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대 주부인 나가자 씨는 얼마 전 TV 예능프로그램 '무한도전'을 보다가 문득 하와이 여행이 가고 싶어졌다. 와이키키 해변의 모습이 너무 멋있어 보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 씨는 이내 포기했다. 항공사 홈페이지에서 확인해보니 이코노미석 왕복 비행기 삯만 140만원이나 됐기 때문이다.
그러나 나 씨의 하소연을 들은 동생 성실 씨는 곧바로 비행기 티켓을 예약했다. 그것도 공짜로. 알로하오에(Aloha Oe)! 콧노래가 저절로 나왔다. 그런 성실 씨도 하와이행 비행기 안에선 갑자기 우울해졌다. 기내에서 우연히 마주친 친척, 요령 씨가 자신보다 훨씬 좋은 조건으로 여행 온 걸 알게 된 탓이다. 이들 사이에는 도대체 무슨 일이 벌어진 걸까?
◆안 쓰면 손해, 알아두면 돈 된다
세 사람의 차이는 항공기를 이용할 때마다 실적을 쌓아 현금 대신 사용할 수 있게 하는 마일리지(mileage)였다. 나가자 씨는 그동안 해외여행은 몇 번 다녀왔지만 귀찮다는 이유로 마일리지 적립에는 신경을 쓰지 않았다. 반면 성실 씨는 꼬박꼬박 적립한 것은 물론 항공사 연계 신용카드까지 사용하면서 알뜰히 마일리지를 모은 덕분에 보너스 항공권을 받을 수 있었다. '여행 고수' 요령 씨는 여기에다 자신만의 비법까지 갖췄다. 하와이 여행에 필요한 마일리지가 가장 적은 항공사에다가 마일리지를 모아온 것이다.
이상은 예로 든 것이지만 현실에서도 있을 법한 일이다. '마일리지 내공'에 따라서는 이보다 더 효율적인 사용도 가능하다. 각 항공사들의 상용고객우대제도(Frequent Flyer Program)의 틈새를 찾아내는 게 관건이다. 하와이를 다녀온 뒤 제3국으로 나가는 티켓을 추가로 받을 수도 있고, 같은 마일리지로 한 번의 여행을 더할 수도 있다.
이 같은 '비법'은 항공사들이 동맹체를 결성, 마일리지를 서로 나눠쓸 수 있게 됐지만 상용고객우대제도는 회사마다 조금씩 차이가 있기 때문에 가능하다. 만약 하와이 여행이 목표라면 '스카이팀' 소속인 대한항공을 탄 뒤 같은 동맹체 소속인 델타항공에 적립하는 게 나을 수 있다. 평수기 이코노미석 왕복 기준으로 대한항공은 7만 마일이 필요하지만 델타항공은 4만 마일만 있으면 된다. 더욱이 델타항공에 적립한 마일리지로 대한항공 이용도 가능하다. 조금만 지식을 갖춘다면 자신에게 가장 알맞은 항공사 프로그램을 활용, 해외여행 경비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항공권 부담을 줄일 수 있는 것이다.
원하는 여행지에 갈 때 필요한 마일리지는 '마일즈비즈'(http://milez.biz)라는 사이트를 방문하면 쉽게 알 수 있다. 출발지와 도착지만 입력하면 각 항공사별 검색 내역이 소개된다. 김해공항에서 일본 도쿄(나리타공항)를 간다면 '원월드' 소속인 영국항공이 왕복 9천 마일로 가장 적은 것으로 나타난다. 특정 구간을 자주 여행하는 사람이라면 공제 마일을 비교한 후 항공사 회원 가입을 선택하는 것이 좋다.
◆여행 고수에게 배우는 한 수
하지만 해외여행을 1년에 한 번 갈까말까 하는 형편이라면 수많은 항공사의 마일리지 제도를 모두 다 공부한다는 것이 헛수고일 수 있다. 국내에도 노하우를 공유하는 카페'블로그가 여럿 있고 관련 서적도 꽤 출간됐지만 대부분 여행객들에게는 '그림의 떡'이기 십상이다. 해외에서는 '플라이어토크'(www.flyertalk.com)라는 사이트가 유명하지만 어느 정도 기본 지식이 없으면 거의 외계어 수준으로 들린다.
그런 면에서는 국적기인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의 프로그램에 대해서 잘 알아두는 편이 오히려 낫다. 아무래도 자주 탈 기회가 있을 뿐 아니라 신용카드 사용만으로도 마일리지를 쉽게 모을 수 있는 덕분이다.
대한항공에서는 이른바 '편도 신공'으로 알려진 마일리지 활용법이 고수들만의 숨겨진 노하우. 항공업계에서는 '56수요'라고 부른다. '3'은 출발편, '4'는 귀국편을 뜻하고 '5'와 '6'은 경유를 하는 이원구간을 의미한다. 쉽게 말해 외국에서 제3국을 갈 때 대한항공의 직항편이 없어 인천'부산에서 환승해야 하는 것을 스톱오버(stopover'중간체류)로 활용, 두 번째 여정을 무료로 이용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5월 석가탄신일 연휴에 일본을 갔다가 귀국한 뒤 추석 연휴에 다시 홍콩을 방문하는 게 가능하다. 일본→한국 편도와 일본→한국(스톱오버)→홍콩 구간은 똑같이 2만 마일(평수기)이 필요하다. 스톱오버는 발권일로부터 1년까지 가능하다.
대한항공 대구지점 이선우(41) 과장은 "과거에는 '56수요'를 아는 일반인이 거의 없었지만 최근 인터넷 등을 통해 알려지면서 문의가 점차 늘고 있다"며 "휴가 계획을 미리 확정할 수 있는 여행객들에게 인기"라고 귀띔했다.
아시아나항공에서는 일명 '한붓그리기'가 대세다. 같은 스타얼라이언스 소속 항공사들을 이용, 한국→일본→중국→한국식으로 여러 국가를 일주 형태로 여행할 때 도움이 된다. 전체 비행거리를 합산, 일괄 공제하는 방식이어서 각각의 국가를 왕복 여행할 때보다 마일리지가 덜 든다는 게 장점이다. 다만 아시아나항공을 성수기에 이용하면 추가 공제된다. 아시아나항공 대구지점 서일권(41) 과장은 "스타얼라이언스는 세계 3대 항공동맹체 가운데 가장 규모가 커서 다양한 나라를 오랜 기간 둘러보고 싶을 때 최고"라며 "인터넷 홈페이지에서 쉽게 일정과 필요마일리지를 확인할 수 있다"고 말했다.
◆마일리지 활용, 이것만은 꼭
마일리지를 모으는 방법은 크게 두 가지. 비행기 탑승과 마일리지 연계 신용카드 사용이다. 주유소'쇼핑몰'호텔 등에서 적립해주는 포인트를 항공사 마일리지로 전환하는 방법도 있다. 국내 카드사들의 경우 보통 1천500원을 쓸 때마다 1, 2마일을 적립해주고 있다. 물론 완벽한 공짜는 아니다. 마일리지 대신 할인을 해주는 카드도 많기 때문이다. 최근에는 대한항공'아시아나항공'델타항공 등의 마일리지를 구입할 수 있는 카드도 출시돼 있다.
어렵게 모은 마일리지는 어떻게 하면 효과적으로 쓸 수 있을까? 고수들은 ▷장거리 항공권의 좌석 승급 ▷장거리 무료 항공권 ▷단거리 항공권 순서로 마일리지의 효과가 극대화된다고 한다. 저비용항공사(LCC)가 많이 취항하고 있는 국내선'아시아 노선에는 마일리지를 쓰지 말고, 장거리 여행을 떠날 때 고려하라는 이야기다.
대한항공으로 100만 마일 이상을 적립, '밀리언 마일러 클럽' 회원인 김상욱(가명'45) 씨의 경우가 좋은 예다. 그는 "연간 5, 6회 이상 해외출장을 다니는데 무료 항공권은 일찍 예약하지 않으면 구하기가 쉽지 않은데다 이코노미석을 타고 10시간 이상의 비행을 하면 비즈니스에도 악영향을 끼친다"며 "좌석 승급이 현실적으로 최선의 선택"이라고 조언했다.
이 밖에 항공사와 제휴를 맺은 호텔'렌터카업체에서 마일리지를 사용할 수도 있다. 또 여행 경비를 마일리지로 대신 내는 여행상품도 나와 있지만 활용 가치는 항공권에 비해 떨어진다는 게 전문가들의 공통된 평가다.
마일리지에 소멸 시한이 있다는 사실도 간과해선 안 된다. 대부분의 항공사는 일정 기간이 지나면 마일리지를 쓸 수 없게 하고 있으며 회원 자격도 취소한다. 우수회원에게 마일리지 추가 적립 등 다양한 혜택을 주고 있는 외국 항공사 회원의 경우 등급 유지를 위해 일부러 탑승 횟수를 늘리는 경우도 있어 '마일리지 런(run)'이라는 용어까지 생겨났다.
그러나 마일리지가 항상 최고의 선택은 아니다. 항공사'신용카드사의 마일리지 마케팅이 활발해지면서 수요는 급증했지만 좌석 공급은 여전히 제한적인 탓이다. 미국에서는 특정 카드를 일정 금액 이상 사용하면 10만 마일을 한번에 제공하는 프로모션도 종종 벌어진다. 마일리지를 '할인권' 정도로 봐야 한다는 이야기가 나올 만하다.
대구 서라벌여행사 서보익(52) 대표는 "여름 휴가철이 다가오면서 해외여행 문의가 늘고 있지만 여행 형태는 자신의 취향과 형편에 맞게끔 선택해야 한다"며 "저비용 항공사 이용, 저렴한 패키지상품 등도 좋은 대안이 될 수 있다"고 조언했다.
이상헌기자 davai@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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