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탕탕탕' 1895년 오늘 경복궁 춘생문(春生門)에서 일단의 총성이 울렸다. 을미사변(10월 8일)으로 명성황후가 시해된 직후라 경복궁의 분위기는 살벌했다. 고종은 친일파 세력의 독살 우려 때문에 열쇠가 채워진 철가방 속의 외부 음식만을 먹기도 했다. 친러파인 이범진은 친미파, 개화파와 손을 잡고 고종을 왕궁 밖으로 탈출시켜 친일 정권을 타도하고자 했던 '춘생문 사건'에 적극 가담했다. 춘생문은 고종이 거처하는 곳에서 외부로 통하는 가장 가까운 문으로 고종이 빨리 피신할 수 있는 문이었다. 하지만 친위대 대대장 이진호의 변절로 '춘생문 사건'은 실패하고 만다. 관련자 대부분은 처형당했으나 그는 러시아 공사의 주선으로 상하이로 망명했다. 두 달 남짓 만인 1896년 비밀리에 귀국한 그는 결국 아관파천(俄館播遷)을 주도하면서 고종을 러시아공사관으로 피신시키며 친일파의 마수에서 벗어나게 했다. 이후 그는 주미'주러'주불'주오스트리아 공사 등 외교관으로서 국권 회복을 위해 활동하다 경술국치 다음해인 1911년 이역만리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자결, 순국했다.
한때 그는 아관파천으로 한국의 이권을 러시아 측에 넘겼다는 이유로 부정적 인물로 평가받았다. 하지만 그가 평생을 고종의 안위와 국권 회복을 위해 온몸을 바친 사실이 각종 비밀기록에서 새로이 발견되면서 대한제국의 충신으로 기억되고 있다.
배성훈 편집2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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