도 없다. 도대체 어떤 약이기에 약초 한 뿌리 없는 탕약인지 처방을 들여다봤다. 1.사무사(思無邪=나쁜 생각을 하지 말라) 2.막사심(莫斯心=거짓말과 속이는 마음을 갖지 말라) 3.행방편(行方便=사람들을 옳은 길로 이끌어라) 4.염근(廉勤=청렴하고 근검하라) 5.계로'계폭(戒怒'戒暴=성내거나 거친 행동을 경계하라) 6.수본분(守本分=자기의 분수를 지켜라) 7.계탐(戒貪=탐욕을 부리지 말라) 8.순천도(順天道=순리와 바른 길을 따르라) 9.겸퇴(謙退=물러날 줄을 알아라) 10.지기(知機=기회를 잘 알고 잡아라)…
그리고 20가지 처방을 더 붙여주고 구선자는 말했다. "병은 약이 아닌 마음으로 고쳐야 하느니, 이 30가지 덕목을 다 고루 섞어 취하면 병이 오지도 앓지도 않을 것이다."
지금 우리 국가와 사회의 병세는 어떤가. 병이 걸려도 보통 걸린 게 아닐뿐더러 병자가 한두 사람이 아니다. 서른 가지 중 한두 가지 처방에 해당하는 환자는 사방에 널려 있고 구제역처럼 여기저기 계속 새로운 환자가 쏟아져 나온다. 대통령부터 '막사심'에 걸렸었다. 신공항 하나만 해도 대선공약으로 내걸었던 대통령은 지난 3년, 특히 영남 지역의 분열과 경합이 뜨거웠던 지난 몇 달 동안은 내내 가슴이 뛰고 잠도 안 오고 속이 더부룩했을 것이다. 자신은 국가 백년대계를 위한 결단이라며 '사람들을 옳은 길로 이끌라'는 행방편 처방대로 따랐다고 위안할지 모르나 지역민들 가슴에는 이미 계로, 계폭의 거친 심기를 심어버린 뒤다.
내 병 탓에 남에게 없는 병까지 만들어 준 셈이 됐으니 아래위 사회 통합이 될 리 없다. 가진 계층과 덜 가진 자의 동반 성장 책무를 책임 맡았다는 명색 전직 총리는 가짜 학력 여자와의 수본분하지 못한 처신에다 물러날 때를 아는 겸퇴의 도리를 모르는데 어찌 아래쪽에 '동반할 맘'이 생길 것인가. 군(軍)은 군대로 고위 예비역 장교가 군사 기밀을 남의 나라에 팔아먹는 사무사와 계탐에 걸렸는데 천안함 희생 장병 어머니 혼자 아무리 기관총을 걸어줘 본들 국가 안보가 든든해질 수 없다.
표 욕심으로 도처에 혁신도시, 기업도시 파 뒤져놓고 뒷감당에 허덕대는 것도 국력과 경제성장, 지역 발전력의 타이밍을 고려하는 지기의 모자람에서 비롯한다. 선진국 대학의 발전 모델을 따르자는 국립대 법인화에 반대하며 총장실을 점거하는 집단 이기의 고질병도 계로, 계폭의 덕목이 없어서다. 18명의 국세청장 중 6명이 감옥에 가는 권력층 부패는 청렴, 근검 처방의 대표적인 병자들이다.
남의 종교를 배척하고 저만 옳다는 독선과 적대 의식에 빠진 일부 종교계의 고질병도 존인(存仁=어진 마음을 가져라)과 겸화(謙和=겸허하고 화목하게 하라)의 자각이 없어서다. 따져보면 그게 다 병이요 너도나도 환자들이란 소리다. 30가지 아니 최소한 10가지 처방만이라도 따른다면 우리 사회가 이처럼 병들고 이기적 무질서로 굴러가진 않는다.
위로부터 아래쪽까지 곳곳에서 너도나도 한두 가지씩 병을 앓고 있으니 나라 전체가 병들 수밖에 없다. 아무리 국민소득 2만 달러가 돼도 정신이 병든 것을 물질로 고칠 수는 없다. 권력의 힘으로 누르고 윽박질러 고쳐질 병도 아니다. 이런 망국적 병은 구선자의 충고대로 바른 마음으로 고치는 길밖에 없다. 보화탕, 감초 하나 안 들어간 심치(心治)의 비방이야말로 지금 5천만 국민들이 마셔야 할 국가 치유의 명약이다.
김정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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