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좋은생각 행복편지] 동백꽃과 찌질이

차승원, 공효진 주연의 드라마 '최고의 사랑'이 요즘 화제입니다. 꽈배기처럼 꼬아 놓은 출생의 비밀이라던가, 며느리를 괴롭히는 비상식적인 시어머니, 반사회성 인격장애인 '싸이코패스'라 진단받을 만한 인물들이 나오지 않아 좋습니다.

특히 스토리 전개를 위해 외국 문학작품을 인용한 기존 국내 드라마와 달리 김유정의 단편소설 '동백꽃', 김소월의 시 '진달래꽃' 등 정겨운 우리네 문학작품이 감칠맛 나는 주요 모티브로 등장하고 있어 더 끌립니다. 이 드라마에서는 톱모델이자 영화배우인 독고진(차승원)이 구애정(공효진)에게 사랑 고백을 했지만 거절당하자 수치심에 치를 떨며 '동백꽃'을 패러디한 이야기를 들려주는 장면이 나옵니다.

독고진이 찌질이라 칭하는 사람은 다름 아닌 구애정입니다. '찌질이'라는 단어를 반복함으로써 수치심을 되돌려주려 한 것이지요. 구애정은 걸그룹 멤버로 한때 최고의 인기를 누렸지만 지금은 비호감 연예인의 상징이 되어 방송국 언저리를 맴돕니다. 오빠와 조카, 아버지를 먹여살리는 가장이며, 시골 나이트클럽에서 노래하며 하루에 스케줄이 달랑 하나뿐인 '생계형 연예인'입니다.

표면적으로 보면 구애정은 찌질한 삶을 살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녀는 절대로 찌질이가 아닙니다. 찌질이란 '다른 사람과 잘 어울려 놀지 못하는 아이' '지지리도 못난 놈' 이란 뜻을 담고 있으니까요. '찌질이'에서 파생된 '찌질러'도 있더군요. 합리적 논거 없이 악성 덧글을 다는 네티즌, 강자에겐 비굴하고 약자에겐 강한 모습을 보이는 이들을 일컫는 신조어입니다. '찌질하다'의 '찌질'과 '-한 사람'을 뜻하는 영어 접미사 '-er'이 결합된 말이지요.

드라마 속의 10년 전, 구애정은 자신에 대한 시기'질투심 때문에 못된 짓을 한 그룹 막내와 또 다른 멤버의 비밀을 지켜 주려고 모든 오해를 혼자 뒤집어씁니다. 이 일로 한순간에 비호감 연예인으로 전락하게 되었고 그런 그녀를 향해 사람들은 갖은 루머를 만들어 냅니다. 하지만 구애정은 애써 해명하려 않고 누구 탓도 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그들을 감싸 안으며 하루하루 최선을 다해 살아갑니다.

전라남도 보성에 있는 대원사에는 성철 스님의 말씀이 새겨진 목판이 있습니다. '공부 가운데 가장 큰 공부는 남의 허물을 뒤집어쓰는 것이다'라는. 그러고 보면 구애정은 남의 허물을 뒤집어쓰는 가장 큰 공부를 한 사람이자 찌질이들을 포용하는 마음그릇 넓은 사람입니다.

시기'질투 때문에 자기 머릿속을 온통 다른 사람들로 채워놓는 사람이야말로 진짜 찌질이일 것입니다. 경쟁 상대를 곤경에 빠트릴 계략을 짜고 루머를 만들어내느라 정작 자기 일에 집중하지 못하지요. 만사에 자신이 중심에 서기를 원하다보니 정정당당한 게임을 할 줄 모르며, 상생을 모릅니다. 그래서 늘 불안합니다. 언젠가는 들통날 거짓말 때문에 불안하고 자리를 빼앗길까봐 두렵습니다. '자아 존중감'은 물론이고 개인심리학자인 알프레드 아들러가 정신 건강의 척도로 강조했던 '사회적 관심'도 낮습니다.

찌질이 소리를 듣자고 태어난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을 겁니다. 행복한 삶을 누리기 위해 태어난 귀한 생명인데 '찌질이'처럼 아무렇게나 살아서는 안 되겠지요. 내가 소중하듯 이 세상에서 귀하지 않은 사람도 없습니다. 되는 대로 마지못해 피어난 꽃은 하나도 없으며, 솔로몬의 모든 영광을 합쳐도 들에 핀 꽃 한 송이 같지 못하다 하지 않았습니까.

시기'질투는 자신의 삶을 우월해지게 하는 원동력이 될 수도 있지만 무익함이 더 많습니다. 이러한 사실을 아는 사람은 타인에게 쏟는 부정적인 관심을 멈추고 자신의 내면 탐색과 꿈 성취에 더욱 매진하지요. 자신과 삶을 진정으로 사랑하는 사람은 절대로 찌질이가 될 수 없습니다.

19세기 영국의 철학자이자 경제학자였던 존 스튜어트 밀은 '모든 격정 중에서 가중 추악하고 반사회적인 것이 시기'라고 했습니다. 경쟁이 만연한 세상 속에서 시기와 질투로 마음에 파문이 일 때 '시기는 자신의 화살로 자신을 죽인다'라는 '그리스 사화집'(Anthologia Graeca)의 문구를 떠올려 보면 어떨까요?

김은아<영남대 유아교육과 겸임교수·마음문학치료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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