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달 1일 오후 10시 경기 고양시 일산동구 장항동 MBC 드림센터에서 열린 MBC '위대한 탄생 3' 결승 현장. 사회자의 입에 시청자들의 눈과 귀가 쏠렸다. "우승자는 한동근입니다."
참가자 수십만 명. 우승 상금 3억원. 10만여 명의 시청자로 구성된 심사위원단. 제작기간 6개월. 금요일마다 전 국민의 눈과 귀를 모았던 위대한 탄생의 주인공이 탄생한 순간이었다. 우승 후 대구를 찾은 한동근(21) 씨를 만났다. 구수한 사투리에 귀여운 나비넥타이까지…. 까까머리에 큼직한 귀걸이를 하고 게다가 눈썹 끝을 민 채 눈에 힘을 잔뜩 준 TV 속 모습과는 딴판이다.
◆군계일학
지난해 10월 19일 첫 방송에서 '데스페라도'(이글스 노래)를 부르는 순간. 이미 '우승 후보 0순위'였다. 첫 등장부터 범상치 않았다. '간질을 앓고 있어 평생 약을 먹어야 합니다'는 자기소개와 함께 다소 거친 모습에 왼손에 붕대까지 감고 있었다. 그러나 '데스페라도'를 부르기 시작하자 심사위원들은 마음을 뺏겨 버렸다. '손에 잡힐 듯한 목소리' '영혼을 울리는 목소리' '타고난 필' 등의 찬사가 이어졌다. 시청자들에게도 신선한 충격이었다. 방송이 나간 후 한동근이라는 이름 석 자는 무려 3일 동안 포털사이트 실시간 검색어 1위에 올랐다.
"데스페라도라는 가장 좋아하는 곡입니다. 제목이 '방랑자'라는 뜻이지요. 사실 곡보다는 가사가 마음에 들었어요. '나는 뭘 해도 안돼' '유학까지 갔다 왔으니 공부해야 해' '음악은 취미로 해야 한다' 등등. 나를 둘러싸고 있는 편견이나 나에 대한 지나친 기대에서 탈출하고 싶었어요. 방랑자가 되고 싶은 마음에 이 곡을 선택했습니다."
'리틀 임재범'이라는 별명도 생겼다. "영광입니다. 임재범은 한국 가요계를 풍미한 대선배지요. 그런 이름을 받는다는 게 처음부터 부담스러웠어요. 그러나 마음에 드는 별명입니다. 창법이나 스타일을 따라한다기보다 임재범 선배 같은 케이스를 따라가고 싶은 마음이 있습니다."
군계일학(群鷄一鶴). 시즌이 진행되면서 다른 경쟁자와는 차원이 다른 모습을 보였다. 그러나 방송이 진행되면서 오히려 비난의 화살이 돌아왔다. 오디션 프로의 특성상 경쟁구도가 돼야 하지만 그의 노래실력은 타의 추종을 불허했다. 그래서 경쟁이 진행될수록 시청자들로부터 외면받는 기현상이 나타난 것. 극적이지도 않았고 반전도 없었고 큰 감동도 없다는 평가였다. 고스란히 비난의 화살을 혼자서 맞을 수밖에 없었다. 첫 방송 때부터 한동근은 독특하면서도 걸출한 가창력으로, 오디션이 진행되는 내내 화제의 주인공은 그였기 때문이다.
"억울한 부분이 많아요. 시청률이 떨어진 것이 저 때문이라는 얘기도 있는데 동시간대 방송 프로그램이 워낙 시청률이 높아 상대적으로 관심을 줄어든 것뿐이지요. 그렇지만 오디션이 진행될수록 부담감에 시달렸습니다."
◆호사다마
어릴 적 꿈은 대통령이나 외교관이 되는 것이었다. 중학교 3학년 때 미국 캘리포니아로 유학을 떠났다. 4년 동안 미국 유학 생활이 만만찮았다. 고국에 대한 그리움과 외로움, 공부에 대한 스트레스…. 2010년 겨울, 결국 사고가 터졌다. 교회에서 기도하다가 그만 정신을 잃고 말았다. 간질(뇌전증)이 찾아온 것이었다. 그 후 8번의 크고 작은 발작이 이어졌고 외로움과 스트레스는 고교생이었던 그를 짓눌렀다. 증상도 해가 다르게 심해졌다. 지난해에는 입에 거품을 물고 쓰러지는 일도 있었다. 이후 아침저녁으로 두 번씩 약을 먹어야 하는 신세가 됐다. 그의 표현대로라면 평생을 간질과 함께 살아야 하는 운명이다.
탈출구가 필요했다. 음악이었다. "음악을 할 때면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이었습니다. 노래를 부르고 피아노를 칠 때면 이상하게 정신이 맑아지고 외로움을 이길 수 있었지요."
호사다마(好事多魔). 그를 괴롭혔던 병마가 오히려 그에게 기회를 주었다. "지난해 병무청 신체검사를 받으러 귀국했습니다. 7급을 받아서 재검을 받아야 하는 상황이었지요. 미국 병원에서 간질 진단을 받은 게 한국에서는 인정이 안 됐습니다. 한국 병원에서 진단서를 떼어야만 했지요."
어쩔 수 없이 한국에서 6개월간 머물러 있어야 했다. 갑자기 남는 시간을 어떡할까 고민하다 음악공부를 하기로 했다. 구미에 있는 음악학원에 난생처음으로 문을 두드렸다.
"재미로 다닌 음악학원에서 노래를 몇 곡 불렀더니 대번에 원장님이 방송사 오디션에 꼭 지원하라고 권유했습니다. '위대한 탄생 3'에 지원하게 된 계기였지요." 간질이 준 선물인 셈이다.
◆낭중지추
오디션에 도전하기까지 과정은 쉽지 않았다. 부모의 반대가 컸다. 초등학교 때부터 반장'부반장을 했고 조기 유학, 게다가 우등생이었던 한 씨였기에 어쩌면 당연했다. 아버지 한정우 씨는 구미에서 시의원까지 할 정도로 지역에선 유명인사다. 형도 펜실베이니아 주립대에 다닐 정도로 구미에서는 제법 알려진 엄친아 집안이다.
낭중지추(囊中之錐). 숨겨진 재능이 결국 옷을 뚫고 나왔다. 체계적인 음악 공부를 한 번도 한 적이 없지만 타고난 '절대 음감'을 가진 그였기에 음악에 대한 재능은 숨길 수 없었다. 초등학교 4학년 때부터 드럼을 쳤다. 미국에서 고등학교를 졸업할 당시 캘리포니아주 72개 고등학교 노래대회에서 공동 우승을 차지할 정도로 두각을 나타냈다.
어릴 때부터 음악을 좋아했다. 피아노 학원을 다니면서 남다른 음감을 지녔다는 말을 들었지만 부모는 흘려들었다. 그래서 음악학원 등에서 한 번도 제대로 된 교육을 받지 못했다. "음악이 너무 좋았어요. 특히 간질을 앓고 난 뒤부터는 음악이 유일한 희망이 되어버렸지요. 유학 생활 때는 부모님 몰래 음악학원에 다닐까 많이 고민했어요."
그러나 부모님의 기대를 저버릴 수는 없었다. 오디션이 진행되는 동안 '가수가 하고 싶다'는 생각을 처음 했을 정도였다. 그래서 지금은 참 행복하단다. "부모님도 절 이해해주시고 적극 응원해 주셔요. 오디션 동안 어머니, 아버지는 생활을 거의 포기하셨지요. 아버지는 아침 출근 시간 전에 매일 아들 이름이 나온 기사를 전부 찾아 읽으시는 모습에 저도 놀랐어요. 한편으로 간질을 앓고 있는 자식 때문에 힘들었을 부모님에게 선물이 되는 것 같아서 그게 아주 좋았어요."
◆동전 노래방 연습
지역 정치권, 지역 경제계, 지역 언론, 지역 학회라는 말은 있지만 지역 연예계란 말은 없다. 지역에서 활동하는 유명 연예인이 전무하다시피하다. 게다가 이들이 활동할 수 있는 공간은 물론 육성하는 시스템조차 제대로 갖춰져 있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지역 출신인 그의 등장은 더욱 반갑다.
"가수가 되려면 왜 꼭 서울로 가야 한다고 하죠. 대구경북에도 가수로서 대성할 수 있는 숨은 인재가 많이 있어요. 그렇지만 가수들이 자랄 수 있는 토양이 너무 척박합니다. 대구경북에서도 가수 지망생들이 충분히 성공하고 놀 수 있는 마당이 마련됐으면 합니다." 스무 살을 갓 넘긴 그에게 '서울 공화국'인 이 땅의 현실이 받아들이긴 어려운 모양이었다. 괜히 미안해졌다.
실제 그가 오디션을 보기 전 연습을 한 곳은 음향시설이 갖춰진 연습실이 아니었다. "제대로 된 연습실을 구할 수 없었어요. 결국 오디션 연습을 위해 주로 동전 노래방을 찾았어요. 500원을 내고 노래 연습을 하다 보면 처량하기도 했죠."
요즘 그는 눈코 뜰 새 없이 바쁘다. 그의 자질을 알아본 기획사 등에서 입질(?)이 들어오고 있다. "몇몇 유명한 회사에서 제의를 받았어요. 공익광고 제의가 들어와서 조만간 광고 촬영도 해야 하고, 드라마 OST 제안도 받았습니다. 그러나 서두르고 싶지 않습니다. 한 걸음 한 걸음 성장해서 월드스타가 되고 싶습니다."
최창희기자 cchee@msnet.co.kr
사진'이채근기자 mincho@msnet.co.kr
※한동근은?=1993년 구미에서 태어났다. 구미 야은초교를 졸업하고 도송중학교 3년 때 미국 유학길에 올랐다. 캘리포니아에 있는 고교에 진학해 3년 내내 우등상을 탔고 고등학교를 졸업할 당시에는 캘리포니아 주 72개 고등학교 노래대회에서 공동 우승을 했다. 2010년 간질이 찾아왔다. 지난해 병무청 신체검사를 받으러 귀국했다가 '위대한 탄생 3'에 참가했다. 오디션 진행 동안 발라드'삼바'블루스'록 등 다양한 장르를 소화하며 우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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