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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샛별과 멘토 세대공감] 장현덕 대구 상원고 주전 포수…정동진 전 삼성 라이온즈 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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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수는 갑옷 입은 장군" "거추장스러운 장비는 포수의 숙명"

상원고 포수 장현덕(왼쪽)이 대선배인 정동진 전 삼성 라이온즈 감독이 야구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사진
상원고 포수 장현덕(왼쪽)이 대선배인 정동진 전 삼성 라이온즈 감독이 야구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사진'우태욱기자 woo@msnet.co.kr

정동진 전 삼성 라이온즈 감독과 대구상원고 장현덕은 50년 세월의 틈을 야구라는 공통분모로 메우고 있다. 둘은 또 상원고(옛 대구상고) 선'후배로, 온갖 궂은일을 다하는 포수라는 포지션으로 서로를 묶고 있다. 정 감독이 그 길을 먼저 걸었고, 현덕 군은 그가 닦아 놓은 길을 걸으며 미래를 그리고 있다. 예나 지금이나 포수는 선수들이 선호하는 포지션이 아니다. 화려함과는 거리가 멀기 때문이다. 투수의 공을 받아내지만 모든 시선은 언제나 투수를 향한다. 공이 들어올 땐 타자에게, 공이 맞아나갈 때는 공의 궤적을 쫓으니 포수가 주목받을 일은 별로 없다.

치렁치렁 몸에 둘러멘 보호 장구처럼 온갖 책임을 짊어지고 있으나 스포트라이트가 비칠 때는 뒤로 한발 물러서 있는 게 포수다. 그럼에도, 없어서는 안 될 존재가 또한 포수다. 힘들고 꺼리는 포지션이지만 묵묵히 그 길을 걸어온 선배, 그런 길을 걷겠다며 마스크를 쓴 후배. 그래서 둘의 대화는 진지할 수밖에 없었다.

-포수를 하게 된 계기는.

▷정동진(이하 정)=수창초등학교에 다닐 때 야구를 했다. 그러나 공에 눈을 맞아 그만두고 핸드볼을 했다. 대구중학교에 입학했을 때 야구선수를 뽑는다고 전교생을 대상으로 테스트했다. 야구가 하고 싶어 기를 쓰고 합격했다. 후보로 지내던 2학년 때 3학년 주전 포수가 야구를 그만뒀다. '너 포수 해봐'라는 감독님의 말 한마디에 마스크를 쓰게 됐다. 포수는 이처럼 우연히 찾아온 숙명이었다.

▷장현덕(이하 장)=옥산초등학교 6학년 때 야구를 시작했다. 너도나도 투수를 하겠다고 할 때 각종 보호대를 두른 포수가 멋있어 보였다. 글러브 하나만 달랑 든 투수나 야수와 달리 포수는 마치 갑옷을 입고 전쟁터를 지휘하는 장수같이 보였다. 야수는 자기 쪽으로 공이 올 때까지 기다려야 하지만 포수는 투수가 던진 공 하나하나를 받아야 하니, 잠시도 심심할 틈이 없는 것도 좋았다. 그라운드의 멋있는 주인공, 그게 포수인 줄 알았다.

-포수만큼 힘든 포지션도 없다는데.

▷정=포수는 독특한 구석이 많다. 모두가 홈플레이트를 바라볼 때 포수는 혼자 마운드를 바라본다. 특별한 만큼 할 일도 많다. 포구, 송구, 블로킹은 기본이고 상대 타자의 장'단점을 파악해 투수를 리드해야 한다. 무엇보다 투수들이 힘들 때 기댈 수 있고 신뢰감을 갖도록 부단히 노력해야 한다. 포수는 거추장스러운 장비를 몸에 달고 홈플레이트 뒤에 자리 잡고 3시간여를 앉았다 일어서기를 되풀이한다. 타자가 공을 쳤을 땐 1루를 향해 뛰어야 하고 파울팁에 맞는 고통도 참아내야 한다. 홈으로 달려오는 주자를 온몸으로 막는 것도 포수의 임무다. 미트 질을 잘못해 손가락이 일그러지고, 파울볼을 잡으려다 방망이에 걸려 넘어지기도 한다.

▷장=뭐 하나 쉬운 게 없다. 투수가 마음 편하게 공을 던질 수 있도록 날아오는 공을 몸으로 막아내야 하고, 투수의 공이 위력적이라는 것을 도드라져 보이게 하려면 미트 질을 잘해 소리가 '펑펑' 나도록 해야 한다. 화가 나고 힘들어도 표정을 감춰야 하고, 삼진을 잡아냈다고 들떠서도 안 된다. 마스크로 얼굴을 가리고 적의 허점을 찾아 찌르는 자객, 그런 게 쉽게 되는 것은 아니다.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을 떠올린다면.

▷정=제일은행 시절 퍼펙트를 만들어냈을 때다. 1971년 7월 3일 철도청과의 시합에서였다. 당시 투수는 김병우였는데, 공은 빠르지 않았지만 제구가 좋았다. 7회가 넘어가자 '일을 한번 내겠구나'라는 느낌이 왔다. 타석에 들어선 타자들을 보니, 초조한 기색이 역력했다. 그러나 9회 마지막 타자를 잡기까지 알 수 없는 게 야구다. 투수가 들뜨지 않게 평정심을 유지하느라 애를 썼다. 퍼펙트가 완성되는 순간, 온몸에 전율이 흘렀다. 그때의 감격은 지금도 잊을 수 없다.

▷장=지난해 전국대회 때 투수 리드를 잘못해 역전패를 당했을 때다. 연장 승부치기였는데, 감독님이 몸쪽 사인을 냈는데, 확실히 붙지 못한 채 엉거주춤했다. 영점을 바로잡아주지 못해 안타를 맞았고, 이 탓에 팀이 졌다. 그 실수가 두고두고 머릿속에 남아있다. 그 끔찍했던 경험을 다시는 되돌리고 싶지 않다. 스스로 포수로서 준비가 덜 된 게 문제였다. 값진 경험으로 여기고 연습에 또 연습을 반복하고 있다.

-포수의 덕목을 꼽으라면.

▷장=투수의 영점을 넓혀주는 덩치. 도루를 저지하는 강한 어깨, 감독의 꾸지람을 이겨낼 뻔뻔스러움, 3시간여를 부단히 움직일 수 있는 체력 등 갖춰야 할 요소가 너무 많다. 그중에서도 투수와의 소통이 가장 중요하다. 투수가 흔들릴 때 다독여주면서 용기와 자신감을 심어줄 수 있어야 한다. 그래서 투수와 대부분 시간을 보낸다. 시시콜콜한 것까지 물어 투수의 모든 것을 머리에 담아두려 노력한다. 그래야만 믿음을 줄 수 있다.

▷정=힘듦을 이겨내려는 마음가짐과 자부심, 애정이 있어야 한다. 포수 자신이 즐거워야 팀이 산다. 그리고 빠뜨릴 수 없는 게 노력이다. 예전엔 포수 교본이 없었다. 지금처럼 타자에 대한 분석을 해주는 사람도 없어 감으로 볼 배합을 했다. 그래서 경기를 치를 때마다 그 타자의 속성을 깨알같이 메모했다. 해병대 때의 일이다. 당시 김진영 감독이 배가 아파 화장지를 찾다 매트리스 밑 노트를 발견하고 화장실로 뛰어갔다. 볼일을 보고 노트 속 종이를 찢어 닦으려는 데 그 종이에 적힌 깨알 같은 글씨를 보고는 손수건을 화장지로 대신한 채 화장실을 나와 그 노트를 원래 있던 곳에 뒀다. 한참 뒤 김 감독이 "왜 네가 야구를 잘하는지 알겠다"며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일화지만 포수라면 그런 노력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최두성기자 dschoi@msnet.co.kr

◆정동진(67)

1960~1970년대 한국을 대표했던 포수. 수창초교-대구중-대구상고(현 대구상원고)를 졸업한 뒤 1964년 실업팀 제일은행에 입단했다. 대구'경북 최초로 태극마크를 달아 1965년 제6회~1971년 제9회 아시아선수권에 출전했다. 1966년 해병대에 입대해 1969년 실업연맹전에서 팀 창단 첫 우승을 이끌었고 은퇴 뒤 모교인 대구상고 감독(1976~1978년)을 맡아 김시진'이만수'양일환'오대석 등 스타를 길러내며 1977년 청룡기 우승을 지휘했다. 은행원으로 있다가 1984년 삼성 김영덕 감독의 부름을 받고 야구계에 복귀해 1988년까지 삼성 수석코치를 지낸 뒤 1989~1990년 삼성 감독, 1992~1995년 태평양 감독을 역임했다.

◆장현덕(18)

1995년생으로 옥산초교 6학년 때 처음으로 글러브를 꼈다. 구미중을 거쳐 상원고로 진학한 뒤 2학년 때부터 포수 마스크를 썼다. 지금은 3학년으로 대구상원고 주전 포수다. 국제대회 경험과 국내 대회 수상 내역은 없으나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을 열의로 포수의 자질을 키워가고 있다. 정 감독처럼 수비를 잘하는 포수가 되고 싶은 게 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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