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이웃사랑] 뇌경색 남편·폐결핵 아들 둔 조복조 씨

조복조(75) 씨가 폐결핵으로 온몸이 퉁퉁 부은 채 중환자실에 누워 있는 아들 김규기(52) 씨를 간호하면서 참았던 울음을 터트리고 있다. 우태욱기자 woo@msnet.co.kr
조복조(75) 씨가 폐결핵으로 온몸이 퉁퉁 부은 채 중환자실에 누워 있는 아들 김규기(52) 씨를 간호하면서 참았던 울음을 터트리고 있다. 우태욱기자 woo@msnet.co.kr

조복조(75'여'경북 고령군 성산면) 씨는 온몸이 퉁퉁 부어 있는 아들 김규기(52) 씨를 볼 때마다 눈물이 난다. 병원 중환자실에 들어오기 넉 달 전만 해도 아들 김 씨의 몸은 보기 안쓰러울 정도로 말라있었다. 하지만 치료를 받으면서 팔, 다리뿐만 아니라 배까지 불룩하게 부어올랐다. 조 씨는 퉁퉁 부어 허옇게 각질이 일어난 아들의 손이 안쓰러워 꼭 잡아보지만 대신 아파 줄 수는 없어 가슴이 아프다.

◆불길한 예감은 왜 이리 잘 들어맞는지…

조 씨의 가족은 남편 김완석(79) 씨와 2남 2녀의 자녀 등 모두 6명이다. 결혼할 때만 해도 부부에게 있는 재산이라고는 다 쓰러져가는 집 한 채와 마을 근처 산에 돌만 가득해 농사를 지을 수 없는 밭이 전부였다. 부부는 남의 땅을 빌려 농사를 지으며 생계를 유지했다.

자식들은 돈을 벌러 또는 결혼을 해 여기저기로 떠나고 조 씨 부부 옆에는 장남 김 씨만 남아 함께 농사를 지으며 살았다. 김 씨도 32세 때 신붓감을 찾으러 중국으로 선을 보러 갔었는데 그만 늑막염에 걸린 채 돌아왔다.

"배필을 찾으러 갔다가 배필과 함께 병도 얻어온 거지요. 늑막염이 얼마나 심한지 알아보려고 X-레이를 찍었는데 까맣게 찍혀야 할 폐 부분이 하얗게 나와 있더군요. 결혼도 하기 전에 잘못되는 건 아닌가 걱정이 태산 같았습니다."

김 씨는 다행히 늑막에 찬 물을 빼내고 치료를 받은 뒤 농사를 지을 정도로 건강을 회복했다. 게다가 중국에 갔을 때 만난 한 중국동포 여성과 결혼해 조 씨는 이제 큰 걱정 없이 행복하게 살면 될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10년 전 김 씨가 이혼하고 지난해 몸져눕자 그 바람은 무너져 버렸다. 김 씨는 갑자기 찾아온 극도의 피로감과 함께 힘없이 누워 지내는 날들이 계속됐다. 김 씨의 몸 상태가 악화되면서 지난해는 농사일을 거의 하지 못했다. 조 씨는 아들이 병원에 가지 않고 집에서 누워만 있자 "제발 병원에 가라"고 채근했다. 결국 김 씨는 올 1월 종합병원에 갔고, 심각한 폐결핵이라는 청천벽력 같은 진단을 받았다. 왼쪽 폐는 완전히 망가졌고 오른쪽 폐도 제 기능을 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 김 씨는 그 길로 바로 중환자실로 옮겨졌다.

"계속 병원에 가라고 해도 말을 안 듣더군요. 왜 그러냐고 따지니 '병원에 가면 뭔가 큰 병에 걸려서 치료하기 어렵다는 말을 들을까 봐 무서워서'라더군요. 불길한 예감은 왜 이다지도 잘 맞는 것인지…."

◆남편마저…

김 씨가 입원하면서 조 씨는 매일 고령과 대구를 오가면서 아들을 간호했다. 이혼했기 때문에 돌봐 줄 사람이 없는데다 자녀는 학생이라 간호하기에 무리였다.

조 씨가 아들 김 씨의 병구완에 한창 매달리고 있던 3월 중순, 둘째 손녀로부터 전화가 왔다. 손녀의 목소리는 다급했다.

"할머니, 할아버지가 화장실에 가다가 쓰러졌는데 일어나질 못하세요. 어떡해요?"

자정이 넘은 시각에 걸려온 손녀의 전화에 조 씨는 머리가 아득해졌다. 당장 집으로 갈 수 있는 상황도 아니었다. 조 씨는 일단 119에 연락해 구급차로 병원으로 옮기라고 시켰다. 병원에서는 뇌경색으로 몸 왼쪽에 마비가 왔고, 부정맥도 있어 바로 수술해야 한다고 했다.

다행히 수술이 잘돼 생명에는 지장이 없었다. 병원에서는 마비 증상 때문에 회복을 위해 물리치료와 재활치료를 해야 한다고 했다. 하지만 남편은 빨리 퇴원하자고 했다. 자신에게 들어갈 병원비와 입원한 기간 동안 홀로 집을 지키고 있을 손녀 걱정 때문이었다.

"몸이 어느 정도 나아지면서 남편은 계속 병원을 나가자고 했어요. 500만원이나 되는 병원비를 구할 수도 없고 혼자 남아 있는 손녀는 어떡할 거냐는 거였죠. 병원에서 2주는 더 치료받아야 한다는 것을 끝끝내 나가겠다고 우겨 남편은 쓰러진 지 한 달 만에 병원 문을 나섰습니다."

조 씨는 지팡이를 짚어도 일어나 걷기 힘들어하는 남편 김 씨를 남겨두고 매일 아들이 입원한 병원으로 향한다. 하지만 그러면서도 늘 불안하다. 자칫 일어나다 넘어져 다치지나 않을지, 손녀도 늦는데 혼자 잘 있을지 늘 걱정이다.

◆두 손녀와 병원비가 제일 걱정

조 씨의 큰 손녀는 올해 고3이다. 구미에 있는 한 특성화고등학교에서 기숙사 생활을 하면서 공부하고 있다. 미술에 재능이 있던 큰 손녀는 중학교 때 경상북도의 한 미술대회에 나가 금상을 타 오는 등 미술 분야에 재능을 보였다. 하지만 집안 사정이 너무 어려운 탓에 재능을 키워줄 만한 여력이 없어 큰 손녀의 꿈은 좌절될 수밖에 없었다.

올해 중 3인 둘째 손녀는 집에 혼자 있는 경우가 많다. 둘째 손녀는 수업과 방과후 활동 등으로 오후 7시가 다 돼서야 집으로 돌아온다. 버스를 타고 걷고 해서 집으로 돌아오는 시간은 약 45분. 걸어서 오가는 것도 불편하고 힘들지만 무엇보다 돌아오는 길에 무슨 험한 일을 당하지나 않을까 늘 걱정이다. 사정을 들은 인근 파출소에서 경찰들이 하굣길에 동행해 주기도 하지만, 밤에 둘째 손녀가 집에 있다고 생각하면 마음이 놓이지 않는다.

아들 김 씨의 병원비도 걱정이다. 남편의 병원비 500만원은 군청의 긴급의료지원비 300만원과 조 씨의 지인 및 자녀가 십시일반 해서 모아준 돈으로 해결했다. 하지만 아들의 병원비 1천400만원은 도무지 마련할 데가 없다. 가지고 있는 땅은 팔려고 내놔도 워낙 좋지 않은 땅이라 팔리지도 않고, 그렇다고 가족들이 살아야 하는 집을 팔 수도 없는 형편이다. 기초생활수급자 지정을 받을 수 있는지 면사무소나 군청에 물어봐도 집과 땅이 남편 명의로 돼 있어 이마저도 불가하다는 대답을 들은 상태다.

조 씨는 중환자실에 누워 있는 아들을 보며 이곳에서 살아서 걸어나올 수 있을까 하는 걱정에 목이 멘다.

"중환자실에 들어갈 때는 바짝 치료해서 빨리 나올 줄 알았지요. 그런데 목에 구멍을 뚫고 관을 집어넣고 하더니 이렇게 오래 있을 줄 몰랐어요. 한번은 눈짓으로 종이와 볼펜을 달라고 하더니 겨우겨우 움직여 '난 죽을 병에 걸린 게 아니다'라고 쓰더군요. 살려는 의지가 저렇게 강한데 몸 상태는 점점 더 나빠지고 있으니 가슴이 찢어집니다."

이화섭기자 lhsskf@msnet.co.kr

※이웃사랑 계좌는 '069-05-024143-008(대구은행), 700039-02-532604(우체국) ㈜매일신문사'입니다.

※매일신문'대한적십자사 공동기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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