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성병휘의 교열 斷想] 상서로운 일

근래 어느 신문 지면에 이런 정정 기사가 나온 걸 봤다. 칼럼 내용 중에서 '유전자의 가려운 곳'을 '유권자의 가려운 곳'으로 바로잡는다는 것이었는데 우리 교열자들은 이를 제일 두려워한다. 신문사에서 교열을 한 지 25년째다. 중간중간 이 일에서 탈출하고픈 생각이 없었던 건 아니지만 자의든 타의든 계속돼 지금에 이르렀다. 아직 이 일을 계속해야 하기에 잘한 것인지 아닌지 판단은 미뤄두고 있다.

"아버지는 그 이야기를 누구에게서 들은 것인지 이신은 가끔 의아를 느낀 적도 있었지만 깊이 천착할 것은 없었다." "순제는 그 말이 천착하고 귀에 거슬려서 모욕이나 당한 듯이 남자를 눈으로 나무랐다."

앞서의 문장에 나오는 '깊이 천착할' '말이 천착하고'에서 '천착하다'의 의미는 다르다. 앞의 '천착(穿鑿)하다'는 구멍을 뚫음 또는 어떤 내용이나 원인 따위를 파고들어 알려고 하거나 연구함, 억지로 이치에 닿지 아니한 말을 한다는 뜻으로 "세밀한 관찰과 천착을 거듭하다." "다양한 실험을 통해 우리 것에 대한 천착을 계속하다."로 쓰인다. 뒤의 '천착(舛錯)하다'는 심정이 뒤틀려서 난잡하다, 생김새나 행동이 상스럽고 더럽다는 뜻이다. "가장 비열한 수단, 가장 천착한 방법으로 나는 나의 최후의 광명을 움켜쥐려 하였소."로 활용한다. 이때의 '천착하다'는 형용사 '천착스럽다'로 쓸 수 있다.

단 한 곳으로만 트인 길, 단 하나의 방법이나 방향을 뜻하는 단어로 '외곬'이 있다. "농촌 운동을 하는 사람이라도 너무 외곬으로 고지식하기만 하면 교활한 놈의 꾀에 번번이 속아 떨어진다." "그녀에겐 현재 모든 의식이 집으로 가야 한다는 외곬의 생각으로 뭉쳐 있었다."로 쓰인다. 이때 '외골'로 표기하면 안 된다. 단 한 곳으로만 파고드는 사람을 '외골수'라 하며 '외골수 학자'로 쓰이지만 '외곬'의 뜻으로 사용하면 잘못이다.

한 가지 일에만 전념한다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하지만 한곳을 천착하다 보니 제2의 인생에 대한 두려움은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 더 심하다. 하지만 좋은 일이 생길 거라는 희망을 갖고 스스로 위안하면서 보내고 있다.

생김새나 행동이 '상스럽다'를 '상서럽다' 또는 '상서롭다'로 혼동하는 것을 볼 수가 있는데 쓰임이 다르니 주의해야 한다. '상서롭다'는 복되고 길한 일이 일어날 조짐이 있다라는 뜻으로 비슷한 말로 '상서스럽다'가 있다. "그들은 조그만 의심도 없이 황제의 출생에 얽힌 여러 가지 상서로운 일을 기록함과 아울러 그 적대자들의 말로 기록하기를 잊지 않았다."로 쓰인다. '상스럽다'는 말이나 행동이 보기에 천하고 교양이 없다라는 뜻으로 "상스럽게 굴다." "서울에서 뉘 집 딸, 뉘 댁 부인 하면 알아줄 만한 양가 댁의 기품 있는 귀부인들이라 화냥기라는 상스러운 말을 쓰는 일은 없다."로 쓰인다.

이번 한 주간 모두에게 상서로운 일만 가득하기를 기원한다.

교정부장 sbh126@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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