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싱싱한 파파야, 수입한 줄 알았더니 "어? 안동산"

경북내륙까지 북상한 열대과일

제주도 특산품으로 알려진 한라봉은 남해안을 거쳐 경주까지 재배 지역이 확대됐다. 경주 천북면 꿈자람농원의 이상환 대표는 2011년부터 한라봉을 출하하고 있다.
제주도 특산품으로 알려진 한라봉은 남해안을 거쳐 경주까지 재배 지역이 확대됐다. 경주 천북면 꿈자람농원의 이상환 대표는 2011년부터 한라봉을 출하하고 있다.
대표적인 열대 과일로 꼽히는 파파야는 경북 안동에서도 노지 재배가 가능하다. 황순곤
대표적인 열대 과일로 꼽히는 파파야는 경북 안동에서도 노지 재배가 가능하다. 황순곤 '안동 파파야 농장' 대표는 파파야가 관상용으로도 적합해 판매가 늘어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경북은 국내 대표적인 과일 생산지다. 2011년 생산량 기준으로 사과(63%), 복숭아(52%), 포도(49%), 자두(85%), 떫은감(56%) 등이 전국 1위다. 과수 재배 면적도 16만2천㏊가 넘는다.

그런 경북의 들판에 최근 '희한한' 녀석들이 등장했다. 이름조차 생소한 열대 과일인 파파야(papaya)는 안동에서 무럭무럭 자라고 있고, 경주에서는 한라봉이 출하되고 있다. 언젠가는 이런 녀석들이 사과 같은 터줏대감들을 제치고 '경북 특산품'의 타이틀을 차지할지도 모를 일이다.

◆'천사의 열매' 파파야, 안동 상륙

비가 온 뒤라 날씨가 꽤 쌀쌀했던 29일 오후 경북 안동시 와룡면의 한 농장. 고추밭 한쪽에 처음 보는 식물들이 심어져 있었다. 콜럼버스가 신대륙에서 맛본 뒤 달콤한 향에 반해 '천사의 열매'라고 불렀다는 파파야, 마트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몽키바나나, 가지에 열매가 열린 모습이 용이 여의주를 물고 있는 형상과 닮았다고 하여 붙여진 용과(龍果) 등이다. 모두 동남아처럼 고온다습한 지역에서 재배되는 열대 과일들이다.

이 과실수들은 고추 묘목처럼 싹을 틔워 5월 중순에 밭으로 옮겨 심었다. 파파야의 경우 오는 9월쯤이면 열매가 맥주컵만 한 크기로 자라 시장에 내놓을 수 있게 된다. 완숙되기 전의 '그린 파파야'는 다문화가정 등에서 식재료로 주로 쓰인다. 이 농장에서는 지난해 200㎏ 정도를 수확했다.

황순곤(50) 농장 대표는 "파파야가 안동에서 월동하기는 힘들어 가을 서리가 내리기 전에 열매를 거둬들인 뒤 이듬해 봄에 새로 심는다"며 "내년 초에는 하우스에서 재배한 완숙 파파야를 100㎏가량 출시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30℃ 정도로 유지되는 비닐하우스 안에서는 이국의 정취가 물씬 풍긴다. '천혜향' '다전금' '청견' '불수감' '무늬귤' '아보카도' '카사바' 등 20여 종의 아열대 과실수들이 구석구석에서 저마다의 자태를 뽐내고 있다. 짙은 노란색의 파파야는 전국체전 보디빌딩대회에 대구시 대표로 출전하기도 했다는 황 대표의 팔뚝보다도 굵게 익어 있었다.

황 대표는 "대구에서 직장생활을 하던 중 취미로 열대 과일 분재를 시작했다가 2011년 아예 고향으로 돌아와 본격적인 재배를 시작했다"며 "파파야는 성장 속도가 빠른데다 가정'학교의 관상용 수요가 적잖아 고부가가치 창출이 가능하다"고 귀띔했다. 이 농장에서는 인터넷 카페'SNS 등을 통해 연간 5천만원어치(1본당 5천원)의 묘목을 판매하고 있다.

파파야는 2008년 전라남도 남해안 지역에서 재배되기 시작했다. 지구온난화와 이주노동자'다문화가정 확산에 힘입어 틈새 작목으로 인기가 높아지고 있다. 하지만 안동과 같은 경북 북부지역에서 재배에 성공한 것은 황 씨가 처음이다.

황 씨는 "처음에는 미친 짓 한다는 놀림도 많이 받았지만 이제는 성공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생겼다"며 "여름이면 노지에서 자란 열대작물들을 보기 위해 전국 각지에서 농업 관련 기관'농민들의 방문이 줄을 잇는다"고 소개했다.

◆한라봉, 이젠 경주에서 맛보세요

지구온난화로 기존 과일의 재배지는 크게 달라지고 있다. 농촌진흥청 자료에 따르면 사과 재배지역은 대구→충남 예산, 경북 안동, 충북 충주→강원 평창'정선'영월 순으로 북상했다. 포도 역시 경북 영천'김천에서 강원 영월'삼척으로 올라갔다.

또 제주 특산품이던 감귤의 재배지는 전남 완도'여수'고흥'진도와 경남 거창 등으로 재배지가 올라가고 있다. 한국에 1990년을 전후해 도입된 한라봉 역시 '고향' 서귀포를 떠난 지 오래다. 이제는 경주까지 재배지에 포함된다.

경북에서 한라봉 재배에 성공한 농민은 경주 천북면 '꿈자람농원' 이상환(59) 대표다. 딸기'토마토'멜론 농사를 함께 짓는 이 대표는 2005년 한라봉을 처음 심은 지 6년 만인 2011년 첫 수확의 기쁨을 맛봤다. 지난해에는 130그루에서 3.5t 정도를 수확했으며 생산량을 점차 늘릴 계획이다.

특히 이 농장의 한라봉은 제주산보다 당도가 2, 3도 더 높아 소비자들로부터 좋은 호응을 얻고 있다. 올해 설을 전후해서는 6개들이 1상자가 타 지역산보다 1만원가량 더 비싼 3만5천원에 팔려나갔다. 이 씨는 "한약과 미생물, 액비를 이용한 친환경농법으로 재배해 소비자들이 선호하는 것 같다"며 "생산량의 90% 이상을 중간유통 없이 소비자와 직거래를 통해 출하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미 고품질 토마토 생산으로 꽤나 이름을 알리고 있던 이 씨가 한라봉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2004년 농협 주최로 열린 한 교육 행사에서 제주도의 한라봉 재배 농가를 만나면서부터였다. 이후 2년생 나무를 몇 그루 얻어와 내륙에서도 한라봉 재배가 가능하다는 시험재배 결과가 나오자 토마토 하우스를 개조해 본격 재배에 들어갔다. 상품명도 육지에서 생산한 한라봉이란 뜻에서 '한약 먹은 륙지봉'으로 이름을 지었다.

이 대표는 "시행착오를 많이 겪었지만, 겨울철에도 영상 2, 3도 정도만 유지하면 돼 생각만큼 하우스 난방비는 들지 않는다"며 "맞춤법에는 맞지 않지만 소비자들에게 강한 인상을 주기 위해 '륙지'라는 표현을 쓰고 있다"고 설명했다. 또 "재배법을 배우고 싶다며 찾아오는 분들도 꽤 있다"며 "단순한 재배 성공을 넘어 최고 수준의 한라봉 생산이 목표"라고 덧붙였다.

글'사진 이상헌기자 davai@msnet.co.kr

최신 기사

많이 본 뉴스

일간
주간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