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7년 봄은 참 매캐했다. 3월부터 대학가는 연일 민주화 및 대통령 직선제를 요구하는 시위와 경찰의 최루탄 진압이 되풀이됐다. 전두환 정권이 국민들의 개헌 요구를 거부하면서, 넥타이부대까지 거리 시위에 나서자 정권은 무자비한 시위 진압을 감행했다. 시위대가 던진 돌멩이를 되던지거나 물대포를 쏘는 소극적인 대응에서 벗어나 최루탄을 직접 조준사격하는 수준에 이르렀다.
하지만 이게 정권을 무너지게 하는 결정적 계기가 됐다. 당시 연세대 2학년이던 이한열 학생이 1987년 오늘 시위에 참가했다가 최루탄에 머리를 맞고 의식불명이 돼 병원으로 옮겨졌다. 그가 최루탄을 맞고 부축당한 채 피를 흘리는 모습을 로이터통신 기자가 촬영했고, 이 사진이 뉴욕타임스 1면 머리기사로 실리면서 전두환 정권의 잔인성이 전 세계에 알려졌다.
거센 분노에 견디지 못한 정부와 여당은 결국 6'29선언을 통해 국민의 요구를 받아들였다. 이한열 학생은 7월 5일 결국 숨지고 말았다. 그의 사후 '이한열기념사업회'가 꾸려져 사망 의미를 되새기고 있다. 8일 연세대 강당에서는 25주기 추모제가 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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