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피숍과 다방의 차이점은? 커피숍은 배달이 되지 않지만 다방은 배달이 된다는 점이다. 냉장고 문을 열었는데 먹을 것이 하나도 없다. 허기진 배를 달래고 싶은데 라면은 물리고 나가자니 귀찮다. 이럴 때 필요한 것은? 바로 전화 한 통이다. 설거지 걱정까지 덜어주는 배달 서비스가 우리의 전화를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는 배달의 천국이다. 배달되지 않는 것이 없을 정도로 배달 품목이 다양하다. 같은 유교 문화권에 있는 일본과 중국에 비해 배달문화가 유독 발달했다. 이를 두고 혹자들은 우스갯소리로 "배달의 기수, 배달의 민족이어서 배달 문화가 발달했다"고 말한다. 배달문화는 외국인들이 놀라워하는 한국문화 중 하나다. 팁 문화에 익숙한 외국인들의 눈에 팁도 주지 않고 가만히 앉아서 피자'짜장면 등을 시켜 먹을 수 있는 배달문화는 신기할 따름이다. 올 5월 미국 CNN이 운영하는 아시아정보사이트 'CNN Go'는 '서울이 세계에서 가장 멋진 도시인 50가지 이유'에서 배달 서비스를 세 번째 이유로 꼽았다. 세계인도 놀라는 우리의 배달문화를 들여다봤다.
◆배달의 현주소
1980년대만 해도 배달이 되는 것은 편지'꽃'신문'우유'짜장면 등이 전부였다. 하지만 1990년대 들어 상황이 바뀌었다. 오토바이 택배업인 '퀵 서비스'의 등장은 배달산업을 성장시키는 기폭제가 됐다. 이후 1990년대 중반 대기업들이 홈쇼핑사업에 뛰어들어 무료 배송비 시대를 열면서 배달산업이 꽃피기 시작했다.
배달 품목은 갈수록 다양해지고 있다. 지금은 배달되지 않는 품목이 없을 정도다. 홈쇼핑에서 물건을 주문하면 24시간 내 배달이 된다. 동네마트에서 배추 한 포기를 사도 배달을 해 주고 옷 하나를 맡겨도 세탁소에서는 친절하게 집까지 갖다 준다. 치킨과 피자뿐 아니라 스파게티'초밥'우동'순대'떡볶이'보쌈'족발'회'삼계탕 등은 기본이고 조상들에게 올리는 제사음식, 집들이 뷔페, 아침식사와 반찬까지 배달이 된다.
심지어 사람도 배달한다. 평소에는 볼 수 없지만 수능일에는 수험생을 실어 나르는 풍경을 심심찮게 목격할 수 있다. 또 바다 한가운데 떠 있는 배에 배달되는 한정식도 있다. 목포 앞바다 낚시꾼들 사이에서 인기 높은 이 한정식에는 갈치조림'제육볶음 등 10가지 이상의 반찬이 딸려 나온다고 한다. 무엇이든 대행해서 배달해주는 잔심부름업체들도 있다. 잔심부름업체의 대행 범위는 음식 배달뿐 아니라 담배 사오기, 장보기, 등본 떼 오기, 야구장 티켓 구매해 주기, 비 오는 날 아이에게 우산 갖다 주기, 한여름 팥빙수 사다 주기, 아플 때 약 사다 주기 등 다양하다. 이쯤 되면 안 되는 것 빼고 다 배달이 되는 셈이다.
하지만 배달문화의 영역 확장은 멈출 기세를 보이지 않고 있다. 최근에는 다이어트 열풍을 타고 맞춤형 다이어트 식단을 제공하는 업체도 등장했다. 또 전화 한 통이면 풍선 재료를 가져와 집 전체를 놀이동산으로 꾸며주는 '움직이는 놀이방', 트레이너가 운동기구를 들고 집을 찾아오는 '움직이는 헬스장'을 비롯해 칵테일'생맥주'이혼서류'이유식'과일간식을 배달해 주는 이색 배달서비스까지 생겨났다.
오토바이나 차량 대신 지하철을 이용한 택배도 등장했다. 올해 초 영업을 시작한 '대구지하철택배'(www.dgquick.co.kr)의 특징은 지하철을 이용해 물건을 배달해 주는 것. 지하철 택배는 여러 가지 장점이 있다. 지하철을 이용하기 때문에 고유가시대 유류비 걱정이 없다. 또 배달원 가운데 지하철 요금이 면제되는 65세 이상 어르신들이 많아 저렴한 가격에 택배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다.
문화와 강좌도 배달된다. 올 7월 대구북부도서관은 대동초교를 방문해 인형극 '방귀쟁이 며느리'와 '노래 나와라 뚝딱'을 공연했다. 또 대구시립예술단은 지난해에 이어 올해에도 대구시내 초'중'고교와 복지시설을 방문해 문화를 배달하는 '찾아가는 문화 공연'을 펼치고 있다. 대구 달서구청은 평생교육의 하나로 지난해부터 주민들이 원하는 시간과 장소에 강사를 파견해 강좌를 배달하는 강사 파견제를 운영하고 있다. 달서구청이 강사비를 제공하기 때문에 주민들은 재료비'실습비만 부담하면 무료로 교육을 받을 수 있다. 현재 달서구청에 파견강사로 등록된 강사는 250여 명. 이들의 전공 분야는 미술'공예'수지침'색소폰 등 40여 개를 아우르고 있다. 달서구청은 올해 주민들에게 40여 개 강좌를 배달했다. 배달서비스가 생활화되면서 배달산업은 성장세를 거듭하고 있다. 업계에 따르면 국내 배달시장 규모는 연간 3조5천억원에 달하며 매년 평균 20% 정도 증가하고 있다.
◆배달업계에도 스마트 바람
배달 품목뿐 아니라 주문 방식도 다양해지고 있다. 냉장고 옆에 붙어 있는 전단지를 보고 음식을 주문하는 아날로그 방식을 넘어 가까운 곳의 배달 음식점을 자동으로 찾아주는 디지털 방식인 스마트폰 애플리케이션이 등장한 것. 배달음식점을 찾아주는 애플리케이션은 '배달엔' '배달통' '배달의 민족' 등 여러 개가 있다. 21세기 첨단 전단지를 표방한 '배달의 민족'의 경우 지난해 7월 출시된 후 다운로드 건수가 220만 건을 넘었다. 등록된 가게도 전국 10만여 곳에 이른다.
또 전문화된 콜센터를 설립해 주문만 처리해 주는 업체가 있는가 하면 배달만을 전문적으로 수행하는 업체도 등장했다. 배달문화에 아웃소싱 바람이 불고 있는 셈이다. 대구 중구에서 피자가게를 운영하는 김모(43) 씨는 "배달전문업체를 이용하면 안전사고 걱정 등을 덜 수 있어 건당 배달 수수료를 주는 조건으로 배달전문업체와 계약을 맺었다"고 말했다.
◆배달문화가 발달한 이유
우리나라는 동네 상권이 잘 발달되어 있다. 집 앞에만 나가면 음식점과 슈퍼마켓 등이 널려 있어 배달을 하지 않아도 이용하는 데 큰 불편함이 없다. 우리나라 전통 음식은 탕류(국'찌개 등)가 많아 배달하는 데도 적합하지 않다. 또 유교의 영향으로 밥상에서 밥그릇을 드는 것조차 금기시되어 있는 점을 고려하면 배달문화가 발달할 이유가 없어 보인다. 하지만 세계 최고의 배달문화를 자랑한다. 왜 그럴까?
밥상 예절이 엄격한 우리나라에 배달문화를 이식시킨 주인공은 중국 음식이다. 한국 전쟁 이후 대중화된 짜장면은 한국의 음식 배달문화를 낳은 기수로 꼽힌다. 짜장면으로 시작된 배달문화를 본격적으로 발전시킨 것은 '빨리 빨리 문화'다. 전문가들은 '빨리 빨리 문화'에 편리함을 추구하는 인간의 보편적인 욕구가 맞물리면서 우리나라 특유의 배달문화가 발달했다고 보고 있다.
또 IMF 외환위기와 경기불황의 영향으로 음식점'슈퍼마켓 등의 자영업이 크게 늘어나면서 서비스 경쟁이 가속화된 것도 한 원인으로 꼽힌다. 한국음식업중앙회 대구시지회 관계자는 "살아남기 위해 차별화된 서비스로 배달을 해주는 업체와 업종들이 늘어나면서 지금처럼 배달이 일반화된 서비스로 자리 잡게 되었다"고 설명했다.
◆배달문화의 명과 암
배달문화는 사회복지 분야에서 빛을 발하고 있다. 끼니를 제대로 해결하지 못하는 결식아동과 노인들에게 전해지는 희망의 도시락, 추위에 떠는 이웃들에게 따뜻한 온기가 되어 주는 연탄 배달, 문화 소외계층에 배달되는 문화도시락 등은 더불어 살아가는 사회를 만드는 불쏘시개 역할을 하고 있다.
하지만 배달문화가 발달함에 따라 사고에 대한 우려도 높아지고 있다. 월급제가 아니라 배달 건수에 따라 성과급이 지급되는 경우 시간이 곧 돈이기 때문에 배달맨들의 난폭운전과 사고를 부르는 원인이 되고 있다. 고용노동부가 공개한 '이륜차 재해 현황'에 따르면 '음식업 및 숙박업'의 이륜차 재해 건수는 2005년 578건에서 2010년 1천876건으로 증가했다.
특히 14세 이상 청소년 배달노동자는 2명 중 1명이 사고를 당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청소년노동인권네트워크가 올 4, 5월 전국 14세 이상 청소년 배달노동자 665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한 결과, 응답자 중 50.2%가 배달 중 사고를 경험했다고 답했다. 또 사고를 당한 청소년 배달노동자 가운데 입원치료를 받은 경우는 33.6%에 불과했고 30.1%는 사고 후 어떤 치료도 받지 않았으며 17.8%는 자비로 치료비를 해결한 것으로 드러났다.
배달문화가 폭주족을 낳았다는 주장도 있다. 국내 폭주족은 1990년대 초 본격적으로 등장했다. 오토바이 택배업이 등장한 시기와 교묘하게 맞아떨어진다. 배달일을 하면서 알게 된 교통 상식을 범죄에 악용하는 경우도 있다. 일방통행로에서 역주행 차량과 사고가 났을 경우 역주행 운전자에게 전적으로 과실책임이 있다는 사실을 악용해 일방통행로에서 고의로 사고를 내는 수법으로 수백만원의 돈을 가로챈 10대 10여 명이 무더기로 경찰에 검거된 사례도 있다.
이 밖에 배달음식의 경우 음식이 만들어지는 과정을 전혀 알 수 없어 소비자들이 불안감을 갖는 것도 문제로 지적되고 있다. 직장인 최진우(32) 씨는 "원룸에서 혼자 살다 보니 음식을 자주 배달시켜 먹는다. 음식을 주문할 때마다 어떤 재료를 사용해 어떻게 조리하는지 알 수 없어 꺼림칙하다"고 말했다.
이경달기자 sarang@msnet.co.kr
사진'이채근기자 mincho@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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