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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동순의 가요 이야기] 기생출신 가수 왕수복(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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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초로 민요를 성악발성으로…분단 후 북한서 활동

왕수복이 불렀던 그 많은 곡들 가운데서 가수의 목소리를 직접 들어볼 수 있는 '그리운 강남'이란 노래는 우리의 귀에 아직도 여전히 익은 작품이지요.

정이월 다 가고 삼월이라네

강남 갔던 제비가 돌아오면은

이 땅에도 또다시 봄이 온다네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아리랑 강남에 어서 가세

당시 왕수복의 음반은 한 장에 1원50전이었다고 합니다. 1935년, 당시 최고의 인기잡지였던 '삼천리'에서 레코드가수 인기투표를 실시했었는데, 총 여덟 차례나 실시했던 이 투표에서 왕수복은 1천903표를 얻어서 단연 1위를 기록했습니다.

'만인 절찬''유행가의 여왕'이란 칭호와 함께 엄청난 인기를 한 몸에 받으며 왕수복은 마냥 행복하기만 했을까요? 하지만 그녀의 가슴 속은 항상 자신을 따라다니는 '기생 출신'이란 꼬리표가 항상 짙은 그늘로 드리워졌던 것 같습니다. 그리하여 왕수복은 그동안 마음속에서 은밀하게 추진해오던 어떤 결정을 내리게 됩니다. 그것은 첫째로 기생 신분의 소속을 평양권번에 반납하는 일이었고, 둘째로는 서양음악을 제대로 공부하기 위해 일본유학을 떠나는 것이었습니다. 왕수복의 나이 23살, 그때까지도 서울의 레코드 회사들은 여전히 왕수복에게 끈질긴 취입 제의를 해왔지요. 그러나 왕수복은 모든 제의와 권유를 거절하고, 일본으로 유학의 길을 떠났습니다. 유학 중에는 대학에서 서양의 성악론을 공부하여 조선의 전통과 어떻게 결합시킬 수 있을까 고민했습니다.

일본 도쿄에서 '무용 음악의 밤' 공연이 열렸을 때 왕수복은 우리 겨레의 민요 '아리랑'을 서양식 창법으로 노래하여 화제가 되었습니다. 이것은 우리 민요를 성악발성으로 부른 최초의 시도였습니다. 1939년 왕수복은 한 일본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최승희 씨가 조선무용을 살린 것처럼 나는 조선의 민요를 많이 노래하고 싶습니다." 우리 민요의 세계화를 위해 왕수복은 자신이 누리던 모든 인기와 보장된 길을 과감하게 버리고 고독한 경로를 선택한 것이지요.

이런 왕수복의 삶에서 그녀의 포부를 진심으로 이해하고 사랑하는 연인이 나타났습니다. 그는 바로 소설 '메밀꽃 필 무렵'의 작가 이효석이었습니다. 하지만 그들의 사랑은 너무나 짧고 덧없는 봄눈이었습니다. 왕수복의 단호하고도 엄정한 삶은 일제 말 암흑기에서 특히 밤하늘의 별처럼 빛을 반짝이고 있습니다. 조선민요도 일본어로 부르라고 강요받던 그 시절, 왕수복은 친일 음악인이 되지 않으려고 단호하게 음악예술계를 은퇴합니다. 이런 결정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해방 되던 해에 왕수복의 나이는 스물 아홉, 그녀의 앞길에 다시 새로운 연인이 나타났습니다. 경제학도 김광진. 그러나 그는 골수 사회주의자였고, 한때 여류시인 노천명의 연인이기도 했습니다. 두 사람은 함께 고향인 평양으로 돌아가 결혼에 골인합니다. 분단 이후 왕수복은 북한 음악계에서 중요한 활동을 펼치게 됩니다. 평양음악대학에서 민요의 현대화와 보급에 애쓰던 왕수복이 회갑을 맞이하게 되자 왕수복의 노래를 좋아하던 김일성이 직접 회갑연을 열어주었다고 합니다. 그녀가 칠순이 되었을 때 김정일이 다시 잔치와 특별공연을 열어주었습니다. 팔순 때에도 제자들과 함께 무대와 올라 노래를 불렀다고 북한의 보도는 전하고 있습니다.

가요를 통하여 우리 민족의 긍지와 자부심을 살리고 전통적 정서를 꽃피우려 애를 썼던 왕수복의 삶은 분단시대 북한에서도 여전히 그 빛이 퇴색하지 아니합니다. 2003년 6월, 왕수복은 86세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영남대 국문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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