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는 군대의 빠른 이동을 위해 기원전 4세기부터 도로 건설에 치중했다. 도로를 이용한 군대의 승리에 교역이 뒤따랐고 문화가 동반했다. 로마가 단순한 승자에 그치지 않고 유럽 전역을 '로마화' 할 수 있었던 데는 도로의 역할이 무엇보다 컸다. 도로는 생명체로 치면 혈관이다. 사람과 사람을 이어주고 장소와 장소를 연결해 지역 전체에 생명력을 불어넣는 필수적인 구성체다.
거대화된 현대 도시에서 도로의 역할은 더욱 중요하다. 작게는 권역 내의 흐름을 원활하게 만들고 도심과 주변부, 주변부와 주변부 간의 소통을 가능하게 한다. 이런 측면에서 대구는 다른 대도시에 비해 혈관이 한결 건강하다. 우선 권역별로 격자형 도로가 잘 정비돼 있어 어느 장소든 접근성이 뛰어나다. 도심과 주변부를 소통시키는 도로도 달구벌대로를 동서축으로, 중앙대로를 남북축으로 튼실하게 자리를 잡았다.
주변부와 주변부를 연결하는 순환도로는 사정이 조금 다르다. 순환도로는 도심을 지나지 않고 돌아가는 특성상 멈추지 않고 다닐 수 있어야 제 기능을 한다. 하지만 도시가 발전하고 팽창하면 기존의 순환도로는 외곽을 연결한다는 의미도, 막힘없이 다닌다는 특성도 약해진다. 노원네거리~만평네거리~두류네거리~앞산네거리~황금네거리~만촌네거리~효목네거리~복현오거리로 이어지는 대구의 3차 순환도로가 그렇다.
그런데 한 단계 더 넓혀 건설 중인 4차 순환도로에 요구되는 기능은 기존의 순환도로를 넘어 대구의 미래를 쥐고 있다고 할 만큼 막중하다. 먼저 지역 간 소통과 통합 기능이 주어져 있다. 대구는 외곽으로 대규모 산업단지가 계속 들어서면서 도시 구조 자체가 바뀌고 있다. 지산'범물, 시지, 대곡, 상인, 성서, 칠곡, 안심 등 권역별 중심지들은 각기 다른 특색을 보이며 성장하고 있다. 이처럼 분절되고 있는 대구의 각 지역을 소통시키고 통합된 시민의식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4차 순환도로의 역할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예컨대 대구미술관의 전시, 계명아트센터의 공연, 대구스타디움의 스포츠, 이시아폴리스의 패션문화를 대구시민 모두가 보다 쉽게 누릴 수 있도록 해줘야 한다는 것이다.
도로 본연의 물류 유통 기능은 두말 할 필요도 없다. 특히 서쪽으로 테크노폴리스와 국가산업단지 등 산업단지가 2배로 늘어나고 동쪽으로 혁신도시, 첨단의료복합단지 등이 조성되면 이들 사이는 물론 대구를 지나는 고속도로들과 가장 빠르게 연결시켜 줄 수 있는 4차 순환도로의 중요성이 더욱 커진다. 경산, 영천, 청도, 성주, 왜관 등으로의 접근성 확대에 따라 내륙 물류 중심도시의 비전도 한층 구체화될 것이다. 도심과 간선도로 통행량을 분산시켜 대구 전체의 혈관을 더 건강하게 만드는 역할도 4차 순환도로의 몫이다.
상인~범물~안심~칠곡~지천~성서~월배로 연결되는 4차 순환도로 65.3㎞ 가운데 범안로를 비롯한 20㎞는 이미 개통했고 상인~범물 구간 10.44㎞는 내년 개통을 앞두고 있다. 안심~지천 구간은 내년에 공사가 발주되고 성서~지천 구간도 2016년까지는 준공된다. 1987년 도시계획 재정비 때 계획된 도로 완전 개통에 무려 30년이 걸리는 셈이다.
완전 개통까지의 절차가 결정된 만큼 대구시는 이제 4차 순환도로를 얼마나 유용하게 활용할 수 있을지로 눈을 돌려야 한다. 그저 도로 건설에 투입된 재정을 보전하는 차원이 아니라 도시 경쟁력을 높이는 차원에서 대국적인 방안을 모색해야 한다. 대구 전체를 소통시키고 물류 유통을 빠르게 만들고 도시 교통을 원활하게 하기 위해서는 불확실한 예측 통행량에 기대지 말고 시민들의 통행을 끌어들일 수 있는 진취적인 행정을 펴야 한다. 범안로 무료화는 말할 것도 없고 새로 건설되는 구간의 통행 요금도 책상머리 계산이 아니라 시민들의 지불 의사에 맞춰야 한다. 장기적으로 전체 시민들에게 어떤 방향이 이득이 될지가 기준이 되어야 한다.
'로마인 이야기'의 작가 시오노 나나미는 로마 가도를 군용(軍用)이 아니라 정치적 의미에서 정용(政用) 도로라 부르고 싶다고 했다. 군사뿐만 아니라 정치, 행정의 필요에 따라 만든 길이라는 것이다. 4차 순환도로는 대구 시민들을 하나로 묶어 대구의 미래를 함께 만들어간다는 의미에서 민용(民用) 도로라고 부를 수 있는 대구시의 결단을 기대한다.
이진훈/대구 수성구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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