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옛길기행] <23>봉화 도래기재

문닫은 금광, 떠나간 길손…옛 영화 잃은 슬픈 고갯길

폐광된 금정광산 입구 모습.
폐광된 금정광산 입구 모습.
도래기재에서 옥돌봉으로 오르는 길에 있는 550년 된 철쭉나무.
도래기재에서 옥돌봉으로 오르는 길에 있는 550년 된 철쭉나무.
금정수도는 일본인들이 금을 수송하기 위해 뚫은 터널로 폐쇄돼 있다.
금정수도는 일본인들이 금을 수송하기 위해 뚫은 터널로 폐쇄돼 있다.
우구치리에서 발원한 물줄기가 도래기재를 따라 남한강으로 흘러가고 있다.
우구치리에서 발원한 물줄기가 도래기재를 따라 남한강으로 흘러가고 있다.

'억지춘양'이란 말이 생겨난 곳, 붉은 빛이 돌아 적송으로 불리는 '춘양목(春陽木)'의 집산지, '경북의 시베리아'로 알려진 곳이 봉화군 춘양면 서벽리다.

이곳에서 우구치 마을을 지나 강원도 영월을 잇는 88번 국도에서 만날 수 있는 도래기재(옛 지명 도력현(道力峴)).

예언서 '감결'에 "계룡시대가 열리면 '양백지간'에서 인재가 나와 나라를 평안하게 한다"고 기록돼 있는 양백지간 산길 40여리다.

경북 동해안과 내륙을 거쳐 경기도와 서울 등지를 잇는 보부상들의 이동통로이기도 했던 도래기재는 금광의 폐광과 임산물 반입 중단으로 옛 영화를 뒤로 한 채 서서히 역사 속으로 사라져 가고 있었다.

하지만 최근 산림청과 봉화군이 이 일대 문수산과 옥석산, 구룡산 일대에 백두대간수목원을 건설하고 있어 다시 부활을 꿈꾸고 있다.

◆옛 영화만 남아 있다

도래기재는 봉화 서벽리에서 강원도 영월군 상동명을 잇는 험준한 산길이다.

서벽리 북서쪽 2㎞ 거리에 있는 마을 이름을 따와서 도래기재라고 부른다. 도래기마을에는 조선시대 역이 있었고 역촌마을이라고 해서 도역리라 불렀다. 이것이 변해 현재 도래기재로 바뀐 것이다. 서벽에서 백두대간을 가르는 도래기재를 넘으면 골짜기의 모양이 소의 입을 닮았다고 해서 우구치라고 불리는 곳이 있다. 한때는 버스도 다녔지만 지금은 잊혀진 길이어서 사람의 자취를 느낄 수 없는 곳이다. 오지를 찾는 사람들에게는 더없이 고맙고 소중한 길이다.

이렇다 할 이름난 봉우리를 간직하지 못한 탓에 백두대간 종주자들이 아니면 찾는 사람도 드물다.

참나무와 낙엽송이 마루금까지 빼곡하고 등산로 옆에는 철쭉과 진달래가 무성하다. 도래기재에서 옥돌봉으로 오르는 길에는 철쭉이 군락을 이루고 있고 세계에서도 유례를 찾아 보기 힘든 둘레 1m가 넘는 550년 된 철쭉나무도 자란다.

도래기재 정상 아래에는 금광에서 캐낸 광물을 수송하기 위해 1925년 뚤어 놓은 터널(금정수도)이 입구가 폐쇄된 채 여전히 제자리를 지키고 있다.

산 넘어 우구치는 사람들의 냄새가 많이 나는 곳이기도 하다. 고랭지 채소 재배지이며 낙동강과 남한강이 갈라지는 곳이기도 하다. 또 산판과 금광으로 유명한 마을도 형성돼 있다.

그러나 이곳에서는 금광채굴업자나 산판업자, 수없이 넘나들던 트럭 등 옛 영화를 더이상 찾아보기 힘들다.

고갯길을 따라 남아 있는 폐광의 흔적들은 을씨년스럽기까지 하다. 빈집이 더러 있지만 아직 폐촌은 아니다. 그냥 겉으로 보기에는 7여가구가 오손도손 삶의 터전을 일궈가고 있다. 물론 1970년대 금광의 영화가 사라지고 하나 둘 떠나면서 우구치마을과 도래기재의 역사도 함께 변했다.

춘양면 서벽리 역시 최고의 금강송 군락지로 손꼽혔지만 일제때 남벌된 탓에 춘양의 우수한 금강소나무들은 현재 1천500여 그루만 있다. 수령도 20~80년에 불과하다. 2001년 문화재용 목재 생산림으로 지정된 후 문화재 보수용 및 재건용 이외에는 반출이 금지된 상태여서 목재상들의 발길도 끊겼다.

이종식(83'춘양면 우구치)씨는 "금광개발이 한창일 때는 상주 직원만 3천 명에 달해 1만2천여 명이 이 골짜기에서 살고 있었고 매일 장이 서는 상설시장도 있었다"면서 "60~70년대만 해도 마을에는 여관과 극장이 있었고 도래기재로 들어서는 길목에는 색시집도 서너 개나 있어 밤이면 불야성을 이뤘다"고 회고했다. 또 "도래기재를 통해 대구를 왕복하는 직행버스도 다닌 적이 있다"며 "금정광산이 가동될 때는 영주세무사가 봉화에 있을 정도로 경기가 좋았다"며 옛날을 아쉬워했다.

정민호 봉화군 학예연구사는 "서벽면 일대는 부족국가 시대에도 소라국이라는 큰 부족국가가 들어설 만큼 넓은 들판과 물을 갖고 있었다"며 "옥마지(玉馬誌)에는 동사유기(東史遺記)라는 책을 인용,'춘양현 남쪽 10리 수구(水口)에 소라국 옛터가 있고 그 서쪽에 감옥 터가 있다. 지금도 농부가 밭갈이를 할 때 종종 밭과 들 가운데서 석노(돌로 만든 화살촉)가 출토된다고 기록되어 있다"고 귀뜸했다.

◆남한강'낙동강의 발원지, 도 경계는 아니다

이 고갯길은 대부분의 고갯길처럼 도 경계가 아니다. 지나는 사람들은 대다수 도래기재가 경상도와 강원도의 경계라고 잘못 알고 있다. 행정구역상 경계는 도래기재를 넘어 차로 강원도 방향으로 20여분 달려가야 나온다.

우구치리와 강원도 영월 상동면을 잇는 폭 10m, 길이 20m 남짓한 다리(조제 2교)가 경계다. 우구치마을이다. 도래기재를 사이에 두고 서벽에는 낙동강 발원지인 운곡천이 흐르고 도래기재 너머 우구치에서는 남한강의 물이 흐른다.

이 지역을 오가는 사람들 대다수는 도래기재가 경상도와 강원도의 경계라고 잘못 알고 있다. 도래기재 정상에 경상북도를 알리는 안내판이 서 있으니 그럴 법도 했다. 행정구역상 경계는 도래기재가 아니기 때문이다.

남한강이 시작되는 조제2교가 도 경계가 된 데는 재미난 이유가 있다. 정민호 봉화군 학예연구사는 "조선시대 임금이 한강이 위치한 서울에 팔도의 물을 다 모으고 싶어 강원도 땅이던 우구치를 인위적으로 봉화 땅에 속하게 했다"며"결국 세월이 흐른 지금 도래기재를 품고 있는 봉화가 낙동강과 한강의 물길을 열어주는 곳이 된 셈"이라고 전했다.

◆금정광업소

금정광업소는 봉화군 춘양면 우구치리(금정리)에 있는 금 ·은광산이다. 현재는 폐광이 된 상태이며 산림 복구가 완료된 상태다.

자연금이 나왔던 곳으로는 국내에서 유일한 곳이다.

이곳에서 생산된 금은 모두 도래기재를 통해 운반됐다. 마을 입구에는 '우구치리'라는 돌 이정표가 세워져 있다.

그러나 사람들은 아직도 '금정'이라는 이름을 더 친숙하게 부른다. 일본인들이 금광을 개발하면서 붙여진 이름이다. 당시 금광에서는 물이 많아 나와 금을 캐는 것이 마치 우물 속에서 금을 기르는 것과 같다고 해서 금정(金井)이라고 불렀다고 한다.

요즘은 봉화지역에 사는 사람들도 금광이 있었는지 조차 모르는 이가 많을 정도다. 그러나 한창 때는 우리나라에서 첫번째 가는 금 산지였다.

"우리나라에서 두번째 가라면 서러울 정도로 금이 많이 나오는 금광이였지. 한 달에 200kg 이상 생산하면 보너스도 줬다"는 이종식(83) 씨는 금정광업소에서 근무했던 몇 안 되는 생존자다.

이씨는 "해방무렵부터 금이 줄기 시작해 한국전쟁이 끝난 후 대명광업소가 금을 캤고 나중에 들어온 함태광업소는 몇 군데 시추했지만 금맥을 못 찾았다"며 "이곳에는 이제 금이 없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각종 소문이 무성하다. 이씨는 "일본인이 캐간 것은 금 송아지 뒷 다리부분이고 아직까지 몸통은 남아있다. 광을 아래서부터 뚫어야 물이 안 차는데 꼭대기부터 뚫어서 물이 차 채광을 못한다. 금맥은 있는데 광부들이 도둑질을 해서 적자가 난다"는 말은 다 헛소문이라고 일축했다.

태백산에는 금송아지 두 마리가 산다고 전해진다.

한 마리는 북쪽 끝 금대봉 어딘가에 묻혀 있고 한 마리는 남쪽 끝 구룡산 자락에 묻혀 있다는 것. 금대봉에서 금송아지를 찾으려는 이들이 다녀갔지만 결국 그들은 뜻을 이루지 못했고 남쪽산 구룡산 자락에 묻혀 있던 금송아지는 강원도 정선에 살던 김태연씨라는 사람에 의헤 발견돼 세상에 모습을 드러냈다.

바로 금정광산이다. 김씨는 일본인에게 광업권을 넘겼고 이때 받은 돈은 50대 재벌에 들어갈 정도로 많은 돈이였다고 한다.

일본인들에 의해 본격적으로 금광이 개발되면서 1925년 도래기재 정상부근에 터널(금정수도)이 뚫렸고 폐광과 함께 낡고 노후된 터널은 폐쇄됐다. 결국 도래기재는 광산이 문을 닫으면서 길손이 없는 고개길로 쇠락했다.

◆국립백두대간 수목원

봉화군과 산림청은 도래기재 인근에 국립백두대간 수목원을 조성한다.

산림청은 사업비 2천515억 원을 들여 2011년부터 봉화군 춘양면 서벽리와 물야면 오전리 일대 5천179㏊에 종자 저장시설, 침엽수원 등 각종 주제원, 기후변화지표식물원, 고산식물원, 전시'교육 및 연구시설 등을 갖춘 국립백두대간수목원 조성사업을 벌여 2013년 말 완공할 계획이다.

현재 토지 보상업무에 착수해 전체의 70% 협의계약을 마무리했으며, 내년 6월까지 기본 및 실시설계를 한 뒤 2011년 하반기에 착수한다.

특히 산림청은 2014년 이곳에 백두산 호랑이 한 쌍을 들여오기로 했다.

산림청 박종호 산림이용국장은 "최근 중국 베이징에서 열린 제8차 한'중 산림협력회의에서 '백두산 호랑이 종 보전협력 양해각서'를 체결하고 중국 측으로부터 생후 5년가량 된 백두산 호랑이 암수 한 쌍을 기증받기로 했다"며 "이 호랑이는 백두대간 수목원의 상징물로 길러지게 된다"고 밝혔다.

신승택 봉화군 산림과장은 "국립 백두대간수목원은 지구온난화에 대비해 백두대간 산림생태계의 보전과 연구, 자연학습 교육장으로 활용할 계획"이라며 "지역 대표 휴양 관광지로 부각돼 지역경제 활성화에 크게 기여할 것이며 옛 영화를 다시 찾게 되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봉화· 마경대기자 kdma@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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