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인들의 위대한 발견 중에 하나는 영(0)이란 숫자를 만든 것이다. 왜 영을 만들었을까? 만약에 영이 없다면 숫자는 무한하게 진행이 돼야 되는데 영이 있으므로 10에서 다시 1이 돼 숫자가 순환을 하게 되는 것이다. 영이란 개념은 힌두교나 불교에서 윤회 사상이 숫자로 표현한 것이 아닐까 싶다. 윤회란 단지 죽어서 환생하는 것만 말하기보다 이것이 저것이 되고, 저것이 또 이것이 되는 자연 변환의 이치를 말하는 것일 것이다. 즉 변화를 위한 새판을 짜기 위한 개념이 영의 도입일 것이다.
우리가 억울하게 당한 일, 힘이 없어 당한 일, 돈이 없어 못한 일, 멍청해서 못한 일, 게을러서 못한 일 등 숱하게 이루지 못한 가슴 아픈 사연들이 많다. 현명한 사람이면 이런 기막힌 일들을 빨리 털어 버리고 앞으로 나아간다. 하지만 어리석은 사람들은 평생 이런 일들을 잊지 못하고 가슴에 담아 두고 산다. 그런 사람들은 결국은 오장육부가 다 상한다. 아무리 좋은 약을 먹고 운동을 많이 한다고 해도 원한은 면역체계를 약하게 만들어 그 사람을 죽게 만드는 것이다.
인생사에서 괴로움을 털어버리는 행동이 망각이다. 인간이 살기 위한 아주 좋은 방어기제가 망각이다. 인도의 영처럼 우리가 겪은 언짢은 일들을 망각으로 털어 버림으로써 우리는 고통에서도 새로운 삶을 시작할 수 있는 것이다. 서양에서는 인간이 죽으면 레테의 강을 건넌다고 믿는데 이 강을 건너면 그 사람은 생전의 모든 기억을 잊게 된다고 한다. 이승의 모든 것을 털고 새 세상에 가는 것이다. 불교에서도 인간이 세상에 태어나면 저승 일을 다 까먹고 백지 상태로 이승에 온다고 한다.
우리는 매일 밤 죽었다가 다음 날 아침 새로 태어난다. 그런데 우리는 어리석게도 어제 있었던 언짢은 일들을 마치 매우 소중한 그 무엇처럼 가슴에 보듬고 산다. 조물주의 뜻을 어기고 사는 것이다. 늙으면 기억력이 약해진다. 이것은 젊은 시절의 고통을 다 잊게 해서 평온한 노년을 살게 하려는 조물주의 뜻이다. 그런데도 많은 늙은이들은 그들의 허접 쓰레기 같은 청춘 시절의 일들을 마치 금이나 옥 덩어리처럼 그들의 가슴에 품고 산다. 망각은 조물주가 인간에게 주는 최대한의 선물이다.
전생의 일은 이생에서 잊고, 낮 일은 밤에 잊고, 일 년의 일은 연말에 잊고, 젊은 시절 일은 늙어서 잊어야 된다. 우리 마음 속에 영원히 품고 있어야 되는 것은 사랑, 이타심, 정의감, 성실함, 진지함, 부지런함 등이어야 된다. 증오심, 적개심, 시기질투, 복수심, 후회감, 챙피감 등은 재빨리 버려야 되는 불덩이 같은 독심들이다. 연말을 맞아 전부 잊고 마음의 계기판을 영으로 다시 맞추자. 그래야 내년에는 또 다른 좋은 기억들을 또 담을 수 있으니까 말이다.
권영재 미주병원 진료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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