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미정(가명'56'여) 씨는 요즘 아들 생각만 하면 가슴이 찢어진다. 아들 이영호(가명'31) 씨의 결혼이 깨진 이유가 정 씨 자신 때문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아들의 상견례를 앞둔 지난해 12월, 정 씨는 집에서 피를 토하며 쓰러졌다. 깜짝 놀란 정 씨의 딸 이효림(가명'25) 씨는 맨발로 뛰쳐나가 집주인에게 도움을 청했고 택시를 불러 급히 대구의 한 종합병원 응급실로 가 겨우 목숨을 건질 수 있었다.
이 바람에 상견례는 무산됐고, 아들은 간경화를 앓고 있는 어머니를 모시는 문제 등으로 여자 친구와 다투는 일이 잦아지더니 둘은 결국 헤어졌다.
"내가 못나서 우리 영호와 효림이가 너무 많이 고생하네요. 둘 다 '돈 많이 벌어서 어머니 모시고 살 거예요'라고 말하는데, 그 말을 들을 때마다 가슴이 얼마나 아픈지…."
◆술로 버텨야 했던 날들
정 씨는 지금 간경화와 이에 따른 합병증에 시달리고 있다. 정 씨가 지난해 피를 토한 것도 간경화 합병증의 하나로 식도의 혈관이 부풀어 터지는 식도정맥류 때문이었다. 피를 토한 것은 이번뿐이 아니다. 2007년 간경화 판정을 받은 뒤 4번이나 된다. 그때마다 정 씨는 사경을 헤매다 겨우 회복하곤 했다.
정 씨가 간경화에 걸린 이유는 술 때문이다. 1990년대 후반 정 씨 부부가 모든 걸 걸고 개업한 횟집이 장사가 잘 안되면서 부부 사이에 불화가 생겼다. 갈등은 가정폭력, 별거로 이어졌고 결국 2004년 이혼하게 됐다. 그러는 동안 힘든 정 씨를 달래줄 수 있었던 건 술뿐이었다. 남편과 싸우고 나서 한두 잔씩 마시던 술은 마침내 정 씨의 건강을 갉아먹기 시작했다.
"남편과 하던 횟집이 망하고 나서 안 해본 일이 없어요. 목욕탕 청소, 식당 설거지 등 자식들을 키우기 위해 뭐라도 해야 했어요. 그때부터 소주 한 잔, 두 잔 마시던 게 결국 이렇게 됐네요."
2007년 간경화 판정을 받을 때만 해도 정 씨는 자신의 몸이 얼마만큼 안 좋은지 인식하지 못했다. 하지만 이듬해 갑자기 피를 토하면서 병의 심각성을 알게 됐다. 특히 간경화 합병증 중 식도정맥류는 정 씨의 목숨을 위협할 정도였다.
"지난해 12월 같은 경우는 피를 너무 많이 토해 과다출혈로 쇼크사가 올 뻔했대요. 병원에서는 식도에 혈관이 여덟 군데가 터졌는데, 터진 부분을 묶어도 식도가 굳어져 제 기능을 하지 못할 수도 있다고 하더군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그저 답답할 따름입니다."
◆"얘들아, 미안하다…."
정 씨는 지금 딸 효림 씨와 함께 살고 있다. 아들 영호 씨는 서울에 있는 한 회사에 취직해 명절 때나 겨우 얼굴을 볼 수 있다. 효림 씨는 고등학교 1학년 때 학교를 자퇴한 뒤 아르바이트를 전전하다 지금은 한 통신사 대리점에서 일하고 있다. 효림 씨가 잘 다니던 고등학교를 그만둔 이유는 가족의 힘든 생계를 두고 볼 수 없어서였다. 정 씨는 가난 때문에 학업까지 포기한 딸을 볼 때마다 자신의 탓인 것만 같아 마음이 저민다.
"고등학교 다닐 때 반에서 3등까지 했던 아이였어요. 그만큼 공부에 재능이 있는 아이였는데 못난 부모 만나 인생이 힘들어진 것 같아 마음이 아파요. 나 때문에 공부를 접고 일하는 모습을 보면 '내가 저 똑똑한 아이의 앞길을 막았구나' 하는 생각에 가슴이 찢어집니다."
아들 영호 씨는 고등학교 때부터 집을 나와 학교 근처에서 자취하며 공부와 아르바이트를 병행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자마자 군대에 갔고, 제대 후에는 곧장 서울로 가서 취직을 했다. 이 때문에 한동안 연락과 만남이 뜸했지만 정 씨가 아프기 시작하면서 영호 씨는 명절 때마다 어머니를 찾아왔고 병원비 대부분도 부담했다. 영호 씨가 빚을 2천만원이나 지게 된 것과 병원비를 해결할 때 카드 돌려막기로 겨우 해결했다는 사실은 나중에야 알게 됐다.
정 씨는 아들, 딸이 자신의 병원비를 벌기 위해 힘들게 일하는 모습을 볼 때마다 눈물이 쏟아진다.
"모든 걸 내려놓고 내가 먼저 세상을 떠나 버리면 남은 자식들이 차라리 편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한 적 있어요. 요즘은 하늘에 이렇게 빌고 있어요. '만약 내가 간 이식을 받고 건강을 되찾는다면 남은 인생은 무조건 자식을 위해 살겠노라'고."
◆간 이식, 그러나…
현재 정 씨의 간경화를 치료할 수 있는 방법은 간 이식밖에 없다. 다행히 효림 씨가 기증자로 적합하다는 판정이 나와 정 씨 가족은 희망을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이들 모녀는 '예치금만 2천만원'이라는 간 이식 비용을 들은 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 채 한숨만 쉬고 있다.
효림 씨는 어머니의 간 이식 수술을 위해 할 수 있는 모든 돈을 모았다. 그러나 400만원이 전부였다. 모아둔 돈이 더 있었지만 집 보증금으로 이미 써버렸다. 군청에 도움을 요청해 봤지만 정 씨에게 지원해 줄 수 있는 것은 차상위계층 지정을 통한 보험 적용 의료비 일부 감면 정도밖에 없었다. 오빠 영호 씨에게 도움을 요청해볼까 생각해 봤지만 영호 씨도 자신의 빚 2천만원을 이제 막 갚은 상태라 모아둔 돈이 없었다. 은행에서 받을 수 있는 대출금도 1천만원이 최대였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정 씨는 아픈 몸을 이끌고 지역자활센터에서 청소 일을 하며 돈을 벌고 있다. 정 씨는 일을 할 수 없는 상태지만 자신 때문에 고생하는 자식들을 보면 가만히 앉아있을 수 없다며 기어이 일을 나간다.
정 씨는 며칠 전 딸이 흘린 눈물을 잊지 못한다.
"며칠 전에 베개 없이 누워 있는데 딸이 소스라치게 놀라더군요. 왜 그러냐고 물어봤더니 '엄마가 또 쓰러진 줄 알았어'라고 했어요. 지난겨울에 쓰러지고 나니 딸이 제가 조금만 힘들어해도 걱정을 많이 해요. 제가 '나 괜찮으니 걱정말라'고 다독였더니 눈물을 뚝뚝 흘리더군요. 마음이 너무 아팠습니다."
이화섭기자 lhsskf@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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