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고한 희극인 이주일이 CCR의 '수지Q'를 부를 때면 온동네 아이들은 배꼽을 잡았다. '따라하면 안돼'라며 일침을 놓던 어른들도 혼자 있는 시간이면 '비 밥 어 룰라'를 웅얼거렸다. 콩나물 팍팍 무치기는 아무래도 어색했을테고. 한국전쟁에도 참전했던 '진 빈센트'(Gene Vincent)의 곡 '비 밥 어 룰라'(Be Bop A Lula)는 이주일이 절묘하게 사용하면서 한국인들이 가장 사랑하는 팝송 가운데 하나가 되었다.
'정말이에요' 정도의 뜻을 가진 '비 밥 어 룰라'에는 20세기 대중음악계를 가장 곤혹스럽게 만든 단어가 들어있다. 바로 '비밥'(Be Bop)이다. 비밥은 1940년대 등장한 새로운 재즈 사조다. 1920년대 미국 뉴올리언즈에서 시작된 재즈는 대도시로 근거지를 옮기면서 가장 보편적인 미국 대중 음악이 된다. 특히 1930년대는 스윙 빅밴드가 중심이 되면서 백인을 대상으로 한 클럽은 호황을 누린다. 하지만 제2차 세계대전이 발발하면서 상황이 변한다. 빅밴드의 직장이던 클럽과 카바레는 과중한 세금을 내야했고 경영난으로 문을 닫는 클럽이 속속 등장한다. 당연히 음악인들도 직장을 잃게 된다.
사실 음악인들 사이에서 스윙 빅밴드는 불만이었다. 개개인의 개성을 인정하지 않는 집단 앙상블은 자유로움을 존중하는 재즈의 태생적 모습을 보여주지 못하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스윙 빅밴드 시대의 쇠퇴는 음악인들에게 반가운 일이었을 지도 모른다. 특히 비밥 시대를 여는 몇몇 인물들은 더 그랬을 것이다. 바로 '찰리 파커'(Charlie Parker) '디지 길레스피'(Dizzy Gillespie) '셀로니우스 몽크'(Thelonius Monk) '레이 브라운'(Ray Brown) 같은 사람들이다.
이들은 1940년대 초, 밤이 되면 뉴욕 52번가로 몰려들었다. 재즈 역사상 가장 중요한 장소 가운데 하나인 뉴욕 52번가는 작은 규모의 클럽이 밀집해 있었다. 규모가 말해 주듯이 이곳에서 빅밴드 연주는 불가능했다. 작은 편성의 악단은 재즈가 가지는 자유로움을 마음껏 표현했는데 특히 즉흥연주 경연이 볼만했다. 이들은 보다 빠르고 복잡한 연주 경연을 선보이면서 새로운 재즈를 만들어 갔다. 이런 과정 속에서 기존의 상식은 모두 파괴되고 전혀 새로운 음악이 등장하게 되는 것이다.
특히 52번가를 약간 벗어난 곳에 있었던 '민튼즈 플레이 하우스'는 압권이었다. 이 곳에서는 디지 길레스피와 찰리 파커가 향연을 펼쳤고 셀로니우스 몽크도 함께했다. 특히 찰리 파커는 최고의 인기였는데 그는 기존의 곡을 전혀 다른 코드와 방식으로 연주했다. '버드'(Bird)라는 애칭으로 불리던 찰리 파커는 인종 차별에 대한 울분을 토하듯 연주했고 이 시기 최고의 스타가 된다. 비밥의 탄생은 재즈 역사상 가장 극적인 순간이다. 클럽의 분위기를 맞추기 위한 댄스음악이 일순간 예술음악으로 승화되는 순간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대중 입장에서 비밥은 곤혹스럽다. 감상을 위한 진지한 수련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음악이 유의미한 텍스트가 아니라 경쟁과 자본논리에 천착한 상품으로 전락한 시대에 비밥을 이야기하는 것이 잘못일 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드는 이유다.
권오성 대중음악평론가 museeros@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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