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한편에 삼 만원이면/ 너무 박하다 싶다가도/ 쌀이 두말인데 생각하면/금방 따뜻한 밥이되네/ 시집 한권에 삼천원이면/ 든공에 비해 헐하다 /싶다가도 / 국밥이 한 그릇인데/ 내 시집이 국밥 한 그릇만큼/사람들 가슴을 따뜻하게 덮혀줄 수 있을까/생각하면 아직 멀기만 하네.'
함민복의 시 '긍정적인 밥'이다.
내가 이 시를 읽은지가 정확하진 않지만 10년이 넘었거나 10년 근처인 것 같다. 10년이 넘으면 강산도 변한다는데 시집 한 권은 아직도 국밥 한 그릇 값이면 살 수 있다. 그 동안 국밥 값이 오르면서 시집도 같이 가격이 오르긴 했지만 국밥 값을 따라 잡을 수는 없었는가 보다.
시인에게 있어 시란 무엇인가. 시란 시인에게 밥이다. 돈이 되는 밥이 아닌 영혼을 감싸는 따뜻한 한 그릇의 밥, 긍정적인 밥이다. 지난 달 필자는 한 권의 시집을 세상에 펼쳐 놓았다. 문단을 기웃거린 지 20년 만에 저지른 일이었지만 나에겐 상당한 용기가 필요했었다. 많은 시와 시집들이 읽혀지지 않은 채 사장되면서 혹시나 나의 시집도 세상의 먼지 속에 쌓여 나의 업적을 쌓아올리는 돌무덤이 되지나 않을까 하는 두려움이 앞섰기 때문이다.
영상미학의 즉흥적이고 탐미적인 테크닉에 빠져있는 세상 속에서 시는 정녕 메아리처럼 아득하기만 한 것일까. 열심히 놀고있는 내게 친구들은 가끔씩 묻는다 아직도 시를 쓰고 있느냐고. 나는 아무 대답없이 쓸쓸히 웃는다. 시는 언제나 나와 함께 있다. 가슴 속에 머리 속에, 눈 속에 언제나 나와 함께 논다. 시인은 우주 만물의 모든 것을 껴안고 혼자 뒹굴어야 하는 고독한 존재다.
새가 날아간 자리에 앉아서 발자국을 찾아내고 꽃이 진 자리에서 두근거리는 목숨의 숨소리를 듣고 살아간다. 때로는 광기와 울분을 껴안고 자신을 혹독하게 자해해야 하는 천형의 죄인이 되어야만 한다. 창틈으로 새어나온 불빛을 모아 깊은 어둠을 깨우며 시란 무엇인가, 나는 왜 시를 쓰는가, 바람이 불어오는 지상의 길 위에서 나는 나의 이런 질문들과 같이 행복하고도 외로운 시 쓰기를 계속할 것이다.
사랑이 모든 것을 이기듯 시를 만나는 모든 사람들은 결핍과 절망에서 벗어날 줄 안다. 이 세상에서 시가 주는 감동만큼 가슴을 설레게 하는 것이 또 있을까. 흘러가는 구름, 갯마을의 작은 꽃밭, 눈꽃 몇 송이를 앉혀놓은 나의 시가 비록 가난하다 할지라도 내가 시를 쓰고 있다는걸 후회해 본 적이 없다. 독자들이여, 오늘 한 그릇의 국밥을 드시고 혹시 남은 돈이 있다면 한 권의 시집을 사보시라.
당신의 그 가난한 사치는 추운 영혼을 따뜻하게 덮어줄 것이니. 황 영 숙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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