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처작주 입처개진'(隨處作主 立處皆眞)
'가는 곳마다 주인처럼 행하면 서 있는 곳곳이 참되고 진실되다'는 뜻이다. 김희옥(65) 동국대 총장이 불가의 계율처럼 삼고 있다는 '화두'다. 김 총장은 어디를 가든 일관되게 참되고 바르게 주인답게 행동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의미에서 항상 마음속에 품고 있다고 했다. 이는 중국 당나라 때의 선승 임제선사의 어록에서 나온 말이다.
김 총장과 1시간여 동안 인터뷰를 하는 동안 불가(佛家)에서 자주 쓰는 '화두'나 '시절인연' '지수화풍' 등의 용어를 듣다 보니 대학총장이 아니라 고즈넉한 산사(山寺)에서 스님과 차 한 잔 나누는 듯한 편안한 느낌이 들었다.
동국대 법학과를 나와 1976년 사법시험에 합격해 부산지방검찰청 검사를 시작으로 대구지검 차장검사, 대전지검 검사장, 서울동부지검 검사장 등을 거쳐 법무부 차관과 헌법재판소 재판관(2010년 12월)을 마지막으로 공직을 마칠 때까지 35년간 그는 법조인 외길을 걸었다. 대부분의 법조인이 공직을 떠나서는 대형 로펌에 가거나 변호사 개업을 통해 '전관예우'를 받는 것을 당연시하는 현실에서 대학총장으로 변신한 김 총장의 선택은 의외다.
"헌법재판관직을 물러나면서 변호사 개업보다는 보다 의미 있는 일을 하리라 마음먹었다. 공직을 배경 삼아 사익을 취하고 싶은 생각은 없었다. 그보다는 국가와 사회를 위해 봉사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이 있을까 생각했다."
김 총장은 "인생을 바꾸는 일이어서 사실 무지하게 어려웠다"며 솔직한 심경을 털어놓았다. 그러면서 이를 불가에서 말하는 '시절인연'으로 돌렸다. "대학총장을 하겠다고 결심을 한 것이고 우연치 않게 때가 도래한 것이다. 때가 도래하다 보니까 '큰일났구나' 하다가 (총장직을)덜컥 맡게 됐는데 그것이 바로 '시절인연'이다."
그는 "처음에는 학교 구성원들이 헌법재판관을 하고 정부에서도 있었지만 검사가 대학을 어떻게 운영할지 걱정한 모양인데 법조인으로서 살아왔던 경력도 학교 운영에 도움이 됐다"면서 "불교 종립학교로서 '상구보리 하화중생'(上求菩提下化衆生'위로는 지혜와 진리를 탐구하고 아래로는 진리를 바탕으로 중생을 구제하겠다)이라는 교육 목표와 철학을 가진 모교, 동국대학교를 위해 봉사하고 싶었다는 것이 솔직한 제 생각이었다"고 말했다.
경북고를 졸업하고 동국대 법학과에 입학하게 된 연유에 대해서도 "시절인연인지 모르겠다"고 대답했다.
그는 독실한 불자다. 법명도 '당래'(當來)와 '불이'(不二), '태허'(太虛) 등 세 개나 갖고 있다. 특히 '당래'는 현세의 미륵불이라는 의미로 받아들여진다는 점에서 그의 불심(佛心)의 깊이를 어느 정도 짐작해 볼 수 있다. 이에 대해 그는 "(당래는)엄청난 것이자 겁나는 것"이라며 가볍게 미소 지었다.
2011년 3월 취임한 후 이제 4년 임기의 절반이 지났다.
김 총장은 2020년 세계 100대 대학 진입을 목표로 제2의 건학 운동을 전개하고 있다.
-취임 2주년이 지나고 있다. 스스로 어떻게 평가하고 있는지.
"취임 이후 가장 큰 성과라면 동국대가 앞으로 큰 전진을 하기 위한 발판을 다진 것이라고 생각한다. 취임 초기 제2 건학을 선언하고 이를 위한 여러 마스터플랜을 밝힌 바 있다. 그러한 마스터플랜을 위해 학내 구성원들의 합의와 협조를 이끌어 낸 것이 무엇보다 소중한 일이다. 제2 건학운동은 말 그대로 동국대가 발전하기 위해 초심에서 다시 시작해보자는 다짐이다. 인문학과 이공계가 어우러지고 연구중심대학으로서 세계 유수의 대학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명문대학으로 재도약하겠다는 것이다. 취임 2년이 지나며 여러 분야에서 성과가 있었던 것으로 확인돼 고무적으로 생각하고 있다. 중앙일보의 대학 평가 순위에서 3년 연속 상승, 현재 대학 순위 13위다. 몇 년 안에 국내 10위권 진입과 장래 세계 100위 진입의 목표도 이룰 수 있을 것이다.
또 그동안 정체됐던 교육 인프라의 확대를 계속해 교육여건이 나아진 것도 성과 중 하나다."
-동국대는 경주캠퍼스가 있어서 대구경북으로서도 친숙하다. 본교 발전에 맞춘 경주캠퍼스 발전 방안이 있는가.
"경주캠퍼스는 1978년 설립돼 현재 9개 단과대학과 6개 대학원이 운영되고 있는 대규모 대학이다. 교수님 370여 분이 1만여 명에 가까운 학생들을 가르치면서 경북에서 우수한 교육중심대학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지난해 교육부로부터 재정지원 제한 대학으로 선정된 일이 있는데 그것은 취업률 산정에 있어 교육부 지침을 잘못 해석한 실무자의 착오로 문제가 된 것이다.
동국대 경주캠퍼스는 다른 대학 지방캠퍼스와 질적으로 다르다. 경주캠퍼스는 자율 체제 아래 본교와 분리 운영하고 있다. 이는 재정이나 인사에서 완전한 자율이 주어진다는 점에서 그렇다. 본교의 직제상 부총장이지만 경주캠퍼스 총장으로 부르고 있다. 경주캠퍼스는 경북지역 최고의 교육중심대학이라는 전략적 지향점을 가지고 운영할 계획이다. 또 향후 교육 수요자의 요구를 정확히 파악해 융'복합, 바이오, 그린, IT, 에너지, 서비스 등 다가올 미래를 대표하는 학문 위주로 운영하려고 한다. 위기는 기회다. 지난해 경주캠퍼스는 악재 속에서도 대학종합평가 순위가 7단계나 상승했다. 경주캠퍼스가 어려운 고비를 잘 극복해 나아갈 것으로 확신한다.
이미 경주캠퍼스는 취업이 잘되는 대학으로 이름이 나 있다. 경주캠퍼스 한의과 대학 출신이 이번에 대한 한의사협회장이 됐고 또 경주캠퍼스 출신 국회의원도 부산에 있는 등 많은 인재를 배출하고 있다."
-동국대의 건학이념이 다른 대학과 많이 다르다. 요즘 동국대 출신 고위관료도 많이 배출되고 있다. 동국대만의 학풍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동국대는 불교를 건학이념으로 설립된 불교학의 종가로서 한국의 대표사학이다. 일제강점기 때부터 문학과 사학,철학 등 인문학의 전통이 강한 대학이다. 또 경찰행정학과 연극, 영화 등에서도 괄목할 만한 성과를 거두고 있다. 또 107년의 역사를 거쳐오며 25만 명이 넘는 동문을 배출한 것도 큰 강점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 훌륭한 동문들이 곳곳에 포진해 있고 이는 동국대학교의 큰 자산이다. 문제는 이러한 잠재력을 어떻게 현실화할 것인가의 문제다."
동국대는 김영삼 전 대통령 시절과 김대중 전 대통령 시절 전성기를 누렸다. 당시 2인자로 불리던 최형우, 권노갑씨 등이 동국대를 나왔다. 박근혜 대통령의 최측근인 이정현 청와대 정무수석과 이성한 경찰청장 내정자도 동국대 출신이다. 동국대(학부) 출신 19대 국회의원은 7명인 것으로 집계되는 등 정'관계에 많은 공직자가 진출해 있다.
-대학총장을 맡기 전과 2년의 임기를 지난 지금 대학에 대한 생각이 많이 달라졌을 것 같다.
"교육이라는 것이 참 가치가 있다. 특히 대학 교육은 국가와 사회 발전에 바로 연결이 된다는 점에서 대학총장을 맡게 된 것을 참으로 보람 있게 생각하게 됐다. 대학에 오기 전에는 대학이 이렇게 좋은 일을 하는지 몰랐다. 대학총장은 어디 가서 연설이나 하고 학위나 수여하고 보통 그렇게 생각하는데 우리 대학만 해도 전임교수가 1천100명이나 된다. 교원도 그 정도 있고 의료원까지 합치면 엄청나다. 잘 조화해서 운영하는 일이 간단하지 않다. 공직에 있을 때보다 일을 더 많이 하는 것 같다.(웃음)
대학이 우리 국가사회 발전에 얼마나 기여하는지 제대로 모른 채 지금 대학은 오로지 비난만 받고 있다. 우리나라 대학의 78%가 사립이다. 고등교육을 사립이 맡고 있는 것인데도 1차적으로 등록금을 많이 받는다고만 생각한다.
실제로 대학에 와보니까 우리나라의 20여 개 대학은 세계적인 대학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다.
문제는 대학 재정을 위축시키지 않으면서 등록금 부담도 덜어주는 두 가지 문제를 조화시키는 일이다. 지금은 과도기지만 간단한 문제는 아니다."
-헌법재판소장이 이동흡 파동을 겪고 두 달여 만에 재지명되는 등 국민들이 걱정하고 있다. 총장께서는 헌법재판관을 역임해서 헌재 사정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지 않은가.
"우리나라에는 결국 최고재판소가 대법원과 헌법재판소 두 곳이다. 독일 등 유럽식을 따른 것인데 미국과 일본은 하나다.
결국 개인 권리 구제 판단은 대법원에서 하는 것이 맞고 헌법적 가치에 맞춘 국민의 기본권 침해에 대해서는 헌법재판소가 맡고 있는 셈이다. 헌법재판소는 이제 25년이나 지났다. 그동안 국민들 사이에서 기본권을 지키고 헌법적 가치를 국민 속에 심는 데 많은 일을 해왔다.
헌법재판소는 정치의 영역에 속한다. '정치재판'을 한다는 뜻이다. 사건을 정치적으로 판단하는 것이 아니라 사건 자체가 정치적 사건이라는 말이다. 국회에서 정치적으로 제정한 법률의 위헌 여부를 판단하고 대통령 탄핵사건 등 정치의 영역에 있는 사건을 헌법적 가치와 사법적 잣대로 판단하는 것이니까 정치적 재판이라고 교과서에 나온다.
공복인 고위 공무원은 스스로 먼저 솔선수범하는 모습을 보여야 할 것이다. 누군가에게 물어볼 필요도 없이 스스로 살펴 남에게 존경받지 못할 일을 했다면 스스로 거취를 판단해야 한다."
서명수 서울정경부장 diderot@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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