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학능력시험은 학생이 대학에서 수학할 수 있는 능력을 측정하는 시험이다. 그런 점에서 볼 때 대학에 입학하기 위해 치르는 모든 시험은 수학능력시험인 셈이다. 하지만 좁은 의미의 수학능력시험, 소위 수능은 지난 18년간 절대적인 권위를 지니며 교육의 전반적인 부분을 지배해왔다. 1994년 수학능력시험이라는 시험 유형이 발표되자 학교교육은 심각한 고민에 빠졌다. 당시 언론 보도만 보더라도 '이건 IQ 측정이지 공부가 아니다'는 비판부터 '주입식 교육의 폐해를 극복하고 사고력과 창의력을 측정하여 잠재된 능력을 강조하는 좋은 시험이다'는 찬사까지 그 반응도 다양한 스펙트럼을 지니고 있었다.
수학능력시험이 처음 실시된 1994년, 국어교사인 나에게 언어영역이란 과목은 신세계였다. 특히 비문학 부분은 가르치기가 쉽지 않았다. 근본적으로 언어와 관련된 현상을 다루기 때문에 문제 풀이 자체는 적응할 수 있었지만 사회, 역사, 음악, 미술, 과학 등이 망라된 다양한 내용을 이해하는 것이 무척 어려웠다. 지문의 내용과 관련된 교과목 선생님을 거의 매일 찾아다니면서 도움을 받았다. 힘들었지만 다양한 영역의 지식을 접하는 것이 행복했고 의미 있는 시간이었다. 교과의 통합된 사고를 필요로 하는 통합교과형 논술에 다가갈 수 있는 기본적인 바탕에는 그때의 노력이 많은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분명 수학능력시험은 당시 사회의 전반적인 변화를 반영한 제도였다. 부분적인 변화는 있었지만 긴 시간 동안 본래의 틀이 유지될 수 있었던 것도 같은 맥락이다. 수학능력시험이 나온 이후 영역별로 완전히 지배적인 영향을 미치는 참고서나 문제집이 나타나지 않았다는 것은 이 제도가 그만큼 다양한 사고를 필요로 한다는 것을 증명한다. 하지만 시간이 많이 흘렀다. 교육의 방향이 바뀌면서 대학수학능력시험은 문제 유형의 한계를 드러내고 다시 주입식 교육으로 변질되면서 개편의 도마 위에 오르게 되었다.
교육과정평가원은 최근 국어, 수학, 영어, 사회, 과학 등 교과목 중심으로 수학능력시험을 개편하겠다는 발표와 함께 시험 난이도를 떨어뜨려 수능을 자격시험화하겠다는 방침을 발표했다. 하지만 이런 변화에 대해 학부모와 교사들은 전적으로 신뢰를 보이지 않는다. 그것은 1994년 수능시험 제도 도입 이후 언제나 본질적인 고민이 아니라 땜질 처방에만 매달렸기 때문이다. 바로 그 땜질 처방의 중심에 여론이라는 것이 존재한다. 가장 대표적인 사례가 수능 등급제 폐지와 점수제 복귀이다. 등급 커트라인 바로 아래에 위치하여 피해를 본 학생과 학부모가 중심이 되어 수능 등급제에 대해 비판 여론을 형성했고, 정부는 그 여론을 수렴하여 등급제 폐지와 정시모집 논술고사 폐지를 유도했다. 최근에는 사교육을 조장한다는 여론의 명분을 등에 업고 대학별 논술고사의 축소를 강하게 요구하기도 했다.
수학능력시험을 교과별로 분리하여 실시하는 문제는 시대정신과 더불어 교육의 전반적인 흐름과도 맞지 않다. 현대는 오히려 통합교과적인 안목이 필요한 시대이다. 나아가 아이들의 부담을 줄이는 방향으로 시험제도를 개선한다고 했는데 부담이 줄어들지도 의문이다. 시험이 아이들의 미래를 결정하는 유일한 잣대가 되는 한, 시험과목을 줄여서 평가한다고 해도 실질적인 부담은 줄지 않는다. 이른바 '제로섬 게임'이기 때문이다. 교육정책 입안자들은 이러한 사실을 모를까? 당연히 알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정책을 내세우는 이유는 아무래도 여론 때문이다.
그 여론의 중심에 사교육이 위치한다. 분명 사교육은 대한민국 교육의 큰 문제이다. 그런데 접근의 방향이 잘못되었다. 사교육이 지닌 비용의 문제에만 집중하다 보니 오히려 교육적인 방향에 대한 접근은 별로 없었다. 스스로 문제를 찾고 문제를 해결해가는 자기주도적인 학습보다는 기술적으로 정답을 찾아가는 방법을 가르치는 거기에 문제가 있다. 그 상황을 비판한다고 해도 여론이 크게 변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가장 빠른 방법은 바로 여론이 가장 주목하는 평가제도의 개선이다. 자기주도적인 문제해결과정, 창의성, 인성을 평가에 반영할 수 있는 대학입시제도의 개선 말이다. 진정한 대안은 여론과 정책의 사이에 있다. 경북대학교에서 실시하는 AAT에는 최소한 그러한 노력이 내포되어 있다. 한준희(대구통합교과논술지원단, 경명여고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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