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 최민식(50)이 이렇게나 제작진과 배우 간 호흡, 그리고 자신의 연기에 만족감을 느껴본 게 얼마 만일까.
그는 영화 '범죄와의 전쟁:나쁜놈들 전성시대'(이하 범죄와의 전쟁'감독 윤종빈) 촬영에 대해 "2003년 영화 '올드보이' 이후 오랜만에 느껴보는 앙상블이었다"고 만족감을 표시했다. 배우 유지태'강혜정 등이 출연하고 박찬욱 감독이 연출한 '올드보이'는 엄청난 관심을 끈 영화. 2004년 칸 국제영화제에서는 한국영화 사상 처음으로 심사위원 대상을 받기도 했다.
최민식은 '뚜껑'을 열기 전부터 자신감과 기대감을 표하며 '범죄와의 전쟁'을 '올드보이'와 비교했다. "'배우들이 정말 멋있구나, 프로구나!'라고 생각했어요. 이심전심이라는 표현 있잖아요? 그런 마음이었죠. 또 이거 방심하면 안 되겠다 했죠. 속된 말로 '삑사리 나면 개망신 당하겠구나'라고 생각했거든요. 하지만 연기들을 다들 잘하니 너무 편했죠."(웃음)
'범죄와의 전쟁'은 노태우 전 대통령 집권 당시 선포된 '범죄와의 전쟁'을 소재로 했다. 부산항의 전직 세관 공무원 최익현(최민식)과 조직폭력배 최형배(하정우)를 통해 1980, 90년대의 어두운 뒷모습을 씁쓸하게 담아냈다.
극 중 최민식은 비열하기도 하고, 때로는 비굴하기도 한 모습으로 인간이 표현할 수 있는 최상과 최악의 상태를 자유자재로 넘나든다. 그와 함께 하정우, 조진웅, 곽도원, 김성균, 김혜은 등이 스크린을 통해 엄청난 호흡을 자랑한다.
최민식은 "연기를 할 때 동료가 살아야 내가 사는 것"이라며 "타이틀 롤이라고 혼자 나대면 안 된다. 또 나 하나만 잘하면 된다는 생각은 아주 아마추어적인 생각이다. 모든 자재들이 하나하나 엮일 때, 튼튼한 집을 지을 수 있다"고 강조했다.
극 중 엄청나게 맞았다. 형배의 오른팔을 연기한 김성균에게 따귀도 수차례 맞았고, 악질 검사로 나오는 곽도원에게는 사타구니를 걷어차이기도 했다. 하지만 단 한 번도 아프다고 얘기하거나 내색하지 않았다. 배우들에게 당연할 순 있지만, 쉽지 않은 일이다.
최민식은 태연했다. "목숨을 유지하기 힘들거나 불구가 되는 상황이라면 당연히 그렇게 실제로 하면 안 되죠. 하지만 가벼운 터치는 액션 영화의 기본이에요. 리얼리티죠. 때리는 척만 하다가 카메라에 익숙하지 않은 친구들은 NG를 반복해요. 그러면 정신적으로도 스트레스를 받고, 다음 신에도 지장이 있게 됩니다. 몸으로 때우는 건 일이 아니에요. 거기서 나오는 감정선을 연기해야 하는 거죠."(웃음)
수많은 작품을 하며 긴 세월을 보내온 최민식은 지금이 더 목마르고 굶주려 있다고 했다. "세상에 궁금하지 않은 게 있는가?"라며 "거짓말이 아닌 진짜 이야기가 지금에서야 보인다. 연애 얘기를 해도 진짜, 싸움을 해도 진짜 같은 연기를 하고 싶다"고 바랐다. 참여하는 작품이 코미디라도 "진짜 웃기고 싶다"는 것이 '리얼리티'를 향한 그의 애정이자 열정이다.
동국대 연극영화과 출신으로 연극무대에 선 그는 영화 '구로 아리랑'(1989)과 드라마 '야망의 세월'(1990)로 스크린과 TV에 발을 들여놓았다. "결혼도 했는데 목구멍이 포도청이라 다른 쪽 길로 눈을 돌렸다"는 그는 "처음에는 유명배우의 꿈이 없었다"고 했다. 하지만 그는 한국 영화계에 한 페이지를 장식하고 있다. 누구도 부정하지 않는다.
일반인들은 배우들의 연기에 머리카락이 쭈뼛 서는 느낌을 받을 때 연기를 잘한다고 생각하고, 바라본다. 관객 대부분은 최민식이 연기한 캐릭터들을 보고 그런 느낌을 받는다. 그렇다면 최민식은 후배들이 연기를 잘하는지, 못하는지 어떻게 구분할까.
그는 "테크니컬한 면은 중요하지 않다"고 답했다. 촬영 현장에서 동료나 선배들의 도움과 함께 당사자의 의지가 '진짜 배우'로 만들어준다고 에둘러 설명했다. "기술적인 훈련이 부족하더라도 배우들이 어떤 마음가짐을 가지고 있는지가 중요하죠. 얼굴이 좀 예쁘다거나 혹은 검색어 순위에 오르면 우쭐해질 수도 있어요. 하지만 같이 작업하는 사람에 따라 그 마인드가 바뀔 수가 있다고 생각해요. 다른 것에서 관심을 끌려는 것이 아니라 연기적인 면에서 금방 실력이 늘게 되죠."(웃음)
그런 점에서 특히 하정우에게 고마움을 표했다. 그는 "하정우는 요즘 '방귀 좀 뀐다'는 배우 중에 한 명인데 모나지 않았다"며 "대부분 연극을 하다가 오는 사람들과 다르다는 선입견을 갖기 마련이지만 정우는 먼저 나서서 장난을 치더라. 정말 예쁘게 노는구나 생각했다"고 칭찬했다.
후배나 동료들에게 잔소리를 많이 하는 스타일은 아니다. 후배들이 최대한 마음 편하게 연기할 수 있게 만들어준다. 감독의 지시를 따라가며 스스로 창작을 하는 것도 중요하단다. 물론 "상습적으로 지각을 한다거나 쓸데없는 자존심을 세우는 배우가 있으면 싫은 소리도 한다"고 정색했다.
극 중 허세 가득한 익현은 요즘 말로 '꼰대'다. 시대에 뒤떨어진 사고방식과 고집스런 성격을 가진 인물. 그를 바라보는 현실의 최민식은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을까.
"그 사람이 세상을 헤쳐 가는 방식이에요. 액면은 재수 없는 놈이지만 사느라고 애쓰잖아요. 그런데 그게 저나 친구, 또는 아버지의 모습일 수도 있는 거예요. 한국 남자 특유의 생존 방식이죠. 저도 꼰대가 됐을지도 몰라요. 비교적 자유로운 직업인데도 말이죠. 솔직히 집에 누군가 수술을 받아야 할 상황이 생기면 병원에 아는 의사가 누가 있는지 알아보잖아요? 누구도 이걸 편법이라고 생각하지 않아요. 지혜롭게 살고 있다고 생각하죠. 정도의 차이일 뿐이죠. 익현과 뭐가 다릅니까?"
매일경제 스타투데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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