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야고부] 때를 가려야 할 말

로봇
mWiz 이 기사 포인트

이희승 선생의 수필 '딸깍발이'는 옛 선비들의 자세를 보여준다. 돈벌이에는 손방이어서 궁상이 다닥다닥 달려 있지만 기개만은 목이 부러져도 굴하지 않았다고 한다. 나라에 잘못된 일이 일어나면 죽음도 개의치 않고 덤비는 의기를 보였다고 했다. 선비나 벼슬아치들의 자세를 비교할 때 지당대신과 도끼상소는 극과 극이다. 무슨 일이든 '지당하옵니다'로 곡학아세하는 지당대신은 호의호식하지만 대신 세인들의 조롱을 받았다. 그러나 내 말이 틀리면 목을 치라며 직언하는 선비의 길은 험하지만 사람들은 그 이름을 오래 기억했다.

선비의 고장답게 영남의 어른들은 '목에 칼이 들어와도 바른말을 하라'고 가르쳤다. 그러나 살다 보면 바른말이 능사가 아닌 예가 많다. 목에만 칼이 들어오는 게 아니라 말 한마디에 인생이 헝클어지기도 한다. 복잡한 이해관계가 얽힌 현대사회에선 목에 칼이 들어와도 바른말을 해야 하는 것보다 더 중요한 지혜는 때와 장소를 가려 말을 해야 하는 것일 수도 있다.

2차대전의 주역인 독일과 일본을 비교할 때 세상 사람들은 전후 독일의 자세에 더 높은 점수를 준다. 전쟁과 상관없는 사람들까지 자기 할아버지와 아버지의 잘못을 인정하고 반성하는 자세를 보인다는 이유에서다. 독일의 지식인 사회는 '독일인은 단지 독일인이라는 이유로 이스라엘에 대해서는 해서는 안 될 말이 있다'고 여긴다. 학살의 책임과 잘못을 인정한다는 자세다.

이한구 한나라당 의원이 "대구경북의 발전을 위해서 대선에서 박근혜 의원이 꼭 이겨야 한다"며 "박 의원을 대통령으로 만드는 데 기여할 사람인지 아닌지가 공천 기준으로 가장 중요하다"고 했다. 대구경북의 미래와 희망에 앞장서 온 이 의원의 말은 지당하다. 그러나 지지와 반대가 극명하게 갈리고 대구경북을 바라보는 시선이 복잡한 상황에서 이 의원의 말은 해야 할 때가 아니다. 대구경북의 정치적 득세를 달갑게 여기지 않는 사람들에게 빌미를 주고 지역의 미래에 짐이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이희승 선생은 딸깍발이 말미에 이렇게 썼다. '현대인은 너무 약다. 전체를 위하여 약은 것이 아니라 자기 중심 자기 본위로만 약다. 백년대계를 위하여 영리한 것이 아니라 당장 눈앞의 일 코앞의 일에만 아름아름하는 고식지계에 현명하다.'

서영관 논설주간 seo123@msnet.co.kr

최신 기사

mWiz
1800
AI 뉴스브리핑
정치 경제 사회
진중권 동양대 교수는 이재명 대통령의 '환단고기' 언급에 대해 대통령실의 해명이 문제를 키우고 있다며 비판했다. 그는 이 대통령이 역사적 사실을...
오는 30일부터 경북 내륙과 동해안에 시속 260㎞급 KTX-이음이 본격 운행되며, 중앙선과 동해선이 3시간대 생활권으로 연결되어 지역 이동 편...
국민 MC 유재석이 유튜브 채널 '뜬뜬'에서 자신의 인생관을 언급하며 꾸준한 노력을 강조한 가운데, 최근 방송인 박나래가 불법 의료 시술 의혹에...

많이 본 뉴스

일간
주간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