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2월 초 대구 한 회사에 입사한 A(27'여) 씨는 직장 상사의 성희롱을 견디지 못하고 이달 초 사표를 냈다. A씨는 지난달부터 직장 상사인 30대 후반의 과장과 둘이서 출장을 다니는 날이 많아졌다. 과장은 운전을 하면서 옆자리에 앉은 A씨의 치맛자락을 손으로 툭툭 쳤다. A씨는 과장이 조금 짓궂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과장의 성희롱은 노골적으로 변했다. 그는 "여자들이 검은 스타킹을 신는 것은 남자를 유혹하는 것"이라며 치마 아래 다리를 가리켰고, 출장을 갔다가 밤늦게 돌아온 어느 날 "술을 같이 먹자"고 요구했다.
날이 갈수록 과장의 입은 거칠어졌다. 둘이 있을 때 "첫 경험을 언제 했느냐. 남자와 최근에 잔 적이 없느냐. 어떤 체위를 좋아하느냐"고 캐물었다. 수치심을 느낀 A씨는 다른 직원이나 경찰에게 알릴까 생각했지만 이내 포기했다. A씨는 "신고를 했다가 소문이 퍼지면 얼굴을 들고 다니기가 어렵고 다른 직장을 구하기도 어려워지기 때문에 사직서를 내고 다른 직장으로 옮겼다"고 했다.
여성들이 직장 내에서 갑(甲) 지위를 가진 남성들로부터 성희롱을 당하는 일이 사라지지 않고 있다. 피해 여성들은 혼자서 참거나 수치심을 견디지 못해 스스로 직장을 그만두는 등 성희롱에 무방비로 노출돼 있다.
◆엉덩이 만지고 눈에 입술 대고
B(29'여) 씨는 한 휴대전화 영업회사에서 사무업무를 담당했다. 같은 회사 영업팀장은 지난해 10월 회식자리에서 B씨의 눈에 입술을 대고 엉덩이를 만졌다. 또 "모텔로 가자"고 요구하기도 했다. B씨는 동료 직원과 팀장에 대한 욕설을 담은 메시지를 주고받았다. 이를 본 사장은 직원들 간에 불화를 일으킨다는 이유로 B씨와 동료 직원을 모두 해고했다.
외주업체의 비정규직 텔레마케터로 일한 C(31'여) 씨는 지난해 연말 회식 중 노래방에서 블루스를 출 것을 강요받았다. 술에 취한 남자 직원들은 C씨를 억지로 끌어안는 등 신체 접촉을 했다. 수치심을 느낀 C씨는 회식 이후 자신과 춤을 추거나 이를 부추긴 남자 직원들을 흉본 것이 빌미가 돼 결국 직장을 그만두게 됐다.
한 제조업체 사무직원으로 근무했던 D(32'여) 씨는 같은 회사 기술영업부 이사에게서 언어 성희롱을 당했다. 이사는 2011년 5월부터 같은 해 10월까지 사무실 등에서 검정 민소매 옷 위에 니트를 입은 D씨에게 "앞가슴이 다 보인다. 이렇게 비 오는 날은 모텔에 가야 하는데"라며 성적 굴욕감을 주었다. 결국, D씨는 회사를 그만두고 정신과 진료를 받았다.
10여 명이 근무하는 작은 종합건설회사에 경리사원으로 일하던 E(30'여) 씨는 전무에게서 성희롱을 당했다. 지난해 봄 퇴근 이후 회사 근처 식당에서 회사 동료와 식사를 하던 중 E씨가 식당 직원에게 앞치마를 요구하자 전무는 두 손으로 자기 가슴을 만지는 시늉을 하면서 "가슴이 작아서 음식물이 묻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움츠린 직장 남성들
최근 윤창중 전 청와대 대변인의 성추행 의혹 논란이 일면서 직장인 남성들은 행동과 말이 자칫 성희롱으로 보이지 않을까 잔뜩 몸을 움츠리는 분위기도 나타나고 있다.
대구의 한 금융회사에서 차장으로 근무하는 강모(40) 씨는 매년 직장 내 성희롱을 예방하는 교육을 받아 왔지만, 요즘은 특히 여직원 앞에서 말 한마디 하기가 조심스럽다. 강 씨는 "최근 회식을 할 때 취한 상태에서 서로 웃자고 야한 농담을 막 꺼내려다가 아차 하며 참았다"며 "업무 특성상 여직원이 60% 이상을 차지하기 때문에 요즘 분위기에 잘못 실수했다가는 인사 징계는 물론 회사에서 거의 매장되다시피 한다"고 했다.
공공기관에 근무하는 한모(46) 팀장은 "계단을 오를 때 여직원이 앞서 가면서 손으로 치마 매무시를 고치는 것을 보면 내가 괜히 밝히는 사람처럼 보일까 걱정돼 늦춰가거나 아예 앞질러간다"며 "사무실 안에서도 여직원들의 짧아진 옷차림을 보다가 눈이 마주치면 괜히 겸연쩍고 불편해진다"고 했다.
대구여성의 전화 배윤주 대표는 "성희롱은 개인의 인권 문제를 넘어 직장 내 권력과 힘의 문제 때문에 벌어지고 있다"며 "사업주는 성희롱이 전체 직장 분위기를 망가뜨리고 생산력을 떨어뜨린다는 인식을 갖고 사업장 내에 고충처리 기구를 만들고 노동조합 등을 통해 해결할 수 있는 소통 창구를 열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서광호기자 kozmo@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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