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야고부] 포항 시민의 힘

한국인들은 이웃끼리 서로 도우며 살고 있을까?

무척 난해한 질문이다. 그런 것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하다. 어릴 때 배운 교과서에는 두레, 향약(鄕約)을 사례로 들면서 '어려운 일이 있으면 서로 도와주는 민족'으로 나와 있었다. 그렇지만 사회생활을 해보니 전혀 그렇지 않음을 알 수 있었다. 먹고살기 힘드니 자기 것만 챙기기에 급급할 뿐, 이웃의 어려움을 돌아볼 여유조차 없는 이들이 대부분이었다. 외국 언론으로부터 '이기적이고 질서 없는 한국인'이라는 비판을 들어도 할 말이 없었다.

그런 한국인들의 의식을 획기적으로 바꾼 일대 사건이 2007년에 벌어졌다. '태안의 기적'이라고 불리는 자원봉사 행렬이었다. 최악의 기름 유출 사고를 당한 태안 바닷가를 찾은 123만 명의 자원봉사자는 모래 한 알, 자갈 한 개조차 놓치지 않고 기름기를 닦아내고 또 닦아냈다. 그 기적은 우리를 놀라게 했고, 세계를 놀라게 했다. 복구에 반세기가 걸릴 것이라는 태안 앞바다는 몇 년 만에 옛 모습을 되찾았다.

'태안의 기적' 정도까지는 아니지만, 지난 주말 포항에 산불이 났을 때에도 시민들의 참여 의식이 크게 빛났다. 주민들이 자발적으로 나와 산불을 잡기 위해 온 힘을 다했다. 삽을 들고 저지선을 만들었고 양동이를 들고 물을 끼얹었다. 용흥동 우방아파트에서도 주민 수백 명이 진화에 힘을 보탰는데 그중 세무서에 근무하는 A씨의 활약상이 단연 화제다.

"아파트 뒷산에 불이 번지고 있다는 방송을 듣고 아내와 함께 양동이를 들고 산에 올라갔는데 마치 전쟁터 같았어. 메케한 연기에 숨이 꽉꽉 막히고 불똥이 100여m씩 휙휙 날아다니는 걸 보면서 겁이 났지만, 동네를 구하겠다는 생각에 주민들과 힘을 보탰지. 현장을 이리저리 쫓아다니다 소방차 2대를 현장에 끌고 와 산불 확산을 막았지."

산불 진화에 앞장선 것이 어디 A씨뿐이겠는가. 동네마다 '산불을 잡는 데 큰 공을 세웠다'는 주민들의 무용담이 여기저기서 들린다. 주민들이 위험을 무릅쓰고 산불을 막았기에 그 정도 피해에 그쳤다는 얘기가 많다. 비록 산불로 인해 한 분이 돌아가시고 이재민들도 많이 생겼지만, 포항 시민의 자발적인 참여로 피해 규모가 줄고, 피해자 수도 크게 줄었다고 한다. 포항 시민들의 빛나는 시민 의식에 큰 박수를 보낸다. 부상자와 이재민들도 용기를 잃지 말고 다시 일어서는 모습을 보여주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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