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전태흥의 이야기가 있는 음악풍경] 웅산 '푸른 새벽'

"무대에 오르면 제일 먼저 객석을 바라봐요. 그리고 관객 중에서 가장 힘들고 외로워 보이는 이를 찾죠. 그리곤 오늘은 저 사람을 위해 노래해야지 하는 생각을 합니다."

그녀의 말은 노래가 사람을 위로하기 위해 태어난 것임을 다시금 일깨운다. 웅산이라는 이름의 재즈 보컬리스트,

그녀의 삶은 그녀가 부르는 재즈와 지극히 닮아 있다. 열여덟의 나이에 충북 단양의 구인사로 출가를 한 그녀는 웅산이라는 법명을 받고 1년 반의 수행 시간을 보내면서 자신이 가야 할 길은 염불을 외는 비구니가 아니라 노래하는 가수라는 것을 깨닫게 된다. 결국 그녀는 다시 하산을 하게 되고 록으로 음악의 길을 새롭게 시작한다. 그렇게 록 음악을 하던 중 1995년 겨울, 빌리 홀리데이의 'I'm a fool want to you'라는 노래를 운명적으로 듣게 되면서 그녀는 자신의 음악적 방향을 재즈로 바꾸게 된다.

하지만 웅산은 자신을 재즈에 입문하게 한 빌리 홀리데이의 ' I'm a fool want to you'를 오랫동안 부르지 못했다. 빌리 홀리데이의 노래의 깊이를 자신의 나이로는 표현할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처음 듣고서 엄청난 충격을 받았고 자신의 음악적 길을 바꾸게 만든 곡이었지만 그 노래에 담긴 내면을 들여다보지 않고서는 결코 그 노래를 부르지 못할 것 같았다고 그녀는 고백한다. 그것은 마치 카잘스가 바흐의 무반주 첼로 악보를 발견하고 대중 앞에서 비로소 연주할 때까지 수많은 시간을 보냈던 것과 같은 느낌을 준다.

그래서 그녀의 노래는 남다른 깊이가 묻어난다. 보통 재즈는 즉흥적인 음악이라고 말한다. 그래서 재즈는 연주자가 마음대로 연주하는 것처럼 인식되고 해서 어렵고 접근하기가 쉽지 않다고 말한다. 하지만 그녀의 노래를 듣다 보면 음악이란 인간의 고된 노동을 위로하기 위해 탄생한 것이고 그중에서도 재즈는 흑인들의 고단하고 지친 삶을 위로하는 것에서 출발한 것임을 직감적으로 느끼게 된다. 그래서 그녀의 노래는 결국 그녀가 처음 찾고자 했던 깨달음에 다가가고 있는 것처럼 느껴지는지도 모른다.

'바람 한 줄기 비에 젖은 파란 새벽/ 좁은 창틈 사이로 음, 밀려드는 그리움/ 하늘거리며 스쳐가는 추억 너머/ 새벽이 노래하듯 내게 속삭인다/ 빗물에 고여 더해만 가는 외로움/ 비워야 하나 봐 한낮과 밤처럼 익숙할 때까지/ 파란 새벽을 나비처럼 날아올라/ 새하얀 달빛 아래서 긴 한숨은 잠든다/ 눈부신 오해야 끝이 없던 환상이야/ 사랑이 이렇게 내 품에 안긴 채 사라져가/ 사랑이란 꿈의 노래일지 몰라/ 춤추다 나풀대다 사라지는 바람처럼/ 비가 내린 새벽이 조용히 흐른다/ 너를 보낸 슬픔이 내게로 밀려든다.'(웅산 '푸른 새벽' 가사 전문)

1999년 겨울, 광주행 시외버스에 몸을 실은 적이 있었다. 모든 것이 덧없어 보였다. 그저 무작정 달아나고 싶었다. 머리라도 깎는다면 고통에서 벗어날 수 있을 것 같았다. 시외버스 정류장에서 다시 시골로 가는 버스를 타고 두 시간을 달렸다. 그리고 해질 무렵, 절집에 닿았다. 새벽이면 일어나 근심을 푼다는 화장실 청소를 하고 낮이면 하루 종일 벽을 바라보고 앉아 있었다. 일주일이 지나고 원주 스님은 일주일을 더 지내 보자고 말했다. 쉽지 않았다. 낙엽이 얼어붙은 개울물에서 빨래를 하면서 눈물을 흘렸다. 그렇게 한 달이 지났다. 저녁 공양이 끝나고 스님은 산을 내려가라고 했다. "세상에 온갖 미련을 가진 눈빛으로 어떻게 중이 되겠느냐"는 것이 하산의 이유였다.

산을 내려오는 택시 안에서 숨죽여 울었다. 어쩌면 스님은 아무것도 버리지 못한 미욱한 중생의 마음을 보았던 것인지도 몰랐다. 늦은 밤, 어머니가 계시는 부산행 버스는 끊겨 있었고 시외버스 정류장 근처의 만화방에서 뜬 눈으로 밤을 꼬박 새웠다. 도대체 어디서부터, 무엇이 잘못된 것일까? 생각에 생각이 꼬리를 물었지만 아무런 답은 없었다. 그리고 어둠이 채 가시기도 전 첫 차표를 끊었다. 푸른 새벽이 오고 있었다. 어제처럼 사람들은 추위를 녹이려 화톳불을 피우며 하루를 시작하고 있었고 낡은 형광등은 밤의 긴 꼬리를 자르기라도 하듯이 깜박이고 있었다. 어머니는 충혈된 눈으로 갑자기 찾아온 아들에게 아무런 말없이 아랫목에 이부자리를 깔아주셨다. 며칠을 그렇게 앓아누웠다. 마치 아무런 일도 없었다는 듯이 한 세기가 저물고 또 다른 세기가 오고 있었다.

전태흥 미래TNC 대표사원 62guevara@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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