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검사에서 변호사, 판사까지 '법조계 그랜드슬램'

대구고법 임재화 판사

대구고등법원 판사로 근무하다 14일 퇴임한 임재화 판사가 법정에서 검사, 변호사, 판사로서 모두 일해 본 소회를 얘기하며 변호사로서의 새로운 삶을 다짐하고 있다. 정운철기자 woon@msnet.co.kr
대구고등법원 판사로 근무하다 14일 퇴임한 임재화 판사가 법정에서 검사, 변호사, 판사로서 모두 일해 본 소회를 얘기하며 변호사로서의 새로운 삶을 다짐하고 있다. 정운철기자 woon@msnet.co.kr

대구고등법원에서 근무하던 임재화(43'사법연수원 30기) 판사가 14일 퇴임하고 변호사로 새로운 삶을 시작한다. 판사가 변호사 개업하는 게 '무슨 대수냐' 싶지만 그의 경우는 사연이 조금 특별하고 재밌다. 2001년 검사로 법조계에 처음 발을 들여놓은 뒤 변호사, 판사를 모두 거치고 다시 변호사 개업을 하는 독특한 이력 때문이다.

이처럼 검사, 변호사, 다시 판사로 이어지는 '그랜드슬램'을 달성한 경우는 거의 찾아보기 힘들다. 요즘엔 검사에서 판사, 변호사에서 판사로 직종을 전환하는 경우가 예전보다 많아졌지만 검사, 개업 변호사를 거쳐 판사로 근무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그렇다면 어떻게 검사, 변호사, 판사를 다 하게 됐을까. 사법시험 40회, 사법연수원 30기를 수료하고 2001년 대구지검 형사4부 검사로 검사 생활을 시작한 그는 대구지검 공안부와 영덕지청, 울산지검 형사3부 등 3년 6개월 동안 검사로 근무했다. 그러나 경제적인 이유 등으로 검사를 그만두고 2004년 9월 울산에서 변호사 개업을 하게 된다.

"대구 동구 신암동에서 태어나 셋방살이를 전전하다 서울대에 들어가고, 검사가 되기는 했지만 여전히 집 한 채 가지기 어려워 전세 생활을 하다 보니 우선 경제적으로 자립해야 하겠다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고 고민 끝에 변호사 개업을 결심하게 됐습니다."

그러나 변호사도 잠시, 1년 4개월 뒤 이번엔 판사로 변신하게 된다. 변호사 개업 후 줄곧 '재판 업무와 민사 지식에 대한 더 많은 공부가 필요하구나' 하는 생각을 하고, 고향인 대구에서 지내고 싶다는 생각을 하던 차에 마침 법조일원화 시행과 관련, 변호사 중 판사를 선발하는 제도가 처음 시행돼 대구 지역법관으로 지원하게 된 것.

2006년 1월 판사로 임용된 그는 대구지방법원 민사부'형사부'형사항소부 배석판사, 신청'집행 단독판사를 거쳐 대구지법 안동지원 형사단독'민사단독'가사단독, 대구고등법원 민사부에서 근무하는 등 만 7년 동안 법원에서 녹을 먹었다.

그러던 2013년 초. 그에게 갑작스럽게 고민 하나가 찾아왔다. 변호사 개업과 관련된 문제였다. 그는 "애초 최소한 부장판사까지는 근무하려고 생각했었고, 3년 뒤쯤엔 지방법원 부장판사도 될 수 있기 때문에 퇴직을 고려하지 않고 있었는데, (여러 가지 상황 때문에) 갑자기 퇴직 문제를 고민하게 됐다"며 "결국 한 살이라도 젊었을 때 사회에 뛰어드는 게 맞고, 변호사 신분으로도 개인적인 경제적 여유와 함께 사회에 충분히 기여할 수 있다는 생각에 퇴직을 결심하게 됐다"고 했다.

물론 '정년 때까지 법관으로 근무하겠다'는 결심과 달리 중간에 그만두게 돼 아쉬움도 크다. 가끔 '사회로 직접 뛰어들고 싶다'는 마음이 생길 때면 '퇴직할까' 하는 생각을 하긴 했지만 구체적으로 변호사 개업은 고려하지 않았는데 마음의 준비도 없던 변호사 개업을 결정하게 돼 아직 얼떨떨하다는 것.

이 때문에 가장 힘든 것도 법원과 동료에 대한 '미안함'이다. 대법원에서 법관으로 선발할 땐 정년까지 근무하면서 봉사하라는 의미였을 텐데 중간에 그만두게 돼 송구하고, 법원 식구들에게도 죄송한 마음이 크다는 것. 그는 "제가 서야 할 곳은 변호사라는 생각이 굳어지면서 법원 식구들도 이해해 줄 거라 스스로 위로했지만 미안하고 섭섭한 생각이 사라지진 않았다"고 미안해했다.

검사, 변호사, 판사를 모두 해 본 그에게 가장 매력적이고 꼭 맞는 것은 뭐였을까. 이에 대해 그는 "솔직히 잘 모르겠다. 하는 일이 확연히 차이 나다 보니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이지 다 어려웠다"며 "그렇지만 선택의 기로에서 변호사로 살겠다고 결정한 것을 보면 나에게 가장 맞는 직업은 변호사가 아닐까 하는 생각은 든다"고 했다.

첫 번째 변호사 개업 때와 검사, 변호사, 판사를 모두 경험한 뒤 다시 변호사로 일하게 된 차이에 대해선 "처음 개업 때나 지금이나 정신을 차릴 수 없을 정도로 혼란스럽고 정신이 없는 것은 마찬가지지만 판사 입장에서 존경할 만한 변호사들을 보면서 많이 배운 만큼 심적인 준비는 다른 것 같다"고 했다.

그는 "변호사로서 새로운 삶을 살게 된 만큼 무엇보다 의뢰인을 위해 사건을 한 건 한 건 성실히 담당할 각오"라며 "이와 함께 변호사로서 사회에 적극 참여해 기여할 게 있는지 늘 살피고, 법이나 도덕에 위반되지 않고 개인의 삶이 망가지지 않는 선에서 사회에 적극적으로 참여할 각오"라고 말했다.

이호준기자 hoper@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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