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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웃사랑] 대장천공·디스크 앓는 70대 독거노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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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달 1,2만원 살이에…"병원 치료는 사치일 뿐"

권형덕(가명
권형덕(가명'71) 씨가 병실에서 햇살이 비치는 창문 너머 풍경을 바라보고 있다. 2012년 마지막 날은 햇살이 찬란한 맑은 날씨였지만 권 씨의 삶에 드리운 먹구름은 언제 걷어질지 모른다. 성일권기자 sungig@msnet.co.kr

대구 동구 신암동의 한 병원. 간호사가 권형덕(가명'71) 씨에게 퇴원 수속에 필요한 서류를 갖다주며 잘 읽어보고 서명하라고 했다. 퇴원할 권 씨를 집으로 데려가기 위해 안심제일종합사회복지관 김의용 사회복지사도 권 씨를 찾아왔다. 기초생활수급권자인 권 씨가 내야 할 병원비는 약 46만원. 하지만, 기초노령연금 9만원과 국민연금 5만원이 한 달 수입의 전부인 권 씨에게는 넉 달치의 생활비다. 김의용 사회복지사가 병원 측에 사정해서 병원 사회사업팀으로부터 30만원은 지원받을 수 있었지만, 평소 모아둔 돈이 전혀 없었던 권 씨는 남은 병원비 16만원을 어디서 구해야 할지 막막하다.

◆거머리처럼 착 달라붙은 불행과 병마

경북 의성군에서 태어난 권 씨는 입대 전까지는 고향에서 농사를 지으며 살았다. 그러다 20대 초반 제대 후 돈을 벌기 위해 대구로 왔다. 권 씨는 회사 사환이나 막노동 등 돈을 벌기 위해 닥치는 대로 일을 했지만 벌이는 시원찮았다. 다시 농사를 짓기 위해 돌아간 의성 고향 마을에서 부인을 만났다. 결혼 직후 "포항제철소가 들어오는 포항에 목수 일거리가 많다더라"는 말을 들은 권 씨는 부인과 함께 포항으로 갔다.

"포항제철소가 들어오면서 포항에 건설 관련 일거리가 많았었거든요. 그때까지만 해도 가족을 충분히 먹여 살릴 수 있을 만큼 벌었습니다. 열심히 일하면 가난과 불행에서 벗어날 수 있을 거란 희망도 있었죠. 그 일이 있기 전까지는 말입니다."

권 씨의 희망이 무너지기 시작한 것은 1992년에 한 공사현장에서 일어난 사고 때문이었다. 경주의 한 음료수공장 내에 있던 공사현장에서 옹벽을 타고 올라가게 돼 있던 나무 지지대가 부서지면서 권 씨는 땅으로 떨어졌다. 떨어지면서 척추를 다친 권 씨는 그 이후 아무런 일도 할 수 없었다. 또 공사를 맡긴 회사에 산재보험 처리를 요청했지만 회사는 당시 산재보험에 가입되어 있지 않아 처리를 해 줄 수 없다고 했다. 이 때문에 법원에 소송도 냈고 보건복지부 장관에게 투서도 넣어 봤지만 이 문제를 해결해 줄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권 씨는 이때부터 건강이 점점 나빠지기 시작했고, 지금은 그때 다친 허리 때문에 고통이 심할 뿐만 아니라 고혈압과 같은 노인성 질환은 물론이고 만성 장폐색까지 앓기 시작했다. 아무리 아파도 병원비 때문에 병원에 갈 엄두도 못 내던 권 씨는 결국 지난해 11월 11일 집에서 배를 붙잡고 쓰러졌다. 병원에서는 만성 장폐색으로 인한 대장천공과 복막염, 십이지장염이 같이 발병했으며, 당장 치료받지 않으면 생명이 위태롭다고까지 했다. 쓰러진 권 씨를 발견하고 병원에 데려간 김의용 사회복지사는 "피를 토하고 쓰러져 있는 권 씨를 발견하고 바로 인근 병원 응급실로 옮겨 치료받게 했는데, 권 씨가 '차라리 죽는 게 나을 수도 있다'며 치료를 받지 않으려고 해서 설득하는 데 애를 먹었다"고 말했다.

◆삶의 무게는 자식들도 마찬가지

권 씨에게는 3명의 자식이 있지만 권 씨가 지난해 11월 11일 입원 이후 퇴원할 때까지 자식들이 찾아온 적은 한 번밖에 없다. 권 씨는 "다들 자신의 무거운 삶의 짐이 있어서 못 오는 것"이라며 스스로를 위안했다.

권 씨의 자식들도 하나같이 힘겨운 삶을 살고 있다. 첫째 딸은 서울로 시집갔지만 남편과 사는 내내 사이가 좋지 못하다 가정폭력까지 당해 결국 이혼했다. 이혼한 첫째 딸은 현재 권 씨의 부인과 함께 살고 있다. 하나밖에 없는 아들은 군대에서 제대한 뒤 갑자기 근육이 굳으면서 움직이지 못하는 병에 걸렸다. 병원을 다니면서 진단을 해 봐도 병명이 나오지 않아 치료조차 못 하고 있다. 아들은 제대 이후 어떠한 일도 하지 못한 채 권씨의 부인과 첫째 딸의 간호를 받고 있다.

권 씨가 가장 안타까워하는 자식은 막내딸이다. 권 씨의 막내딸은 남편이 1억원대의 빚이 있다는 사실을 모르고 결혼한 뒤 경제적 어려움에 시달리고 있다.

"결혼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신혼집으로 빚을 갚으라는 낯선 전화도 오고 집에 압류딱지를 붙이러 오는 사람도 있더랍니다. 알고 봤더니 시댁도 모르는 사위 명의로 된 빚이 1억5천만원가량 있었다더군요."

문제는 막내 사위 때문에 권 씨가 국가의 도움을 받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막내 사위는 현재 포항에서 직장에 다니고 있으며, 직장에서 받는 월급으로 자신의 빚을 갚아나가고 있다. 이 때문에 권 씨가 사는 동네의 동사무소에서는 막내 사위의 소득이 부양 소득으로 인정된다며 권 씨에게 지급하던 생계비 지급을 중단했다. 결국 권 씨는 기초노령연금 9만원과 국민연금 5만원 등 모두 14만원의 돈과 동사무소에서 주는 10㎏ 쌀 1포대, 그리고 복지관에서 보내주는 반찬류로 한 달을 견디고 있다.

◆"더 이상 희망을 찾을 수 없어요."

상황이 이렇다 보니 권 씨는 지금 나온 약 16만원의 병원비도 걱정이다. 한 달 수입을 모두 털어 넣어도 병원비를 댈 수 없을 것 같아 절망하고 있다.

"한 달에 14만원과 쌀 1포대를 받으면, 일단 지금 살고 있는 영구임대아파트의 관리비로 절반 이상이 들어갑니다. 그리고 남은 돈으로 집 전화비 등을 내고 나면 1만~2만원 정도만 남아요. 쌀은 국가에서 받고 반찬은 복지관에서 받는다 치지만 나머지 돈으로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어요."

1만~2만원의 여윳돈으로 한 달을 살아야 하는 권 씨에게 병원에 간다는 것은 큰 부담일 수밖에 없다. 그래서 만성 장폐색이 와도 병원으로 발걸음을 옮기는 대신 아픔을 그저 참고만 있었다. 병원에서는 권 씨의 병이 재발할 가능성이 매우 높다고 보고 있다. 그래서 병원 측에서는 입원해 꾸준히 치료받기를 권했지만 무섭게 늘어갈 병원비가 겁이 난 권 씨는 결국 통원치료를 결정했다.

장폐색뿐만 아니라 권 씨가 앓고 있는 다른 질병들도 치료가 시급하지만 100만원이 넘는 검사비와 치료비 때문에 엄두도 못 내고 있다. 특히 권 씨의 척추질환 같은 경우는 현재 척추 4, 5번의 추간판이 찌그러져 있을 가능성이 커 MRI와 같은 정밀한 검사장비를 이용해 상태를 확인해야 하지만 건강보험이 되지 않는 항목이라 치료는 생각조차 하지 못한다.

가난과 병마, 그리고 주변에 아무도 없다는 외로움이 권 씨를 점점 약하게 만들고 있다. 그래서인지 권 씨는 점점 삶에 대한 의욕도 없어지고 있다고 고백한다.

"너무 긴 시간 동안 고생만 한 것 같아요. 그래도 예전에는 삶이 나아질 거란 희망도 있었는데 지금은 그런 것들이 다 사라졌어요. 사는 게 재미도 있고 희망도 보여야 살아갈 것 아닙니까. 쓰러졌을 때 기적적으로 사회복지사님이 집으로 찾아와 병원으로 데려가 주신 걸 보면 아직 죽을 때가 아니라는 하늘의 뜻이긴 한 것 같은데, 이제는 그저 죽지 못해 사는 겁니다."

권 씨는 긴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숙였다.

이화섭기자 lhsskf@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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