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하나의 덩어리, 세가지 정체성

경북대에서 한국화를, 그리고 영국 런던 킹스턴 대학에서 공간 및 제품 디자인을 전공한 박정현 작가는 봉산문화회관 '유리상자' 안에 나무로 거대한 노란 덩어리를 설치했다.

박정현 작가는 봉산문화회관 유리상자 아트스타 전시를 진행 중이다. 올 들어 세 번째다. 나무로 된 이 8m 길이의 노란 덩어리는 유리 상자 안뿐만 아니라 관람객이 전시를 보고 있는 바깥, 그리고 유리 상자 외부로 확장돼 있다. 시각적으로 하나의 덩어리로 보이지만 세 가지 정체성, 즉 디자인, 순수예술, 건축을 상징한다. 유리 상자를 넘나들며 만들어진 이 작품을 통해 작가가 보여주고 싶은 것은 무엇일까.

작가는 "정체성의 상실을 느끼고 고민했던 현대인의 한 사람으로서, 오히려 정체성의 상실을 즐김으로써 진정한 정체성을 찾아가는 개인적 경험을 순수예술과 디자인, 건축의 관계를 통해 표현한다"고 밝혔다.

유리 상자 안에 설치된 조형물은 순수 예술로, 꼬리에 해당하는 실내 공간으로 확장된 부분은 디자인, 머리에 해당하는 외부 공간은 건축의 분야로 정체성을 세분화했다. 커다란 하나의 덩어리이지만 관점에 따라 이렇듯 정체성이 나뉜다. 이는 '나눔'이기도 하지만 '통합'이기도 하다.

이처럼 작가는 예술과 디자인이 갖는 속성과 범위에서 발생하는 특성에 대해 끊임없이 질문을 던진다.

김옥렬 현대미술연구소 및 아트스페이스펄 대표는 "예술은 개성이 강한 주관성을 띠는 반면 디자인은 대중적 기호가 반영된 객관적 요소가 보다 중요하게 작용한다. 그러나 대중과의 소통을 위해서 예술가는 디자인의 요소를, 디자이너는 예술의 주관적 개성에 의존하는 경향이 있어 예술과 디자인은 의존적인 부분이 있다"고 밝혔다. 작가는 일상과 아름다움에 대한 경계 지점을 탐색한다. 작가는 디자인과 아트의 관계에서 아슬아슬하게 줄타기를 하며 '불편한 디자인', '기능적 예술'이라는 모순 속에서 창의적 요소를 찾고 있다.

정종구 봉산문화회관 전시기획담당은 "작가는 이 애매한 상태가 우리 현대미술 혹은 현대인의 모습일 것으로 주장한다"고 말했다. 이번 전시는 7월 8일까지 열린다.

한편 30일 오후 2시 봉산문화회관 2층 아트스페이스에서는 시민참여 프로그램 '예술과 디자인 사이'가 열린다. 풀, 가위, 칼을 준비하면 10명에 한해 참가할 수 있다. 참가비 2천원. 053)661-3517.

최세정기자 beacon@msnet.co.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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