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항일 의병장 이강년 선생 묘소 고향 문경 갈까?

문경시·후손들 이장 추진 "연고 없는 상주에 있어 기념관·생가터로 옮겨

상주시 화북면 입석리에 있는 운강 이강년 선생 묘소와 묘소 입구를 알리는 비석. 고도현기자
상주시 화북면 입석리에 있는 운강 이강년 선생 묘소와 묘소 입구를 알리는 비석. 고도현기자

문경시가 일제강점기 대표적 항일 의병대장이었던 운강 이강년(1858~1908) 선생의 묘소 이장을 후손들과 함께 추진하자, 상주시와 상주지역 유림들이 반발하고 있다.

이 선생은 문경 출신 의병장이기 때문에 기념관과 사당, 생가가 모두 문경시 가은읍 완장리 96에 있지만, 묘소는 연고가 없는 20여㎞ 떨어진 상주시 화북면 입석리에 있다.

상주'문경시 등에 따르면 전주 이씨로 효령대군의 19세손인 선생은 1908년 일본군에 끌려가 서울 서대문 형무소에서 교수형을 당한 뒤 유언에 따라 서울 방배동에 있는 효령대군의 묘 옆에 시신이 매장됐다. 당시 독립투사들의 묘소는 일본군에 의해 마구 파헤쳐지는 사례가 빈번했고, 후손들 역시 수배령이 떨어져 몸을 피해야 될 상황이었다.

이에 상주 화북 유림들이 나서 일제의 감시를 피해 선생의 시신을 수습했으며, 충북 제천으로 몰래 옮겨 가매장을 했다가 2년 후인 1910년 지금의 상주 입석리 묘소로 모셔왔다는 것. 특히 상주 유림들은 이 선생을 정신적인 지주로 여기고 계를 조직해 100년 이상 대를 이어 묘소를 관리해 왔으며, 지금도 이 지역 유림단체인 명륜회(회장 이형규)가 관리해오고 있다.

하지만 운강 이강년기념사업회와 선생의 증손자 이종규(76'미국 캘리포니아주), 고손자 이성학(50'중국 산동성) 씨 등 후손들은 최근 3차례 상주시와 명륜회 등을 방문해 선생의 묘소를 문경기념관으로 이장하는 데 협조해 줄 것을 요청했다. 기념사업회와 후손들은 상주 유림들이 선생의 시신을 수습해 지금까지 관리해 준 것은 너무 감사하지만, 선생의 고향이 문경이고, 가족들도 문경에 묘소가 있는데다, 문경기념관을 찾아오는 방문자들이 생가와 유물은 있는데 묘소가 없어 아쉬움을 토로하고 있다며 이 같은 요청을 한 것.

하지만 상주시와 명륜회 등은 100년이 지난 시점에서 묘소 이장은 안 된다는 입장이다.

이들은 "선생의 묘소는 1973년부터 3'1절을 기해 제향 행사를 해오고 있으며 1985년에는 이곳에 독립운동 기념비를 건립해 정부로부터 현충시설로 지정받았다"며 "100년이 지난 지금까지 아무 말 않다가 올해 들어 갑자기 이장을 해달라는 것은 이해할 수 없으며 협조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상주시 관계자는 오히려 "문경기념관에는 가묘를 만들고, 묘지는 상주 유림들이 목숨을 걸고 시신을 수습한 사연 등으로 인해 상주 화북에 있다는 설명을 기념관 입구 안내문에 넣어 줄 것"을 요구했다.

문경시 관계자는 "지금까지 묘소를 관리해 온 상주시와 상주 유림들의 입장을 존중한다. 하지만 선생의 묘소와 기념관, 생가, 유물이 같은 장소에 있는 것이 바람직하지 않겠느냐"며 "상주시의 협조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상주 문경'고도현기자 dory@msnet.co.kr

◆의병대장 운강 이강년은?

1895년 명성황후 시해사건과 단발령을 계기로 1896년 가산을 털어 문경'상주에서 의병을 일으켰다. 1907년 정미의병 때는 고종의 비밀칙령을 받아 도창의대장으로 추대돼 문경 갈평'강원도 백담사 전투를 비롯해 안동, 봉화 등에서 대승을 거뒀다.

1908년 7월 충북 제천 작성전투에서 붙잡혀 그해 10월 서대문형무소에서 순국했다. 1962년 건국훈장 대한민국장이 추서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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