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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산동에서] 논곱만큼이 감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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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TV 오락프로그램을 관통하는 키워드는 단연 '서바이벌'이다. 공중파, 케이블채널을 가리지 않는다. 가수가 인기를 끌자 연기자'아나운서'디자이너 등 다양한 직종으로 확산되는 추세다. 일반인은 물론 스타 연예인도 동원된다. 대중가수가 오페라 아리아에 도전하기도 하고, 연예인들이 피겨 스케이팅 선수가 되기도 한다. TV발(發) 광풍에 편승, 신인 소설가를 토너먼트 형식으로 선발하고 전자책을 출간해 준다는 통신회사도 등장했다. 가히 '오디션 신드롬'이라 할 만하다.

비슷한 포맷들이 넘쳐나는 것은 당연히 돈이 되기 때문이다. 원조 격인 어느 가수 선발 프로그램의 경우 20%에 가까운 시청률을 기록했다. 케이블TV 사상 최고였다. 다른 프로그램들도 경쟁-탈락 방식 도입 이후 시청률이 수직 상승했다, 방송계에서 시청률은 바로 광고 수익으로 직결된다.

그런 점에선 MB 정부도 서바이벌 프로그램으로 톡톡히 재미를 봤다. 결국 백지화로 결론 내버린 동남권 신공항 사업에서다. 대구'경북과 울산'경남을 부산과 경쟁시키면서 흥행은 유례없는 돌풍을 기록했다. 가수 오디션에 200만 명이 몰려 화제라지만 신공항 경쟁에는 밀양 쪽으로만 770만 명이 서명했다.

대선 공약 이후 4년 가까이 끌면서 '집토끼'인 영남권의 시각을 한 곳에 묶어두는 효과도 거뒀다. 대구나 부산이나, 수없이 많은 토론회'기자 회견'시민 캠페인으로 정권을 압박하기도 했지만 행여 밉보일까봐 애교도 떨 수밖에 없었다. 마지막 기회라는 절박한 심정에서 물밑 충성 경쟁도 치열했다. 적어도 '공약으로 시간 끌기'가 레임덕을 늦추는 효험이 있다는 건 증명된 셈이다.

잔인한 서바이벌 방식이 감동을 주는 건 투명한 경쟁이 있기 때문이다. 대통령이 앞장서 '공정한 사회'를 외칠 정도로 불공정이 만연한 우리 현실에서는 특히 그럴 필요가 있다. 규칙을 어기고, 탈락자에게 재도전의 기회를 준 방송이 여론의 뭇매를 맞는 것만 봐도 얼마나 '정의'에 목마른 국민들인지 알 수 있다.

문제는 '경쟁=공정'이란 오해이다. "국내 최고의 전문가들이 내린 객관적 평가"라지만, 결론은 정해둔 채 경쟁 형식만 빌린다거나 후유증이 두려워 경쟁의 판 자체를 뒤엎는다면 결코 공정하다고 말할 수 없다. 눈곱만큼의 감동도 줄 수 없다. 공약 파기의 부담을 덜기 위해 경쟁 방식을 '알리바이'로 악용했다는 의혹을 지우기 힘들다.

신공항 사태가 이 지경까지 온 데에는 정부 고위관계자, 청와대 참모들의 보신주의도 한몫했다. '나 떠난 뒤에' 식으로 결정을 미루면서 눈에 뻔히 보이는 갈등을 방치한 책임을 묻지 않을 수 없다. 두 지역의 경쟁이 너무 치열해 어느 한 쪽으로 결정하기 힘들다는 말이 흘러나온 것도 이미 오래전의 일이다. 지금 와서 내세우는 경제성 논리보다 무책임한 선거논리와 근시안적 정치논리에만 충실했던 것이다. 그런 그들이 부와 명예를 움켜쥔 사이 순진한 지역민들은 '국익과 미래세대의 부담을 외면하는 지역이기주의자'의 함정에 빠지고 말았다.

신공항 백지화 파문이 쉽게 가라앉지 않고 있다. '속았다'는 느낌이 강하기 때문일 것이다. 자존심에도 치유하기 힘든 상처가 났다. 일부에선 지역민의 열기가 뜨거울 때 화만 내지 말고 지역 발전의 지혜를 모아야 한다고도 한다. 백번 옳은 말씀이다. 하지만 철부지 아들이 이렇게 물을까 겁난다. "사과 한마디로 약속을 쉽게 버린다면 앞으로 국가지도자는 뭘 보고 뽑아야 돼? 노래자랑 서바이벌로 하면 어때?"

이상헌기자 davai@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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