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워야 산다','하면 된다'와 함께 대한민국의 오늘날을 있게 한 모토다. 그래서일까. 대한민국은 학원공화국이다. 학생들만의 전유물이 아니다. 학원의 종류도, 수강생들의 목적도 천차만별이다. 주식학원, 해킹학원, 연애학원, 웨이터학원, 블로거(블로그를 운영하는 사람)학원, 부동산경매학원…. 설마 이런 것까지 가르칠까 싶지만 정말 이런 것도 가르친다. 이달 들어 대구에 주식투자를 가르치는 학원과 해킹보안 기술을 가르치는 학원 등이 잇따라 들어섰다.
◆주식 투자 이렇게
이달 18일 오후. 대구 수성구 두산동 미정빌딩 5층 부자증권아카데미. 퇴근 후 학원으로 곧장 달려온 30대 중'후반 직장인부터 40, 50대 중년 학생들의 만학(晩學)이 한창이다. 대형 스크린에는 최근 화제가 되고 있는 회사의 매수'매도가가 초 단위로 소개되고 있다. 진지하게 매매 기법에 대해 설명을 하던 강사가 학생들에게 갑자기 질문을 던졌다. "자원개발주로 알려진 이 회사는 실제 매출은 다른 분야에서 일어납니다. 무엇을 파는 회사인지 아십니까?" 10여 명의 학생 중 누구도 강사의 질문에 답을 하지 못했다. "무엇을 하는 회사인지도 모르고 지금도 투자하고 있는 사람이 있습니다. 정말 이런 분들을 존경합니다. 용감하고 과감하고 결단력 있는 분들이지요." 강사의 말에 교실은 웃음바다가 됐다.
이날 수업은 20일 개원을 앞두고 이뤄진 비공개 수업. 수업 주제는 '주식의 매수'매도 타이밍'. 교육은 주제처럼 실전 투자에 적용할 수 있는 기본적 투자 원칙을 점검하는 형식으로 진행됐다. 강사로 나선 박정현 부자증권아카데미 대표는 "초보뿐 아니라 실전 경험은 많아도 기초가 부실한 투자자들이 의외로 많다. 그렇지만, 체계적으로 투자 교육을 받을 곳은 전무한 실정이다"며 "주식으로 고통받는 사람들을 위해 아카데미를 개설하게 됐다"고 했다.
부자증권아카데미는 대구에서 교육청에 학원으로 등록한 주식학원 1호다. 그래서 대구 주식 교육에 새로운 장을 열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대부분 좋은 종목 추천 등에 그치고 마는 일회성 투자 강연회인 데 비해 이곳은 주식 투자자의 수준과 투자 상황을 고려한 단계별 맞춤교육을 제공한다. 특히 차트 분석이 아닌 '호가창 분석'이라는 실전 기법 등이 소개된다. 한 달 단위로 강의가 이뤄지며 기초강의가 끝난 후에는 강사와 함께 실시간 주식투자를 해보는 시간도 가진다.
박 대표는 보험 해약금 350만원으로 60억원을 모은 '슈퍼개미' 출신. 본인 역시 주식으로 '깡통'을 찬 경험이 있는 터라 교육생들에게 실전 투자 비법을 전수할 예정이다. 현재 MBN 경제채널 등 다수 방송에 출연하고 있다. 박 대표는 "주식을 배우려면 서적이나 유료회원 사이트, 유사투자자문사 등을 통해야 한다. 특히 대구 등 지방에 사는 사람들은 돈을 들여 서울로 갈 수밖에 없었다. 투자자들이 불확실한 정보 등에 휘둘리지 않고, 합리적인 수익을 창출할 수 있는 교육 프로그램을 만들 계획이다"고 했다.
◆해킹보안요원 양성
북한의 해킹 공격, 인터넷'스마트폰 등을 통한 개인정보 유출 등이 늘고 있는 가운데 사이버 보안을 위한 인력 부족 현상이 심각해지고 있다. 더구나 수도권을 제외한 지역 기업들의 경우 해킹 공격에 무방비 상태나 마찬가지다.
다행히 24일 대구 최초로 국제해킹보안전문교육센터가 대구 중구 번개시장 맞은 편에 문을 연다. 수도권에만 집중되어 있던 정보보안교육센터가 대구에서 처음 문을 열게 된 것이다. 지역에도 보안전문 인력 양성의 물꼬가 트인 셈이다. 17일 찾은 이곳은 개원 준비가 한창이었다. 입구에서부터 전국 각 지역 경찰청 사이버수사대에서 보내온 축하 화환이 줄을 잇고 있었다. 이곳에 대한 기대를 반영하는 듯했다. 257㎡(약 78평) 규모의 교육센터는 TV 드라마에서나 볼 듯한 각종 장비로 빼곡했다. 웹 방화벽, 네트워크 방화벽, DB 방화벽, 무선 방화벽, 개인정보 유출방지 솔루션, 악성코드&불법사이트 필터링 솔루션 등을 위한 장비가 갖춰졌다. 국정원 시설에 버금간다는 것이 이곳 관계자의 설명이다.
박석기 강사는 "경험과 노하우를 살려 최고의 인재들을 양성할 계획이다. 또 정부와 연계한 보안 컨설팅, 사이버경찰청의 산업보안 전담팀과 정보를 공유하고 중소기업 산업기밀 유출 방지에 초점을 맞춘 보안인력을 양성하겠다"고 밝혔다.
수강생들은 정보보안기술을 습득한 후 해커들과 실전을 벌인다. 이들은 '제로데이 취약점'(컴퓨터 소프트웨어의 취약점을 공격하는 기술적 위협)을 찾아내는 데 투입된다. 특히 네이버, 구글, 다음 등의 제로데이 취약점을 발견해 각 해당 기업에 통보할 예정이다.
문경곤 대표는 "정보보안 업계는 하루가 다르게 변하고 발전한다. 현장에서 필요로 하는 기술을 가진 인력 양성을 위해 교육센터를 설립했다. 실무에서 꼭 필요한 과정을 교육하고 강사진들 또한 정보보안컨설팅업계 출신의 실무진들로 구성되어 있는 것이 장점이다"고 했다.
◆학원의 진화'분화.
"깜짝 놀란 표정으로 입과 눈을 최대한 크게 뜨세요. 그리고 '위스키'라고 말하면서 입가를 귀 쪽으로 당기세요." 18일 중구 대백프라자 맞은 편에 위치한 스피치킴 학원. 초등학생들의 예쁜 웃음이 강의실 전체에 피어났다.
강사로 나선 김민지 대표는 아이들에게 예쁜 발성법과 미소 짓는 법을 가르쳤다. '잘 웃는다고 뭐가 달라질까' 싶지만 지금은 엄연히 '자기표현 시대'라는 게 김 대표 설명이다.
"대인관계는 '좋은 인상'에서부터 시작합니다. 좋은 인상을 만들기 위해서 예쁜미소를 생활화해야 합니다. 따라서 평소 잘 웃는 방법을 꾸준히 연습하여 몸에 밸 수 있게 해야 합니다." 같은 날 대구시청 앞의 또 다른 스피치학원. 이곳에서는 중년 신사들이 모여 '위하여'를 연신 외쳐대고 있다. 이날 수업은 건배사 잘하기. 건배사 내용부터 표정 관리, 억양 등에 대한 세밀한 강의가 이어졌다. 학원에서 발음 교정을 거쳐 건배사를 배우고 있는 김모(49) 씨는 "다른 직원들 앞에서 건배사 하는 일이 정말 많은데 기술적 요령이 부족한 것 같아 여길 찾았다"고 했다.
2000년 중반부터 급격히 늘어나 현재 대구에만 대여섯 곳이 성업 중인 스피치학원. 이들 학원은 말하기에 그치지 않고 예쁘게 웃기, 건배사 잘하기 등으로 수업과정을 세분화하고 있다. 김민지 대표는 "스피치학원의 경우 대부분 선거를 겨냥해 정치인들을 상대로 한 스피치와 웅변 위주로 강의가 진행됐다. 그러나 최근 예쁘게 웃기, 건배사 잘하기, 멋지게 걷기 등으로 수업내용이 분화'진화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학원, 시대상을 반영
세태와 환경의 변화, 흐름에 따라 새로운 조류가 끊임없이 생겨난다. 이에 발맞춰 관련 학원들도 생겨난다. 블로그가 개인의 표현수단을 넘어 기업광고 수단 등으로 떠오르자 파워블로거를 양성하는 학원들이 빠르게 생겨나고 있다. 중앙정보처리학원은 비즈니스 블로그 마스터 과정을 운영하고 있다. 강의는 사람들이 많이 찾는 블로그를 만들기 위한 게시글 쓰는 법, 사진 수정하는 법, 사용자 제작콘텐츠(UCC) 만드는 법, 블로그 홍보하는 법 등으로 구성돼 있다. 수강생 대부분은 주부, 학생, 직장인 등이며 이들은 입문반, 실전반으로 나뉘어 총 32시간의 교육을 받는다. 한 학원 관계자는 "블로그(blog)라는 뉴미디어 시장이 열리고 있는 만큼 이 미디어를 활용한 마케팅을 익히고자 하는 사람들이 증가하고 있다. 국내 최고의 프로 블로거 강사를 통해 블로그 제작의 기초부터 응용, 기업들의 블로그 마케팅 활용을 위한 실전 기술까지 가르치고 있다"고 소개했다.
청년실업 100만 명 시대는 수강 후 곧바로 취직이 보장되는 '웨이터학원'을 낳았다. 웨이터가 되는데 교육까지 필요할까 생각되지만, 나이트클럽 웨이터도 이제 엄연한 전문직으로 대접받고 있다. 고객을 유치하는 대로 수당이 붙는 직업 특성을 고려할 때 고소득의 전문 웨이터가 되려면 고객 관리방법, 술 종류, 홀 관리 업무 등을 배워야 한다는 게 업계 측 설명이다.
한국웨이터전문아카데미양성학원(서울 소재)은 보통 한 달간의 교육을 받고 수료하는데 일주일짜리 단기 속성 프로그램도 운영 중이다. 웨이터가 갖춰야 할 매너를 실습 위주로 가르치고 있다.
이곳 윤민호 대표는 "대부분 수강생들이 잠깐 '알바'로 시작하지만 수입과 근무시간 등을 타 직장과 비교한 뒤에는 본업으로 전업하는 경우가 많다. 학원에서는 수업과 동시에 취업도 알선하고 있다"고 밝혔다.
인기리에 방영됐던 KBS 월화드라마 '직장의 신'에서 배우 김혜수가 선보여 화제가 된 '탬버린 댄스'를 가르치는 학원도 있다. '탬버린 댄스'는 직장의 회식 자리에서 분위기 띄우는 용도로는 말할 것도 없고 자신의 이미지를 높여주는 효과가 있어 직장인들 사이에서 인기다. 이 때문에 많은 직장인들이 관련 학원에 몰려들고 있다.
남성길 청림학원 원장은 "갈수록 다양해지는 교육 소비자들의 수요를 충족시키기 위해 학원의 영역이 확대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그러나 학원의 목적이 돈벌이만을 위한 수단으로 전락해선 안 된다"고 했다.
글'사진 최창희기자 cchee@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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