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계산논단] 사회통합은 포기하려는가?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 이것은 제헌 헌법 이래 우리나라의 강고한 헌법 이념이다. 그런데 최근에 정치권에서 전개되는 다양한 움직임을 보면 이러한 헌법 이념을 위협하는 아니 부정하는 듯한 행태가 난무하고 있다.

여당의 유력한 대통령 후보가 한마디 하더니 이젠 갑남을녀 모두가 '국가관'을 읊조린다. 도대체 국가관이란 것이 무엇인가? 누가 어떻게 정의하고 누가 어떤 기준으로 판단할 수 있는가? 국가란 도대체 어떤 존재인데 국가가 국민에게 희생을 강요할 수 있는가? 국가는 과연 도덕적인 존재인가?

우리 사회가 추구하는 가치는 자유시장주의자들이 주장하듯이 일면적인 자유주의와 시장주의뿐이어야 하는가? 자유주의자들은 진정 타인의 자유를 존중할 줄 아는가? 아니 존중해 왔는가? 돈과 권력을 가진 자들의 자유만을 우선해오지 않았는가 반성해볼 일이다.

자고로 구린 것이 많은 자들이 자신들의 치부를 감추기 위해 독선적인 이데올로기를 강요해온 전례는 역사에 널려 있다. 화장실이 없던 베르사유 궁전에서 인간의 배설물들을 여기저기 버리고 그래서 냄새가 고약해지자 그것을 감추려고 독한 향수를 써서 냄새를 감추었다는 믿거나 말거나 한 이야기를 지금 한국 사회 보수주의자들의 행태에 견주면 실례일까?

며칠 전 '정의란 무엇인가'의 저자 마이클 샌델이 한국을 다녀갔다. 필자는 왜 갑자기 최근 들어 한국 사회에서 정의란 무엇인가에 독자들이 빠져들었을까 궁금하다. 나름대로 내린 결론은 한국 사회에서 정의가 실종되었기 때문이다. 정권, 금권, 관권, 언권을 거머쥔 최상층에서부터 조그만 권한이라도 가진 자들까지 어느 한 곳 정의가 제대로 지켜지고 있는가? 투명성을 외치지만 정작 권력자들 주변에서 전개되고 있는 온갖 부조리는 은폐되고 왜곡되어 불신만 키우고 있지 않은가?

샌델이 이번에 한국을 방문한 것은 새로운 저서 '돈으로 살 수 없는 것들'이라는 책의 출판을 계기로 한다. 아마도 이 책도 앞의 책 못지않게 팔릴 것으로 보인다. 왜? 한국에서 돈으로 살 수 없는 것이 있을까? 역설적으로 사람들이 '정말 돈으로 살 수 없는 것이 있을까'라는 호기심에서라도 책을 사고 싶어지지 않을까?

샌델은 교과서에 갇혀 있는 지식으로서의 정의나 자유 평등이 아니라 현실 속에서의 자유, 평등, 정의, 행복 이러한 것에 대한 활발한 토론이 필요하다고 역설하고 있다. 그러나 지금처럼 편향된 이데올로기에 심취해 있는 수구적인 지배세력들은 상호 존중하는 공존의 철학이 아니라 일방적인 지배의 철학에 빠져 있다.

걱정스러운 것은 이러한 극단적인 이데올로기 공격이 우리 사회의 갈등을 부추기고 그 과정에서 지배세력의 추악한 행동들을 은폐하려는 시도가 아닐까 한다. 군사독재 시절에나 있을 법한 민간인 사찰이 난무하고 대형 정부 토목사업을 둘러싸고 '역시나' 온갖 부조리가 드러나고 있고, 정치권에서는 보수 진보를 막론하고 그 알량한 국회 권력에 참여하기 위해 '부정의'한 짓을 서슴지 않고 있다.

이제 앞으로 새로운 권력이 형성될 12월 대통령 선거전까지 벌어질 정치권의 행태가 과연 이 사회를 어디까지 분열시킬지 심히 걱정스럽다. 적어도 한 나라의 지도자가 되려는 사람은 아무리 권력이 탐나더라도 스스로 헌법 이념을 존중해야 하며 특정한 세력의 이익을 앞세우지 않고 사회 구성원 모두의 삶을 행복하게 해주어야 한다.

국가관을 거론하기 전에 진정 공화주의를 신뢰하는지, 모든 인간의 자유와 평등을 존중하는지부터 스스로에게 묻기 바란다. 끼리끼리 집단이기주의에 함몰되어 제 눈에 들보는 보지 못하고 다른 사람 눈의 티끌만 찾으려 충혈된 눈을 굴리지 말기 바란다.

군대를 안 가도 대통령도 되고 국무총리도 되고 국회의원, 장관도 될 수 있는 사회에서 왜 병역의무를 필하지 않으면 연예인으로 활동하기도 어렵고 국가대표 축구선수가 되기도 어려운지를 일반 국민들이 쉽게 이해할 수 있을까?

사회 지배세력들은 각종 편법 탈법 불법을 일삼아도 허울 좋은 사면권에 기대 여전히 거들먹거리는 '부정의한 사회'에 대해 충성하라고 외친들 과연 자발적으로 충성할 국민이 얼마나 될까? 공허한 마음이지만 그래도 희망을 찾고 싶은 국민들은 '정의란 무엇인가'를 찾아 방황하고 있다. 대통령이 되려고 하는 이들에게 묻고 싶다. 하나의 민족이 서로 다른 이데올로기로 무장한 분단 국가인 한국 사회에서 '사회통합'보다 더 중요한 과제가 무엇인지를.

이재은/경기대 부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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