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야고부] 대구역

파리의 기차역은 모두 여섯 개다. 유럽의 다른 나라와 달리 중앙역도 없고, 파리 이름을 붙인 역도 없다. 대신 시내에 산재해 각 지방과 유럽 각지로 오가는 열차 터미널 기능을 하고 있다. 1837년 개통돼 가장 오래된 생 라자르 역은 노르망디'브르타뉴 지방으로 연결되고, 북역은 유로터널과 벨기에'네덜란드 방면, 리옹 역은 리옹'마르세유 방면의 발착역 등 모두 고유한 역할을 맡고 있다.

반면 도쿄 역은 일본의 중앙역이자 관문역이다. 1914년 암스테르담 역을 모방해 건축된 도쿄 역은 2차 대전 때 파괴되면서 원형이 크게 훼손됐다. 그러다 2007년부터 5년간 7천억 원의 예산을 들여 대대적인 개'보수공사 끝에 원형을 되살려내면서 현재 관광지로도 한몫하고 있다.

이처럼 한 도시의 얼굴인 관문역들은 도시의 성장과 발전, 시민 일상과 뗄 수 없는 관계다. 숱한 이들의 애환이 녹아 있는 소중한 유산이다. 대구에서 대구역이 차지하는 상징성도 그렇다. 1905년 경부선 개통과 함께 대구경북 첫 기차역이 된 대구역은 60년 넘게 대구의 역사와 전통, 경제'사회의 한 축을 담당했다. 1969년 동대구역 신축과 함께 관문역의 위상도 사라졌고 1913년 건축된 목조 2층 건물은 이제 빛바랜 사진 속에서나 볼 수 있는 처지다.

중구의회가 최근 KTX 대구역 정차를 촉구하고 나섰다. 2004년 KTX 개통과 함께 간이역으로 전락하면서 도심 침체와 시민 불편 등 많은 장애를 부르고 있어서다. 대구역의 쇠락은 무엇보다 전통과의 단절이라는 점에서 매우 안타까운 일이다.

현실적으로 KTX 대구역 정차에는 걸림돌이 많다. 정거장이 짧고 운행 시간이 6분가량 지연될 수 있다는 점 때문이다. 타 도시와의 형평성도 문제다. 중구의회는 KTX 정차를 시민운동으로 전개할 것이라고 하지만 목소리만 높인다고 될 일은 아니다. 그럴 만한 명분과 함께 대구역의 부활이 도심 곳곳에 산재한 근대 역사 문화유산에 미치는 영향이 크고 부가가치를 높일 수 있다는 점을 잘 설득해야 한다.

고속철도망으로 전국이 90분대에 연결되는 시대다. 빠름도 중요하지만 조금 지체되더라도 편리하고 도시 정체성을 살리는 기반이 된다면 철도의 가치는 더 높아진다. 지금 철도는 충분히 빠르다. 대구 서쪽의 시민들이 KTX로 나들이하면서 집에 갈 걱정이 앞선다면 쾌적한 교통수단으로는 뭔가 부족하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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