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역사 속의 인물] 욕쟁이 춘성 스님

구글 검색 선호 출처로 추가
로봇
mWiz 이 기사 포인트

  • 가
  • 가

춘성(1891~1977) 스님은 욕쟁이 스님으로 잘 알려져 있지만 선승으로 더 이름을 날렸다. 13세 때인 1903년 출가해 백담사에서 만해 한용운을 사사했다. 경학과 강연으로 이름을 날리자 일제가 그를 회유하려 했으나 냉정하게 거절했다고 한다. 스승인 만해가 3'1 만세 운동을 주도한 혐의로 투옥되자 옥바라지를 도맡았고, 감옥에 갇힌 스승이 냉방에서 고초를 겪는다며 아무리 추워도 자신의 방에 불을 때지 못하게 했다.

만해의 '조선독립의 서'는 춘성이 감옥에 있던 스승의 편지를 범어사 스님에게 전했고, 이것이 상해 임시정부로 배달돼 1919년 11월 4일 독립신문에 게재됐다. 이 명문은 만해의 믿을 만한 제자 춘성이 없었다면 빛을 보는 게 불가능했을지도 모른다.

욕쟁이란 별명은 스님이 된 이후 줄곧 붙어다녔다. 기골이 장대한 스님이 법력이 높은데다 욕설까지 잘하니 일제 경찰들도 감히 건드리지 못했다고 한다. 박정희 대통령 부부에게 초대됐을 때 청와대에서 욕을 섞은 법문을 한 것으로 유명하다. 1891년 오늘은 춘성 스님이 태어난 날이다.

최신 기사

mWiz
1800
AI 뉴스브리핑
정치 경제 사회 국제
박근혜 전 대통령이 영화 '암살자(들)'과 관련해 박정희 전 대통령의 친필 편지 공개를 제안한 가운데, 유영하 의원은 편지 공개의 경위를 설...
대구와 경북 지역의 농지의 4분의 1 이상이 외지인 소유인 것으로 나타났으며, 경북은 전남과 충남에 이어 외지인 소유 면적이 세 번째로 큰 ...
성경환 전 한국정책방송원장은 박정희 전 대통령의 여성 편력과 관련된 사건들을 소재로 한 영화 제작을 제안하며, 과거 사건들이 잘 알려지지 않...
브리핑 데이터를 준비중입니다..
→

많이 본 뉴스

일간
주간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