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문화칼럼] 설득당하기

자기주장이 너무 강한 시대다. 거리도 많아졌고, 이해관계는 더 복잡해졌다. 개인은 물론 동네 이웃, 이해집단, 행정기관 등 여러 사회 구성에서는 물론 심지어 국가 사이에도 주장과 반발이 마치 시빗거리인 양 계속되고 있다. 물론 열린 세상이니 서로 다투는 가운데 함께 발전한다고 낙관할 수 있다. 하나 달리 보면 아무리 만나서 얘기한들 귀는 막고 말만 하니, 소통은커녕 불통이 된다. 그런 경우 순수한 의도는 앞세운 명분일 뿐 큰소리쳐놔야 조금이라도 유리할 것이라는 철저한 속셈이 도사리고 있는 경우가 적지 않다. 결국 웬만한 노력과 성의가 없이는 논의를 합당하게 시작하는 것조차 어려운 것이 현실이다. 어려운 이유는 따로 있을까.

아리스토텔레스는 '설득의 기술'(Art of Persuasion)로서 세 가지 조건을 제시했다. 첫째, 증거를 배합하기(proof). 상대방에게 설득하고 싶은 내용을 논리적으로 보여줄 수 있어야 한다. 이때 일방적인 증거 제시는 곤란하고, 상관관계를 밝혀서 그 이유를 합리적으로 말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둘째, 설득하려는 자신을 믿을 수 있게 하기(credibility). 평소 자기 관리를 잘해서 그렇게 주장할 만한 자격, 즉 인품과 능력을 갖추어야 한다. 늘 신뢰와 신망을 미리 얻고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셋째, 설득당하는 사람의 마음 상태를 파악하기(a certain state of mind). 상대방을 배려하고 감정 교류에 어울리는 분위기를 잘 연출해야 한다. 동정심에 호소하든 감정이입을 잘하든 듣는 사람을 존중해서 그 마음을 움직이고 감동을 줄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렇듯 설득이 제대로 이루어지려면 이 세 가지 조건, 곧 '진'선'미'가 각각 적합해야 한다고 하였으니, 고대 그리스의 이 현인은 설득에서조차 인간이 바라는 위대한 가치를 함축해 보았던 것이다.

다만 모두가 설득하려고 주장만 하면 소통될 리 없다며 설득 자체를 비판적으로 지적할 수도 있다. 설득을 '당한다'는 표현이 주는 어감 자체부터 그리 달갑지 않은 일로 보인다. 하나 소통은 막힘 없이 서로 생각과 의도가 통하는 것이니, 소통되었다 함은 곧 서로 상대방 주장을 받아들이고 함께 움직인다는 것이다. 오히려 불통의 원인은 마치 사람을 꼬는 것처럼 자기 것만 주장하는 일방적인 태도가 대부분이다. 따라서 정당하고 적절한 설득의 실천에 의해서만이 소통이 제대로 되는 것이다. 즉 소통은 올바른 설득에서 시작된다.

게다가 설득은 상대적이고 또 상황적이다. 따라서 설득은 일관성을 유지해야 하면서도 동시에 융통성이 있어야 하는 선의의 이중성도 지닌다. 그러하니 일상생활에서 그런 조건을 갖추고 이치를 따져가며 남을 설득하기란 그리 간단한 일이 아니다. 결국 설득 또한 문화의 한 양상이 아닐지.

그런데 설득 문화가 들어서기에 걸림돌이 되는 것은 무엇일까. 결국 불통 이유인데, 현실은 무엇보다도 설득의 세 조건을 제대로 갖추지 못하는 것이 첫째이고, 더해서 기본적으로 상식이 통하지 않는 막무가내이거나 이기주의 그 자체 탓이 대부분이리라. 더하여 언행 불일치나 외모 지상주의, 과대포장도 범람한다. 하나 이러한 비상식적인 언행 때문에 정작 우리가 절실하게 필요한 소통과 설득의 문화가 좌초되어서는 곤란하다.

이제 나 자신을 위하고 건전한 설득 문화를 위해서 무슨 일이든 합리적으로 풀어내어야 하고, 평소 언행과 처신도 잘해야 하고, 무엇보다도 상대방을 이타적으로 배려해야 한다. 특히 솔선수범해야 할 리더 입장인 공공 정책에 있어서 설득의 진수를 제대로 실천해야 할 것이다. 시책 수립과 집행 과정은 물론 변화 관리에 있어서도 일관된 지속성을 보여주면서 예측 가능하게 하고 호응도 얻어서 불신을 줄여야 한다. 정당한 이유가 얼마나 큰 호응을 잘 얻는지, '2011 대구세계육상선수권대회'에서 그 뜨거웠던 시민 참여의 열정을 아직도 기억하고 있다. 좋은 설득은 불신의 극복에서 꽃핀다.

주장이 강한 사람을 외면하는 것이 능사가 아닌 것 같다. 잘 들어보되 도대체 조건에 맞지 않으면 제대로 논쟁하고 거부하자. 그리고 정말 적절하다면 공연히 겸손이니 양보니 조건을 말하지 말고 앞장서서 제대로 설득을 당하자. 그게 전부를 위해 이득이다. 설득당하는 기회가 많으면 좋겠다.

김영대/영남대 교수· 건축학부 ydkim@yn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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