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에서 논술 톺아보기] 사실과 진실 - 주장과 논거④

설득의 힘은 진실에서 나온다고 했다. 그러면 진실이란 도대체 무엇일까? 논거는 사실이고, 주장은 진실이라는 말이 있다. 그러면 이 말은 사실일까? 진실일까? 사실과 진실은 어떤 관계에 있을까? '통영 오광대'에는 홍백탈이라는 것이 있다. 붉은색과 흰색으로 얼굴이 분리된 탈이다. 왼편에서 보면 붉은 얼굴을 지닌 사람이고 오른편에서 보면 흰 얼굴을 지닌 사람이다. 인간이 지닌 이중성을 신랄하게 풍자한 탈이다. 다시 말하자면 홍백탈은 붉은색과 흰색으로 이루어진 탈이지만 보는 사람에게는 시선이 향하는 방향에 따라 다르다. 사실은 현상을 바라보는 시선에 따라 다르다는 말이다. 홍백탈은 하나인데 하나가 아니다. 홍백탈 그 자체가 '사실'이라면 그것을 바라보는 사람들의 해석은 '진실'이라 할 수 있다. 사람들은 결코 그 순간 거짓을 말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사실(事實)'을 사전에서 찾으면 실제로 있었던 일이나 현재에 있는 일이라고 되어 있다. 철학적으로는 시간과 공간 안에서 볼 수 있는, 실제로 일어난 사건이나 현상이며, 의심할 수 없는 현실적 존재성을 가지며 사유(思惟)에 의하여 경험 내용으로 확립되는 것이라고 한다. 결국 '사실'은'진실인가 거짓인가'의 문제가 아니라, '현재 존재하는가, 현재 존재하지 않는가'의 문제에서, 현재 존재하고 있는 것에 대해서 쓸 수 있는 말이라고 정리할 수 있다. 그러면 '진실'은 어떤 의미일까? '진실(眞實)'은 거짓이 없는 사실을 가리킨다. '사실'이면서도 거짓이 없는 사실이라는 말이다. 결국 '사실'에는 거짓도 존재할 수도 있다. 실제로 일어난 사건이나 현상 속에도 거짓이 있다는 의미이다. 그러면 '진실'은 모두 '사실'일까? 반드시 그렇지는 않다. 삶에는 '사실'이 아닌 부분에도 많은 '진실'이 담겨 있다. 삶을 다루는 논술에서 '사실'만이 아니라 '진실'도 다뤄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나아가 논술은 '진실'을 찾아가는 길이기도 하다. 다음 글을 보자.

휴일이라 아침에 늦잠을 잤다. 창밖으로 후두둑 떨어지는 빗소리에 잠을 깼다. 라디오에서는 '유리창엔 비'라는 노래가 나오고 있었다. 창을 열어보니 이상했다. 옆 교회 건물에는 햇살이 비추고 있었기 때문이다. 옥상에 올라갔다. 거기에 그가 있었다. 그가 물통을 이용해서 물을 뿌리고 있었다. "뭐 해?" "갑자기 '유리창엔 비'라는 노래가 나오잖아. 노랫말처럼 너에게 느낌을 주고 싶어서 이러고 있었지."

위 글에서 사실은 어떤 것일까? '휴일이라 늦잠 잔 것, 빗소리에 잠을 깬 것, 라디오에서 노래가 들려온 것, 창을 연 것, 옥상에서 물을 뿌리는 그의 행위' 등이 모두 사실이다. 물론 '비가 내리는 것, 빗소리가 들려온 것' 등은 사실로 처음에는 인식했지만 거짓으로 판명되었다. 정리한다면 '라디오에서 좋은 노래가 나오자, 그가 일부러 옥상에서 물을 뿌려 비가 오는 것처럼 꾸몄다.'는 것이 사실이다. 여기까지 분석한 것이 이 글이 주는 의미의 전부일까? 어딘가 허전하다. 사실을 파악하는 것은 글이 지닌 의미의 본질에 다가가는 과정을 보여줄 뿐이다. 가장 중요한 의미는 숨겨져 있다. 그것은 '그가 왜 그랬을까?' 하는 것이다. 여기에 '시선(視線)'이라는 도구가 개입한다. '그가 왜 그랬을까?'라는 질문에 대한 대답은 글을 읽는 사람들의 시선에 의해 결정된다.

① 날씨도 좋은데 늦잠을 자는 야속한 나를 깨우기 위해서

② 노래가 정말 좋아 그 노래가 지닌 느낌과 완전히 동화되기 위해서

③ 나를 행복하게 만들고 싶은 자신의 마음을 전달하기 위해서

어느 것을 선택하더라도 그것은 진실이다. 물론 제시한 의미 이외의 대답도 존재할 수 있다. 진실은 보는 사람의 시선에 의해 결정되기 때문이다. 논술은 바로 그러한 진실을 찾아가는 과정이다. 물론 거기에는 나름대로의 시선이 전제되어야 한다.

한준희(대구통합교과논술지원단, 경명여고 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