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법적으로는 '듣보잡'(듣도 보도 못한 잡놈)이 아닌 것으로 공인받은 분이 자신을 '이상한 놈'이라 칭한 코미디 프로그램을 고소한 일이 있었다. 자신에게 '놈'이라는 비하의 표현을 한 것이 명예훼손이라는 것인데, 그것을 가지고 법원에 고소를 하는 것을 보면 보통 사람들이 보기에 '이상한' 분이라는 것은 분명한 것 같다.
원래 '놈'이라는 말은 훈민정음 어지(御旨)에 나오는 "제 들 시러 펴디 노미 하니라"(제 뜻을 능히 펴지 못하는 사람이 많으니라)와 같이 그냥 사람을 일컫는 말이었다. 시간이 지나면서 의미가 축소되어 대우하지 않고 소홀히 부르는 말이 되었는데, 꼭 비하의 의미만을 담고 있는 것은 아니다. "얘가 제 아들놈입니다"처럼 친근하게 낮추어 쓰는 경우도 있고, 고등어를 사면서 "큰 놈으로 하나 주세요"처럼 의존명사 '것'의 대용으로 쓰는 경우도 있다. 이처럼 '놈'은 여성을 비하하는 표현인 '년'에 비해서 의미가 풍부하면서 적대적 의미가 적은 편이다.
천자문에서는 '따 지(地)'처럼 땅이라고 하지 않고 고어를 그대로 사용하는 경우가 있는데, '놈 자(者)' 역시 고어를 사용한 것이다. 그런데 지난 정부에서는 대통령에 당선된 분에게 '놈'이라는 말을 쓰는 것은 맞지 않다고 하여 '당선자'를 '당선인'으로 바꾸어 쓰도록 한 일이 있다. 헌법재판소에서는 헌법상의 용어인 '당선자'를 쓰도록 권고하였지만, 그냥 '당선인'으로 그대로 썼고, 현 정부에서도 계속 쓰고 있다. 그 논리가 계속된다면 졸지에 자(者) 자가 들어가는 '학자, 과학자, 교육자, 노동자, 기술자, 연기자'들은 현대어의 '놈'이 될 상황이다.
우리말에서 놈 자(者)나 사람 인(人)이나 모두 사람을 뜻하는 의존명사나 접사로 쓰이는데, 어느 것이 더 높고 낮음의 의미는 없다. 대신 사람 인은 '원시인, 종교인, 한국인, 프랑스 인'처럼 좀 더 범위가 넓고 추상적인 데 많이 사용됨을 볼 수 있다. '범죄자', '범죄인'은 당선자, 당선인처럼 자와 인을 동시에 쓸 수 있는 말이다. 여기서 어느 것이 범죄를 저지른 사람을 더 높여 부르는 것인지 따지는 것은 우스운 일이다. 보통 한 사람을 가리킬 때는 '범죄자'를 쓰고, '범죄인 인도 조약'처럼 추상적인 데는 '범죄인'을 쓰고 있음을 볼 수 있다. 그리고 이 말을 쪼개서 '범인', '죄인'은 가능하지만 '범자', '죄자'는 가능하지 않다. 다만 '범법자'와 같이 좀 더 구체적인 의미를 담을 때는 '자'를 쓰고 있음을 볼 수 있다.
그렇다면 대통령이나 국회의원, 시장에 당선된 바로 그분을 가리킬 때는 '당선자'를 쓰는 것이 두루뭉술한 '당선인'보다 더 정확한 표현이 된다. 그럼에도 전임 대통령께서 '당선인'이라는 말을 고집한 것에 대해서는 '기업인' 출신이고, '동업자'에 대한 반감이 있어서 그럴 것이라는 추론만 해 볼 뿐이다.
능인고 교사'chamtc@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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