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겉보리 서 말만 있으면 처가살이하랴'라는 속담이 있다. 요즘은 처가 도움받을 수 있다면 굳이 멀리할 것도 아니라는 풍조가 우세하니 속담도 달라져야 할 법도 하다. 하지만 모름지기 마음가짐은 그래야 한다는 점을 속담은 가르친다. 어렵더라도 웬만하면 제 힘으로 앞가림하고 사는 게 떳떳하다는 소리다. 단 차별 대우만 없다면 말이다. 사위도 자식이고 서자나 주워온 것도 아닌데 무관심도 모자라 차별하는 것은 아무리 굳게 마음먹어도 섭섭하기 마련이다.
대구가 요즘 그런 심정이다. 미운털이 박혔는지 아니면 겉보리 서 말도 없는 처지여서 그런지는 모르겠으나 술술 풀리는 일이 거의 없다. 잘되는 놈은 엎어져도 떡함지인데 대구는 잘해보겠다고 노력해도 떡함지가 아니라 피죽도 언감생심이다. 제 힘으로 큰일을 벌여놓고 "조금만 도와주면 잘 될 텐데…" 하며 손을 벌려보지만 정부의 반응은 매번 신통찮다. '겉보리 서 말' 생각이 절로 나지만 능력 없으니 호기만 살아서 될 일도 아니다.
강원도 평창이 2018년 동계올림픽 유치에 성공했다. 2전 3기 만에 어렵게 일궈낸 결실이다. 선진국의 전유물로만 여겼던 동계올림픽을 강원도에서, 그것도 삿포로'나가노에 이어 개최국으로 치면 아시아에서 두 번째니 진심으로 기뻐할 일이다. 그런데 평창동계올림픽 유치 소식이 들리자마자 정부가 적극 돕겠다며 발벗고 나서고, 언론들이 지면이 미어터질 정도로 관련 뉴스를 쏟아내는 것을 보면서 대구시민들은 속이 편치 않다. 인프라 구축에 10조 원 가까이 투자하겠다고 정부가 득달같이 약속한 것을 보면 더욱 그렇다. 따져보면 대구세계육상선수권대회 지원금이 고작 1천750억 원, 그것도 차일피일하다 겨우 받은 것이니 찬밥도 이런 찬밥이 없다.
대구가 '몸바사의 기적'이라고 부르는 2007년 대회 유치 단계 때부터 정부가 철저히 외면해 왔으니 뭐 이제 와서 타박할 것도 섭섭해할 것도 없다. "중앙정부와 공감대도 없이 왜 그리 섣불리 유치하나" "단일 종목이어서 정부가 나서기 어렵다"는 말도 참고 넘길 수 있다. 대통령이 직접 남아공 더반으로 날아가고, 기업 총수들이 총출동하다시피 해도 평창은 말 그대로 엄친아인가 보다 하고 말면 그만이다.
그러나 세계육상선수권대회는 올림픽, 월드컵과 더불어 세계 3대 스포츠 이벤트다. 대구대회 개막이 불과 40여 일 남았지만 많은 국민들은 이 사실을 모르고 있다. 한 일간지가 서울시민을 대상으로 조사한 설문조사에서 응답자의 36.5%가 '금시초문'이라고 답했다고 한다. 어디서 열리는지 모른다고 답한 비율까지 합하면 무려 83%의 국민이 대구세계육상선수권대회에 관심이 없다는 얘기다.
이렇게 된 데에는 대구시의 책임이 크다. 대회 분위기 조성 등 일을 제대로 하지 않았다는 얘기다. 하지만 현재 드러난 상황만 놓고 보면 이를 대구시 탓으로만 돌릴 수 있을까. 2007년 대구가 대회 유치에 나서자 노무현 정부는 말렸다. 이명박 정부 들어와서도 탐탁지 않게 여기기는 마찬가지다. 온 국민의 관심을 모으며 잔칫집이 된 평창에 비해 대구는 곁불 쬐기도 눈치 보일 정도로 심한 온도 차를 보이고 있다. 이러니 대회 준비가 순탄하게 굴러가기가 만무하고 힘만 빠지는 것이다.
단일 종목 대회이고 관심을 끌 만한 육상 스타가 없다는 정부의 변명은 육상에 대한 낮은 인식을 말해준다. 동계올림픽 참가국은 많아야 80여 개국에 그치고 기업 후원 규모도 하계올림픽의 3분의 1 수준이라 수지 타산 맞추기가 쉽지 않다. 반면 세계육상선수권대회의 경우 참가 인원은 올림픽에 비해 적지만 전 세계 200여 개국이 참가하는 매머드 대회다. 전 세계 TV 시청자만 해도 동계올림픽과는 비교가 안 된다. 9일 동안 80억 명이 TV로 지켜볼 세계육상선수권대회가 그냥 치르고 말 작은 동네잔치인지 정부는 곰곰이 생각해 봐야 한다. 대구 대회가 정부의 무관심 속에 동네잔치로 끝난다면 국가 브랜드 이미지를 높일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스스로 차버리는 꼴이다. 만에 하나 대구 대회의 실패 여파가 평창에 미치지 않는다는 보장도 없다. 국제사회의 눈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엄격하다. 늦었지만 정부는 대구세계육상선수권대회에 대한 인식을 바로잡아야 한다. 도와주지는 못할망정 기죽이고 쪽박마저 깨는 일은 없어야 한다. 대회가 며칠 남지 않았다.
徐琮澈(논설위원)
댓글 많은 뉴스
문재인 "정치탄압"…뇌물죄 수사검사 공수처에 고발
이준석, 전장연 성당 시위에 "사회적 약자 프레임 악용한 집단 이기주의"
[전문] 한덕수, 대선 출마 "임기 3년으로 단축…개헌 완료 후 퇴임"
대법, 이재명 '선거법 위반' 파기환송…"골프발언, 허위사실공표"
민주당 "李 유죄 판단 대법관 10명 탄핵하자"…국힘 "이성 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