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이규리의 시와 함께] 형 미겔에게-그의 죽음에 부쳐/세사르 바예호

형! 오늘 난 툇마루에 앉아 있어.

형이 없으니까 너무 그리워.

이맘때면 장난을 쳤던 게 생각나. 엄마는

우리를 쓰다듬으며 말씀하셨지. "아이구, 얘들아……."

저녁 기도 전이면

늘 술래잡기를 했듯이 지금은 내가 숨을

차례야. 형이 나를 찾지 못해야 하는데.

대청 마루, 현관, 통로. 그 다음에는 형이 숨고,

나는 형을 찾지 못해야 해. 그 술래잡기에서

우리가 울었던 일 생각나.

형! 8월 어느 날 밤, 형은 새벽녘에 숨었어.

그런데, 웃으며 숨는 대신 시무룩했었지.

가버린 시절 그 오후의 형의 쌍둥이는

지금 형을 못 찾아 마음이 시무룩해졌어. 벌써

어둠이 영혼에 고이는 걸.

형! 너무 늦게까지 숨어 있으면 안 돼

알았지? 엄마가 걱정하시거든.

사랑은 이런 거예요. 죽은 사람의 이름을 수첩에서 지우지 않는 것. 여전히 밥그릇에 밥을 떠놓고, 전화번호를 기억하며, 현관문을 잠그지 않고 딸깍 열어 두는 것. 그 사람이 좋아하는 음식을 혼자서는 먹지 못하는 것, 그리고 누가 물으면 여전히 그 형은 신림동에 있다고 대답하는 것.

애이불상(哀而不傷), 제게도 28살에 죽은 언니가 있지요. 아직 내 언니는 다섯 사람이라고, 그 언니를 빼버리지 않아요. 내가 잊어버리는 날, 언니는 영원히 죽게 될 거니까요.

그리하여 또한 사랑은 이런 거예요. 그의 생일날짜에 여전히 빨간 동그라미를 쳐 놓는 것. 혼자 있을 때 함께 있는 것처럼 이름을 불러주는 것. 사랑을 중단하지 않는 것. 엄마가 걱정하시니 너무 오래 숨어 있지 말라는 이 기막힌 사랑의 말을 들려주는 것. 그리고 무엇보다 그의 몫까지 더 치열하게 살아내는 것.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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