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륵(鷄肋)이라는 말은 위나라 조조가 명한 군호(軍號)에서 유래한 말로 정확한 의미는 '닭의 갈비뼈'다. 버리기에는 아쉽지만 희생하며 계속 매달릴 가치는 없는 것을 비유하는데 이곳 대구에도 계륵이 하나 있다. 바로 1인당 지역내총생산(GRDP)이다. 매년 말 정부가 16개 시'도의 GRDP 수치를 발표하는데 1등은 울산시이고 꼴찌는 안타깝게도 대구시다. 대구와 울산의 순위는 거의 고정적이다. 울산시는 시로 승격된 이후 한 번도 1등을 놓치지 않았고 대구시는 19년 연속 꼴찌 기록을 가지고 있다.
이런 기록을 보고 결코 기분 나빠하거나 실망할 필요는 없다. 한 국가의 부를 측정하는 국내총생산(GDP)마저 무시되고 있는데 그보다 개념적으로 부족한 GRDP에 일희일비할 필요는 없다. 1인당 GRDP 고득점 비결은 지역 내 생산공장은 많고 인구수가 적으면 되는데 설비 중심의 산업도시가 절대적으로 유리하다. 대한민국의 부가 집중되는 서울의 1인당 GRDP가 2천829만원으로 울산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하지만 서울의 도시가치가 울산보다 못하진 않을 것이다.
다만 대구시민의 한 사람으로서 근심이 드는 부분은 GRDP와는 다른 새 경제지표가 나올 때 대구의 순위가 상위에 랭크될 수 있느냐 하는 점이다. 다른 도시에 비해 고령화 속도도 빠르고 부동산을 비롯한 체감경기도 썩 좋지 않기 때문이다. 그동안 GRDP가 높았던 산업도시들도 서비스 산업에 집중투자하고 도시 인프라를 강화하면서 단순한 산업도시에서 새로운 도시로 변모하려고 애쓰고 있다.
그런데 아직도 우리 대구가 계륵과도 같은 이런 산업도시 중심의 경제지표에 매달릴 필요가 있을까. 대기업들이 본사를 이전하고 싶어하고 다국적기업들이 근거지를 두고 싶어하는 그런 곳이 된다면 GRDP 같은 수치는 바로 무시해도 된다. 그런 도시가 되면 생산공장이 없어도 지역 내 소득은 증가하고 도시의 가치는 높아지기 때문이다.
어떻게 그런 도시가 될 수 있느냐고 묻는다면 답은 '도시의 공간경쟁력 강화'다. '매력있는 도시'를 만들어 궁극적으로 '사람을 끌어들이고 유치할 수 있는 힘을 가진 도시'가 되면 우리는 바로 GRDP 같은 지표에 연연하지 않아도 된다.
세계경제는 이제 공간경쟁의 시대로 변화하고 있다. 케빈 켈리는 신경제는 지역보다는 공간에서 작용하며 점점 더 많은 경제적 거래가 새로운 공간으로 이동할 것이라고 예측했다. 창조경제론을 펼친 리차드 플로리다는 도시경제력은 창조계층의 유치 여부에 달렸는데 그 관건은 장소의 질, 즉 공간의 질이라는 주장을 하고 있다.
전시컨벤션 비즈니스를 포함한 많은 기업들도 하나의 상품만을 판매하는 것이 아니라 상품을 매개로 한 정체성을 가진 '공간'에서 소비자들에게 경험과 스토리를 총체적으로 팔고 있다. 컨벤션센터를 중심으로 한 복합공간화의 트렌드도 이런 변화를 반영한다.
서울 코엑스는 전시컨벤션 기능 외에 각종 쇼핑공간과 영화관, 아쿠아리움과 공연장 등의 문화시설, 김치박물관까지 가세해 방문객들의 발길을 끌고 있다. 싱가포르의 마리나베이 샌즈는 전시회, 국제회의, 카지노, 뮤지컬, 댄스 공연, 예술전시, 쇼핑, 레스토랑, 바, 수영장 등 완벽한 도시 내 도시(city in city) 기능으로 총체적인 공간상품을 내놓고 있다. 이에 뒤질세라 중동의 아부다비 역시 전시컨벤션과 루브르 중동관, 구겐하임 중동분관, 페라리월드 등 중동의 럭셔리 문화 중심지로 도약하기 위해 변신을 하고 있다.
올해 대구에서는 유사 이래 가장 많은 경제거물들이 참가하는 세계에너지총회가 열린다. 10월에 열리는 이 행사를 통해 대구가 '공간상품'적인 측면에서 새롭게 태어날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보면 어떨까. 그러한 공간상품화의 성공은 행사의 성공만이 아니라 도시의 미래, 그리고 도시 속에 살고 있는 사람들의 삶에 만족도를 높이고 다시 인재와 기업을 불러들이는 촉매역할을 할 것이다. 전시컨벤션센터를 중심으로 도시가 제공하는 공간상품, 도시가 제공하는 서비스의 경쟁력을 높여 혁신의 성공모델이 되어보자.
엑스코를 중심으로 우리 도시가 총체적으로 제공하는 공간상품이 매력적이기 위해서는 대구경북의 관광, 문화예술, 역사, 음식과 패션 등이 공간 속에서 더욱 집중화되어야 한다. 엑스코에 도시철도나 신교통수단이 하루빨리 연결되고 엑스코를 중심으로 전시컨벤션산업뿐만 아니라 대구와 경북의 공간상품을 제대로 만드는 것이 계륵을 버리고 도시를 살리는 혁신의 한 방법이 될 것이다.
박종만/엑스코 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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