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임을 면하려고 겉으로 둘러대 꾸미는 것을 색책(塞責)이라 한다. 중국 사기 항우 전에 나온다. 항우는 진(秦) 말기에 봉기해 연전연승으로 최강자가 된다. 항우가 진 장수 장함의 20만 대군과 대치하고 있을 때의 일이다. 진 2세 황제는 제대로 싸우지 않는 장함을 꾸짖었다.
장함은 황궁에 사신을 보냈지만, 당시 진의 최고 실권자인 조고는 만나주지도 않았다. 이에 장함의 참모들은 "조고는 황제에게 죽임을 당할 것이 두려워 장군을 죽여 자신의 책임을 피하려 한다(誅將軍以塞責)"며 항우에게 투항할 것을 권했다. 여기에서 일을 대강 마무리해 단지 구실로 막기만 한다는 뜻의 단구색책(但求塞責)이라는 말이 나왔다.
이 일은 항우가 20만 명을 몰살시키는 결과를 낳았다. 항복은 했지만, 진의 병사는 홀대를 받았다. 당연히 불만이 많았다. 여러 제후가 이를 걱정하자 항우는 20만 명을 모두 죽였다고 전한다.
원전 비리로 떠들썩하다. 잦은 원전 고장이 처음에는 단순한 불량 부품 때문으로 알려졌지만, 수사를 계속할수록 비리가 꼬리를 물었다. 이번 비리에는 한수원을 정점으로 부품 시험 승인 기관인 한전기술, 부품 검증 업체인 새한티이피, 부품 제조 업체인 JS전선이 수직 관계로 얽혀 있다. 이러한 조직적인 비리가 수년 동안 밝혀지지 않은 것은 특정 대학 출신의 학연과 낙하산 인사로 서로 묶였기 때문이다. '원전 마피아'라 불리는 집단이다.
이번 사태로 김균섭 한수원 사장이 면직됐다. 비리 척결을 위해 정부가 지난해 6월, 임명한 인물이다. 그는 지난 1년 동안 강도 높은 개혁으로 믿음을 주었지만, 자신의 임기 전에 벌어진 비리로 도중하차했다. 억울할 법도 한데 김 사장은 "따질 필요 없이 누군가가 책임을 져야 하고, 내가 진 것"이라며 물러났다. 그러나 비리 사태와 직접 연관이 있는 전임 한수원 사장과 한전기술 사장은 '당시에 알았다면 전부 고쳤을 것' '책임은 생각해 보지도 않았다'며 색책에 급급했다.
현재 국민은 원전에 대한 불안과 원전 중단에 따른 전력 공급 부족으로 올여름 유례없는 무더위에 시달려야 한다. 대체 연료 사용에는 2조 원이 넘게 들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국가의 기간산업이 한통속인 일부 집단의 비리로 속절없이 무너져도 대책이 없다. 하긴, 대형 사건이 터지기 전까지 색책으로 버티는 곳이 원전뿐이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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