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강성률의 줌 인] '고령화 가족'이 던지는 화두, 우리에게 가족은?

송해성 감독은 내면의 상처를 세심하게 다룰 줄 아는 감독이다.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의 상처 입은 여성과 사형수의 대화, '역도산'의 재일조선인의 상처와 아픔, '파이란'의 3류 깡패의 순정과 상처가 스크린에 오롯이 살아있었다. 그 때문에 그의 영화를 보면 사회성 짙은 내용이 아님에도 인물들의 아픔에 동화되어 사회성의 테두리 안에서 받아들이게 된다. 의도하지 않았든 의도했든 송해성 영화의 힘은 일차적으로 여기서 나온다. 다시 말하면, 장르 컨벤션 안에서 캐릭터의 아픔을 잘 녹여내 흡입력 강한 영화를 만들었다는 것이다.

송해성이 천명관의 소설 '고령화가족'을 영화화했다. '고래'를 통해 최고의 상상력이라는 평가를 받았던 천명관의 소설을 송해성이 영화화할 때 어떤 조합이 이루어질지 궁금해지는 것은 당연지사. 천명관의 상상력을 송해성이 내면의 상처를 지닌 인물의 사연으로 어떻게 장르화시킬 것인지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다행스럽게도 결과는 합격점 이상이다. 초반의 코믹은 생각보다 세고, 후반의 드라마는 무난하게 연결된다.

◆뜨거운 소재, 가족=송해성은 지금 우리 사회의 가장 뜨거운 소재 가운데 하나가 가족이라는 것을 알고 있는 것 같다.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하나가 되어 정서적 안정을 누릴 수 있는 공간을 만들어야 하는데, 지금 우리 사회는 그렇지 못하다. 가족이라는 이름 아래 간섭이라는 폭력이 횡행하고, 경제적 대물림으로 빈익빈부익부가 재생되고 있으며, 무엇보다 가부장적 남성에 의한 수직 구조가 여전히 지속되고 있다. 이 모든 가족의 문제가 사회로 확대되어 수직적 가부장 문화가 회사에서, 종교에서, 정치에서 그대로 이루어진다. 해서 가족이 먼저 변하지 않으면 사회는 절대 변하지 않는다. 지독한 '가족 이기주의'에 빠져 있으면서 사회가 이타적이기를 바란다면 지나친 욕심일 뿐이다.

그래서 가족의 이런 문제점에 일찍 눈을 뜬 여러 감독은 자신만의 시각으로 가족을 해부하고 해체했다. 대부분은 가부장을 살해하거나 새로운 가족을 만들어 나갔다. 임상수는 '바람난 가족'에서 가부장을 죽여 가족 구성원을 자유롭게 했고, 정윤철은 '좋지 아니한가?'에서 이제는 나약해져 버린 가부장을 위로하면서 함께 아픔을 공유하도록 했으며, 김태용은 '가족의 탄생'에서 비혈연 가족을 탄생시켜 혈연적 억압이 없는 새로운 가족을 예찬했고, 정윤수는 '아내가 결혼했다'에서 일처다부제를 옹호하면서 여성 중심의 사회로 나가기를 고대했다.

◆캥거루족, 고령화가족=지금 송해성이 주목하는 가족의 문제는 신자유주의 이후 등장한 캥거루족이다. 나이는 충분히 먹었지만 경제적 능력이 없어 독립하지 못한 채 부모에게 얹혀살고 있는 자식들. 영화 제목에서 알 수 있는 것처럼 고령화된 가족인 것이다. 철없는 백수인 첫째, 하는 일은 되지 않고 허세만 강한 둘째, 두 번이나 이혼하고 중학생 딸까지 데리고 들어온 막내 여동생 등은 모두 캥거루족이다. 이들은 사회에 나갔다가 상처만 입은 채 다시 어머니가 있는 집으로 들어온다.

삼 남매는 만나면 으르렁거리며 싸우지만, 어머니만은 이들을 감싸 안고 먹이고 또 먹인다. 영화 속에는 어머니가 자식들에게 밥을 해 먹이는 장면이 계속해서 등장한다. 어머니는 먹지 않고 자식들에게만 먹이고 또 먹인다. 그 어머니의 품에서 자식들은 새롭게 출발할 수 있는 에너지를 얻는다. 송해성이 "'고령화가족'은 엄마라는 존재, 즉 집으로 돌아감으로써 자신을 재충전하고 또 다른 시작을 맞이할 수 있다는 희망을 얻게 되는 삼 남매의 이야기"라고 기획 의도를 말한 것은 허언이 아니었다.

어머니의 이런 자세가 소중한 것은 세상 그 어디에도 자식들의 상처를 치유할 곳이 없기 때문이다. 오직 어머니의 넓은 품 외에는 없다. 어머니의 넓은 품에는 자신이 낳은 자식만 포함되는 것이 아니다. 남편의 전처가 데리고 온 비혈연 아들도 포함되고, 자신이 바람을 피워 낳은 딸도 포함된다. 이런 점에서 '고령화가족'은 '가족의 탄생'과 만나는 지점이 있다. 게다가 가부장이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 가정에서 온 가족이 함께 위로하며 산다는 점에서 '좋지 아니한가?'와도 닿아 있다. 즉 송해성은 '비혈연의 콩가루 가족'의 이야기를 통해 신자유주의 시대에 상처받은 이들의 이야기를 전하고 있다.

◆가족이란 무엇인가=원론으로 돌아가자. 우리에게 가족이란 무엇인가? 가족이란 한 지붕 아래에서 아옹다옹 다투며 함께 살아가는 사람들이다. 그들이 혈연적으로 하나의 핏줄로만 연결되어 있을 필요는 없다. 핏줄이라는 이름하에 행해진 그 숱한 폭력의 기록을 우리는 고스란히 지니고 있지 않은가?

다만 함께 생활하면서 아픔을 공유하고 슬픔을 나누면 되는 것이다. '고령화가족'에는 그 '식구'(食口)의 의미가 진솔하게 담겨 있다. 만나면 싸우기만 하지만, 외부의 적과 만났을 때는 온 가족이 똘똘 뭉쳐 함께 대항하는 공동체 의식도 있다. 경제적으로 힘들고 정서적으로 지친 지금의 이 시대에, 이 영화가 지니고 있는 분명한 미덕이 있다. 나는 이 미덕을 지지하지 않을 수 없다.

 영화평론가'광운대 교수 rosebud70@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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