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詩)를 읽는 것은 쉽지 않다. 은유적 표현이 많기 때문이다. 수사학에서 은유는 사물의 속성을 다른 사물을 통해 표현하는 비유법이다. 은유의 사례로 국어 시간에 자주 거론되던 정형화된 문장 '내 마음은 호수다'를 떠올려 보자. 내 마음의 한 속성 '잔잔하다'는 다른 사물인 '호수'를 통해 비유된다. 한 가지 의문이 생긴다. 도대체 왜 시는 그냥 '내 마음은 잔잔하다'고 하지 않고 굳이 '내 마음은 호수다'고 말해 독해를 어렵게 하나?
내가 아는 이유는 두 가지다. 첫째는 철학적 이유다. '내 마음은 잔잔하다'는 표현은 내 마음을 하나의 속성과 등치시켜 가둔다. 내 마음이 지닌 나머지 다양한 속성은 제외된다. 언어는 그 자체로 사물을 절단한다. '산'은 지표의 특정한 부분의 속성을 전체에서 분절해 독립된 사물로 명명한 것이다. '강'도 마찬가지다. 여기에 저항하는 언어가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이다. 존재하는 것들을 인간의 필요에 따라 재단하지 말고 그대로 내버려 두라는 거다. 시가 속성을 규정하지 않고 다른 사물을 통해 표현하는 것은 존재를 그 자체로 인정하고자 하는 의지이다. 모든 권력의 문법은 사물을 도구적 용도인 '속성'으로 재단하고, 구별하고, 줄 세운다. 언어는 그 최전방에 있다. 이 문법에 존재론 차원에서 저항하는 것이 은유다. 그래서 은유는 흔히 속성이 다르다고 생각하는 두 사물의 공통점을 찾아내서 화해를 권한다. 그 어렴풋한 사랑의 힘으로 삶의 고통을 견디자는 것이다.
둘째 이유는 정치적 이유다. 시는 철학적 차원에서도 연민과 저항의 언어이지만, 정치적 차원에서도 저항의 도구가 돼 왔다. 압제로 발언권이 박탈당한 시대에 시는 감시를 피해 소통하는 아늑한 채널이 됐다. 은유의 모호함은 대자보의 직설보다 더 강한 힘으로 사람들을 불러 모으고 위무했다. 39세의 나이로 파시스트의 총에 맞아 죽은 스페인의 로르카, 군사정권의 독재에 시를 무기로 싸웠던 칠레의 네루다, 그리고 일제강점기의 이육사와 윤동주. 이들은 비록 적과 싸워 이기지 못했지만, 거악과 싸우는 혁명가의 용기와 약한 것들에 대한 성자의 무한한 사랑을 동시에 갖고 있었다. 비록 미력하지만 온전한 저항의 형식, 그것이 시의 존재 양식이며, 우리가 시대를 넘어 시에 열광했던 이유이기도 하다.
한때 김지하도 이 반열에 올라 있었다. 1980년대 초반 대학가에서 김지하는 풍문이고 전설이었다. 그는 일상적 발설조차 통제되던 유신 치하에서 권력의 심장부를 다섯 유형의 도적으로 일갈하는 용기와 황톳길 위의 민중들의 고통에 공감하는 사랑이 있었다. 시위 때마다 울려 퍼지던 '내 이름은 너를 잊은 지 오래…'로 시작하는 민주주의에 대한 비가(悲歌)는 얼마나 많은 청춘들의 가슴을 울렸던가.
그런데 언제부턴가 김지하가 변했다. 아니 정확히 변했다고 세상이 생각했다. 1991년 민주화를 요구하며 운동권 학생들이 잇따라 분신하자 그는 '죽음의 굿판을 걷어치우라'는 글을 조선일보에 기고했다. 진보 진영에서 엄청난 비난이 쏟아졌다. 하지만 생명의 중요성을 강조한 이 글 자체는 그 정도로 비난받을 만한 글은 아니었다. 저항 시인의 상징인 김지하니까 진보 진영에서 문제가 된 것이다. 사실 이 글의 기고는 민주 투사의 투항 내지 전향으로 볼 수도 있지만, 죽어가는 생명에 대한 시인 본래의 연민이 작용한 결과일 수도 있다.
하지만 최근의 김지하는 확실히 변했다. 그가 쏟아내는 막말은 노선도, 논리도, 연민도, 분노도 없다. 욕구불만과 짜증과 오만과 허세밖에 느낄 수 없다. 그의 말에 논리적으로 대응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나는 그럴 필요가 있다고 생각하지도 않는다. 다만 그가 왜 그렇게 변했는지 그게 자못 궁금하다. 정치적 입장이야 바꿀 수 있다. 민주 투사라는 거추장스러운 월계관을 벗어던진 것도 오히려 시인의 실존적 결단으로 칭찬받을 수도 있다. 하지만 그는 시인의 자리마저 내팽개쳐 버린 듯하다. 그의 행보에서 약한 것들에 대한 존중과 애정은 도무지 느낄 수가 없다. 시인은 젊어서 열정으로 시를 쓰고, 나이 들면 역사의식으로 시를 쓴다는 말이 있다. 그는 둘 다 없어 보인다. 은유는 그에게서 떠났다. 이제는 청년 시절의 내 기억이 그를 떠날 차례인가.
남재일/경북대 교수·신문방송학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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