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계산논단] 효용의 정치, 소통의 정치

단순히 대한민국 안보이익의 관점에서만 손익계산을 해본다면 일본과의 '정보보호협정' 체결은 남는 장사였다. 핵무기와 장거리 미사일로 무장한 북한의 위협이 현존하는 상황에서 수준급의 대잠초계기와 정보위성을 보유한 이웃국가와의 긴밀한 정보협력은 북의 도발을 탐지하고 억지(抑止)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한일정보협정은 또한 한'미'일 삼국 정보협력체계의 화룡점정을 의미하며, 이는 한국의 안보역량 증진에 적지 않은 기여를 할 전망이다.

중국을 자극하여 동북아에 긴장이 고조될 수 있다는 시각이 있다. 하지만 한국 정부는 중국에도 유사한 정보협력을 제안했고, 무엇보다 중국이 핵 문제 등 북한의 도발에 소극적인 자세를 견지해온 점을 고려한다면, 가용자원을 모두 동원해 안보역량을 극대화하는 것이 우리에게는 보다 시급한 과제이다.

그렇다면 꽤 괜찮은 거래가 성사되지 않은 이유는 무엇일까? 민주주의 국가에서 국가 간 거래의 당사자는 국민이고 정부는 대리인(代理人)이어야 한다. 그런데 MB 정부는 거래 당사자인 우리 국민이 거래 상대인 일본에 대한 사적감정 때문에 실익이 발생할 거래가 불발될까 우려했던 것 같다. 그래서 상품 소개도 제대로 하지 않고 자신들의 손익계산만 믿고 우선 거래를 성사시키려 했던 것이다. MB 정부의 이 같은 사례는 처음이 아니다. 미국산 소고기 수입 문제로 벌어진 촛불시위 역풍의 추억은 벌써 잊은 것일까?

사실 미국산 소고기 수입 재개도 국익의 관점에서는 남는 장사였다. 하지만 실리적 '효용'(效用) 만을 고려한 거래는 시장경제에서는 가능할지 모르나 정치시장에서는 불발되기 십상이다. 정치시장에서의 거래는 정치적 파장을 고려할 수 있는 고도의 정무적 판단이 수반되어야 하고, 이러한 정무적 판단에 의거한 소통과 설득이 선행되지 않는 한 아무리 국민의 효용을 높여주는 거래라도 성사되기 어렵다.

철저하게 경제적 실적으로만 평가받던 대기업 CEO 출신이 이끄는 정부여서일까? MB 정부는 집권 초부터 정책의 신속적인 집행을 저해하는 소통의 정치과정을 소모적이고 비효율적인 행위로만 치부하고 있는 것 같다. 하지만 민주주의 국가의 정치시장과 정치과정은 태생적으로 비효율적일 수밖에 없다. 국정을 책임진 정치세력은 이를 우회해 가려 하지 말고 끈질긴 '소통'(疏通)의 노력으로 정면 돌파해야 한다.

물론 한일정보협정을 '제2 을사조약'으로 왜곡하고 미국산 소고기 수입을 재개하면 한국에 '광우병'이 창궐할 것처럼 주장하는 세력과 대화하고 소통의 정치력을 발휘한다는 것은 지난한 과제일 수 있다. 하지만 정책의 효용과 실익에 확신이 있다면 인내심을 가지고 시시비비를 국민에게 설득할 수 있어야 한다. 무작정 '질러놓고' 촛불시위에 '명박산성'에 숨는 모습이나, 청와대 비워놓고 힘없는 외교부 들러리 세워 기습처리하는 모습은 최고 정책결정자로서 책임 있는 자세라고 할 수 없다.

'소통의 부재'는 MB 정부의 국정운영 행태를 평가하는 키워드로 자리매김했고, 차기 대통령으로 유력한 한 정치인도 소통능력을 의심받고 있다. 대통령제를 채택한 민주주의 국가의 최고 정책결정자는 두말할 것 없이 대통령이다. 그렇다고 대통령이 국익을 고려하여 국가의 주요정책을 우선 결정하면, 국민이 이를 이해하고 추인해 줄 것이라는 생각은 시대착오적 발상이다. 이러한 권위주의적 리더십은 1960, 70년대 개발독재시대에는 가능했을지 모르나, 민주화와 분권화를 경험한 작금의 정치상황에서 더 이상 유효하지 않다. 이제 우리 국민은 국가의 중요 정책결정 과정에 참여하기를 희망하며, 더 나아가 국익을 직접 규정하고 싶어 한다. 물론 반드시 바람직한 것만은 아니다. 하지만 이것이 현실이라면 향후 정권을 책임질 정치세력은 원만한 국정운영을 위해서 국민과 적극적으로 대화하고 소통할 수 있는 능력을 배양해야 한다.

'위대한 소통자'(Great Communicator) 레이건 전 미국 대통령은 자신의 정책을 관철하기 위해 늦은 시간까지 오벌오피스에 남아 직접 전화기를 붙들고 여야 정치인을 설득한 것으로 유명하다. 대국민 담화에도 열심이었고, 직접 발품을 팔아 공청회나 간담회에 참석해 소통에 노력하는 모습을 보여줬다. 레이건의 대국민 설득 능력과 소통의 정치를 우리의 차기 대통령에게도 기대해 본다.

김재천/서강대학교 국제대학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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