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사설] 재벌 '결의문'이 진정성을 가지려면

재계가 한껏 몸을 낮추고 있다. 정치권이 재벌 개혁을 벼르고 '재벌 빵집'이 상징하는 무한 탐식에 대한 여론의 분노가 분출하고 있는 현 상황이 심상치 않기 때문이다. 지난 8일 전국경제인연합회가 '서민 생활 안정과 경제 활력 회복을 위한 경제계의 다짐'이란 긴 제목의 결의문을 발표한 것도 그런 맥락이다.

전경련이 결의문을 낸 것은 노무현 정부 첫해인 2003년 '경제 난국 극복을 위한 경제계의 제언' 이후 9년 만이다. 그러나 그 내용은 전혀 다르다. 2003년 결의문은 참여정부 출범 뒤 증권집단소송제와 공정거래법 개정 등 재벌 개혁에 반대한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이번 결의문은 반성문에 가까울 정도다. 그만큼 재벌 스스로 자신에 대한 국민의 시각이 싸늘해지고 있다는 위기감을 체감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진정성은 느껴지지 않는다. 우선 '독식' '횡포' 등으로 표현되는 재벌의 역기능을 스스로 다스리지 못한 데 대한 반성부터 없다. 결의문이 '면피용'이라는 소리를 듣는 이유다. 또 고용 안정과 일자리 창출, 투명'윤리 경영 실천, 소비자 보호, 사회 공헌 활동 선도 등 좋은 말은 모두 동원했지만 구체적인 실행 방안은 없다. 그러니 재벌의 역할과 위상에 대한 고뇌의 흔적도 전혀 느껴지지 않는다.

우리 사회에서 재벌이 갖는 의미는 양가적(兩價的)이다. 국민경제를 이끌어가는 주요 경제주체이지만 중소기업과 서민 경제를 벼랑으로 모는 탐욕의 화신이기도 하다. 재벌을 비난만 해서도 안 되지만 그렇다고 이대로 둘 수도 없다. 현재 국민의 재벌에 대한 정서는 후자 쪽으로 기울고 있다. 이를 막으려면 정치권이 메스를 가하기 전에 재벌 스스로 개혁해야 한다. 그 첫 순서는 결의문에서 약속한 내용의 구체적인 이행 방안부터 내놓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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